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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 총리가 6월 2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의 미 쇠고기 검역시행장을 방문, 냉동 쇠고기의 냄새를 맡고 있는 모습
 한승수 총리가 6월 2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의 미 쇠고기 검역시행장을 방문, 냉동 쇠고기의 냄새를 맡고 있는 모습
ⓒ 국무총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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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7일 미국산 쇠고기 검역이 재개된 첫날,  국무총리가 미국산 쇠고기가 보관되어 있는 냉동창고에서 고깃덩어리를 들고 냄새를 맡고 있는 사진이 언론에 소개됐다. 어이없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에서는 어떤 특별한 냄새가 나는 것일까? 한승수 국무총리는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홍보 효과를 노렸을 테지만, 한번만 더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가당찮은 블랙 코미디인가?

썩은 고깃덩이가 아닌 다음에야 미국산 쇠고기라 해도 얼었다 해동시킨 고깃 덩어리에서 무슨 특별한 냄새가 나겠는가? 정부의 이런 여론무마용 사진찍기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불안감과 공분을 가져올 뿐이다.

미국산 소고기 '맛있다=안전하다'... 이 논술은 몇 점?

한승수 국무총리의 미 쇠고기 선전은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3일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 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한 총리는 "우리집 손주도 있고 해서 어제 (미국산) 쇠고기를 사다 가족들과 함께 먹었는데 맛있더라"라고 시식 소감을 밝히면서 "국민이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라고 말했다 한다.

'맛있다 = 안전하다'라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등식을 강요하는 국무총리를 어떻게 봐야 할까? 논술을 치러야 될 학생들이 이런 논리를 폈다면 교수였던 국무총리는 어떤 점수를 줄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또 하나, 국민들이 60여 일을 넘게 거리에 나선 이유를 한낱 먹을거리 투정으로 보는 그 시각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가 미국산 쇠고기가 맛이 없어서 못 먹겠다고 했는가? 한우, 국내산 육우, 호주산 등등의 쇠고기가 맛이 없어 까다로운 국민 입맛을 맞추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는지 묻고 싶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AI 바이러스에 감염된 닭이 맛이 떨어져 살처분했는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수천 수만 마리의 생목숨을 땅에 묻는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불안전한 요소'를 최대한 없애 달라는 것이다. 이런 국민의 요구에 "내가 먹어보니 맛있다. 그러니 안심하고 드셔도 된다"라고 말하는 국무총리를 보면서 누가 먹을거리 안정성을 믿고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남의 나라 쇠고기 먹으며 사진 찍을까?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출국에 앞서 외신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돌아오면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무총리가 손자와 먹고 이야기한 '맛있더라, 그래서 안전한다. 국민도 촛불을 끄고 걱정 말고 먹어라'는 논리의 재방송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제발이지 그렇게 하지 마시라. 국민들에게 안전한 믿음을 주기보다는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 어떤 나라가 남의 나라 먹을거리 안전을 홍보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식하고 사진을 찍는다는 말인가? 자국의 쇠고기를 제쳐두고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며 안전을 이야기하는 광경을 세계 사람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산 쇠고기는 미국산 쇠고기보다 맛이 없나요? 안전하지 않나요?" 이렇게 묻는 외국 기자가 있다면 청와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제발이지 그만 두시라. 질좋은 한우을 키우고도 판로가 막혀 한숨짓는 한우 농가도 당신들의 국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기막힌 시식회를 그만 두시라.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미국 쇠고기를 홍보하고 국무총리가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말하고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시식하는 이 참담한 현실에서 한우 농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관료라면 국제회의장에서 한우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한우의 시식회를 열고 값싼 미국산보다는 안전한 한우를 선택하라고 홍보에 열을 올려야만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런데도 미국에 충분한 검증을 요구해야 될 미국 쇠고기의 안정성 문제를 대한민국 관료들이 나서서 '맛있다=안전하다'라며 시식회를 반복한다는 것은 국제 사회의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며 이에 따라 한우는 영원히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일본은 부시 대통령의 쇠고기 개방 확대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20개월 이하 살코기 수입의 기존 형태를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구태어 일본 지도자와 대통령을 비교하지 싶지는 않다. 다만 청와대에서 미국산 소고기 굽고 '맛있어요, 안전해요'를 연발하며 사진 찍는 참담함을 제발이지 그쳐 주시길 바란다.

국민들과 머리를 맞대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한다. 촛불을 들고 몰려드는 국민들보다, 촛불을 끄고 청와대에 등을 돌려 멀어져 가는 국민이 더 무서움을 아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8일 의원회관내 의원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 미국산 쇠고기 시식하는 한나라당 의원들 김형오 국회의장 내정자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8일 의원회관내 의원식당에서 미국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점심으로 먹고 있다.
ⓒ 연합뉴스 김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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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며] 미국 쇠고기 전도사가 된 국회의원들

8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일부가 국회 의원식당에서 보란 듯이 미국산 쇠고기 시식을 했다 한다. 어느 국회의원은 한우보다 낫다고 흡족한 듯이 인터뷰에 응했다. 곧 곱창구이로 다시 시식회를 한다고 한다.

뉴스를 보고 있는 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그렇게 해놓고도 선거 때만 되면 '농민의 아들' 아닌 후보가 없고 살기 좋은 농촌을 이야기하지 않는 후보가 없다. 그러나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미국 쇠고기 전도사가 된 국회의원. 그들이 다수를 점한 정당. 지금은 다수의 정당,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인지 몰라도 국민들에게 버림받는 불임 정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으면 한다.


태그:#시식회, #미국산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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