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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주말, 오랜만에 우리집에 이모들이 몰려오셨다. 2~3개월에 한 번쯤은 집집마다 돌아가며 모이셨는데, 이번에는 우리집에서 모이기로 하셨단다. 사실, 아버지 생신 축하를 위한 자리이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집은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법. 이날 나는 요즘 장안의 화제인 '신(新) 보릿고개' 이야기를 꺼냈다. 이것저것 잴 것도 없이 그저 곧바로 물어보면 되는 문제였다. 그 누구도 또 잠시도 피해가기 어려운 '위험물질'(?)이니까.

 

질문을 던지려던 시간은 9시 뉴스 시간. 미국산 쇠고기 소식이 연달아 보도되는 통에, 한동안 이모들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느냐 아니냐를 놓고 옥신각신 하는 풍경이 벌어졌다. 분위기는 여전히 미덥지 못하다는 쪽이었다. 달리 말해, 뭔가 불안하다는 말이었다.

 

그런 풍경은 자연스레 물가 이야기 그러니까 기세 등등한 고유가 시대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유가 급등 이야기는 꽤나 황당한 모양새로 출발했다.

 

기름 값 올라서 생선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이모, 요즘 기름 값 많이 올라서 그만큼 물가도 많이 오르는 것 같은데 어떤 것 같아요?"

"그럼. 요즘 기름 값이 좀 비싸냐. 야, 요즘 생선도 비싸."

 

"네? 생선이요? 생선은 왜요? 그게 기름하고 무슨 상관…."

"야, 모르는 소리 하지 마라. 배 말이야, 배."

 

짤막짤막한 말이 오가는 통에 처음엔 잘 못 알아들었다. 심지어 먹는 배나 몸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그 얄미운 배를 생각했지, 바다 위를 쉼 없이 다니느라 생선 잡기 전에 기름부터 잡아먹는 배를 생각지는 못했다. 생선 값이 비싼 것은 바로 기름 잡아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배 때문이었다.

 

"아, 그렇군요. 그 생각은 차마 못했네요. 기름값 때문에 출항 횟수가 준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생선 들어오는 게 예전 같지 않은 거야. 그러니 생선이 비싸지지. 에휴~"

 

기름 값 얘기가 나온 김에 얼른 차 얘기로 넘어갔다. 나와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 그 이모네는 자녀가 많다. 딸 셋에 아들 하나. 그 중 유일하게 결혼한 딸 부부도 같이 사는데, 그 사위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를 집에 놓고 다닌단다.

 

"요즘 차 별로 안 쓰시죠?"

"음, 밤에 애들 들어오면 잠깐 장 보러 가지. 한 달에 기름 값만 30만원 돈 들어가더라. 거기에 이것저것 유지비 들어가고, 밥값 그런 생활비 다 따져봐. 차 못 굴린다. 그래서 우리집 사위는 회사가 멀어도 버스타고 전철 이용하고 그러잖아. 전철 탈 때 정기권(참고. 서울메트로 '운임 및 할인율') 이용하고. 한 푼이라도 줄여야지. 기름 값이… 아휴, 말을 말아야지."

 

내겐 매제가 되는 사위 회사에서는 주차비도 월 8만원 정도 받는다는데 정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둔춘동 너머 서울 외곽에 있는 집에서 구로 직장까지 서울을 가로질러 양 끝을 오가면서 날마다 자동차를 타기엔 벅차다 싶었다. 그 먼 길을 다니니면서도 거의 일주일 내내 자동차를 집에 고이 모셔두는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그 먼거리를 날마다 버스에 지하철 갈아타며 다니는 건 다 기름, 그 놈 때문이다. 자동차 얘기로 넘어갈 때쯤, 화물트럭 이야기를 담은 방송물이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기름 값 얘기로 끝장을 보게 되었다.

 

 

"요즘 유가 급등이 심해서 저런 방송도 하나 보네요."

"그런가보다. 참, 우리 이웃 중에 남편이 개별 하는 사람이 있는데 딱 저래."

 

"네? 개별… 이요?"

"응? 아, 개별화물말이야."

 

"아, 네."

"근데, 그 양반이 기름 값 때문에 도통 움직이질 않는단다. 집에서 많이 쉬나봐. 게다가, 어떤 때는 한 번 나가면 몇 십 일이고 집에 잘 안 들어온단다. 밥도 어떨 땐 집에 있던 남은 떡 갖고 나가서 그거 먹는다더라. 항상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건 왜 그래요? 아니,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비우나요?"

"왜 그러긴. 돈 받는 거에 비해서 기름 값이 턱없이 비싸니까 예전만큼 자주 집에 못 오는 거야. 뭐가 남아야 집에 오던지 말던지 하지. (개별화물주 인터뷰하는 장면을 보면서) 저거 봐라, 뭐 돈 버는 게 있어야 집에 와서 애들 학비도 주고 생활비도 주고 할 거 아니냐. 뭐가 남아야…. 참, 요즘에 택배(화물)도 잘 안 되나 보더라."

 

"택배도요? 아니, 그건 또 왜요? 기름 비싸서요?"

"아니, 그것보다도 일단은 물건이 적대. 우리 쓰는 물건들 봐라, 기름 안 들어가는 게 뭐 있냐. 하여튼, 다 기름이야 기름. 기름 값도 기름 값이지만, 온통 기름 들어가는 물건이 넘치니까 당연히 (제품)값도 올라서 사고 파는 양이 주는 거야. 그만큼 택배(화물)도 움직일 일이 적어지는 거지."

 

얘기를 듣다보니 점점 기가 차기 시작했다. 기름 한 가지를 두고 얘기는 돌고 돌았다. 그리고 아무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도 그 놈의 기름 이야기는 빠지질 않았다. 마침 개별화물주 생활을 다룬 방송이 나오는 통에 우리 얘기는 기름 범벅이 되었다. 하긴, 우리 삶이 기름 범벅이다. 생각해보니, 무거운 현실을 날마다 대하고도 나부터 기름 아낄 줄을 몰랐다.

 

그러고 보면, 도대체 기름과 관계없는 게 있을까 싶었다. 사실 우리가 쓰는 물건들 대부분이 기름과 관계되어있다. 제품 자체에 기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고, 생선 경우처럼 기름 값 때문에 유통량부터 줄어드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한 방송물에서 취재기자에게 하소연하는 선주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계속 기름 값 오르고 그만큼 출항 횟수가 준다며 계속 이런 식이라면 배를 처분할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생선 물량이 준 것 같다는 말을 듣다 그 분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가 급등은 곧 생활비 급등이다. 유가가 흔들리는 것은 곧 우리 삶이 흔들리는 것과 같다. 당장 우리는 늘 기름 냄새를 맡고 산다. 1년 365일 기름 냄새를 맡고 사는 게 주유소 직원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두 번째 '신(新) 보릿고개'를 넘으며

 

어디서나 기름 냄새를 맡고 살며, 무엇에든 기름 문제가 끼어든다. 사실, 유가 급등 이야기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전국 아니 세계가 이 문제로 들썩이고 있다.

 

기름 값 문제를 놓고 나눈 대화 사이에 휘발유 값과 대등해진 경유 값 이야기도 나왔고, 많은 (영업)트럭들이 정부보조금을 이용하여 가스차량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얘기도 나왔다. 요즘 들어 더 많이 듣게 되니 이제는 더 이상 남 얘기 같지 않다.

 

대화를 나누며 보았던 방송에서, 우리는 거대한 화물트럭과 그보다 더 거대한 화물트럭 터미널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게 다 우리네 이웃이라니, 저들이 지금 유가 급등이 무엇을 말하는지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니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 방송에서, 어느 개별화물주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는, 10년 전 전주~서울 운임이 13만원이었는데 지금 기껏 3~4만원 올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름 값은 10년 전보다 얼마나 오른 줄 아느냐며 취재진에게 사실상 반문했다. 그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내게 던지는 항의성 질문이요, 하소연이요, 심하게 말하면 절규이기도 했다.

 

얄궂다고 해야 할까, 우울하지 않을래야 우울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방송이 끝날 즈음에 우리 대화도 자연스레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우리 대화를 기록으로 남기는 와중에 눈물을 삼켜야 했다. 돈 버는 게 시원치 않아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한 아버지가 아이들과 전화하며 울었던 모습을 쉽사리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모는 그 모습을 보며, 30만원 운임에 20만원 기름 값 들어가는 식이라면 그 맘이 어떻겠느냐며 대신 읍소를 해주었다.

 

돌고 돌았던 기름 이야기에 속이 울렁거려, '검은 눈물'로 이 글을 덮었다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그러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모르긴 몰라도, 지금 어디선가 분명 남몰래 '검은 눈물'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으리라. 아니다, 그 '검은 눈물'은 함부로 흘릴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신(新) 보릿고개'는 이제 시대 유행어가 되려나 봅니다. 곳곳에 널린 '신(新) 보릿고개'를 넘고 넘으며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보려 합니다.


태그:#신 보릿고개, #유가 급등,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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