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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근무하고 있는 도서관에는 하루 평균 7~8건의 소포와 택배가 옵니다. 절반은 각종 공공기관이나 출판사에서 보내는 책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도서관에서 주문한 책들입니다. 오늘(16일)도 도서관에는 변함없이 여러 건의 소포와 택배들이 도착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지난주 금요일(13일) 오후에 인터넷서점을 통해 주문한 책도 있었습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전국적으로 물류대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택배는 정상적으로 도착한 것이 다행스러웠지만, 한 편으로는 어떻게 택배는 정상적으로 배송이 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인터넷쇼핑몰은 택배사보다 높은 운임으로 장기계약을 맺어서 화물연대 파업에도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주문한 책이 늦게 도착한다는 것은 그만큼 도서관 고객들이 보고 싶은 책을 늦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화물연대 파업으로 택배도 타격을 받았으면 도서관도 일정 부분 피해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도서관 사서인 저는 화물연대 파업에 지지를 보냅니다. 왜냐하면 이번 화물연대 파업은 전형적인 '생계형' 파업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하청에 하청에 하청으로 이어지는 다단계적 하도급 구조가 운임의 상당 부분을 갉아먹고 있어 정작 운전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최근 경유값이 유례없이 치솟으면서 그 부담 역시 운전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문제는 국민의 입장에서 봐도 상당히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직접 피해 입은 사람들의 심정은 어떨까

 

 

그런데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 사람들은 그 심정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철강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친구야~, 너거 회사는 요즘 어떠노?"

"모든 게 올 스톱이지."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그래, 노란남바(영업용 지입화물차)는 하나도 운행 못 하고 있고, 파란남바(회사소유 차량)만 간혹가다 운행 중이다."

 

"그렇구나."

"오늘은 화물연대 소속 사람들이 찾아와서 화물차들 운행 못 하게 하고 갔다."

"강압적으로?"

"글치 뭐, 반협박 비슷하게 하고 갔지."

 

"맞나? 그러면 니는 이번 화물연대 파업이 싫겠다."

"뭐 꼭 그렇지는 않다. 오죽하면 그 사람들이 그러겠나. 지금 구조로는 이 사람들 운행하면 할수록 적자거든. 내가 화물차 운전자라도 지금 같으면 파업한다."

 

"그니깐 니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회사에 타격이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파업을 지지한다는 거네."

"글치, 그 사람들 먹고살지를 못하는데…."

 

철강회사에 다니는 제 친구는 파업으로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했지만, 심정적으로는 화물연대 파업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철강회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도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너거 회사도 화물연대 파업 때문에 난리났나?"

"작살났지~, 오늘도 포항에서 물건 와야 되는데 못 오고 있다!"

"물건 납품하는 데 지장이 많겠네…."

"거래업체한테 매일같이 빌어야 되니깐 죽을 맛이다."

 

"그렇구나. 그럼 니는 화물연대 파업이 영 달갑지 않겠네?"

"지금 이런 상황이야 당근 좋지는 않지. 근데 그 사람들도 어쩔 수 없는 거 아이겠나."

"엉?"

"정부도 화주도 아무도 해결을 안 해주니까 나설 수밖에 없는 거 아이겠나."

 

"그럼 니가 화물차 운전자라면 어떻게 할 건데?"

"당근 파업이지. 뉴스 보니까 일본은 기름값이 올라도 화주랑 업자가 나눠서 고통분담 한다는데, 우리나라는 안 그렇잖아. 그런거 보면 고유가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시스템도 큰 문제라고 본다."

 

"음…."

"그 사람들도 노동자고 따지고 보면 나도 노동잔데 내한테도 저런 일이 생긴다 카면 나도 파업 안 하겠나 싶다."

 

이 친구 역시 화물연대 파업으로 피해를 입고 있었지만, 화물연대의 입장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3조6천억 경제 손실에도 파업 지지하는 이유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이해와 지지는 비단 저와 제 주변의 일만은 아닌 듯합니다. 뉴스를 보면 이번 파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3조6천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화물연대를 비난하는 여론은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화물연대 홈페이지를 봐도 파업을 지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이처럼 우호적인 여론이 일어나는 것은 참 보기 드문 현상입니다. 이는 아마도 화물연대 파업이 생계형 파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일 것입니다. 즉 사회적 약자에 대한 국민의 측은지심이 작용해서 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히 측은지심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파업을 지지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는 측은지심 그 이상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업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제 친구는 '나도 그 입장이 되면 파업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역지사지라는 인식이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친구의 '나도 노동자'라는 말에서는 노동자로서의 연대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제 친구들은 자신의 이익과는 별개로 역지사지와 연대라는 관점에서 현재 상황을 판단하고, 심정적으로나마 화물연대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지를 보내는 많은 국민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촛불문화제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스스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학습을 해 왔습니다. 화물연대 파업도 그러한 학습과정을 거쳐 운송체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파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키운 노동의식...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리하자면 파업에 대한 유례없는 국민적 지지는 국민의 보다 성숙된 노동의식에 기인하는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의 보수정권은 본의는 아니지만 이 나라의 민주화와 노동의식 신장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쨌든 이번 화물연대 파업이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합리적인 방향으로 조속히 해결되어 노동자도 웃고, 경제도 웃을 수 있게 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태그:#화물연대,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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