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만리포 해수욕장은 생의 바다.
▲ 신나는 바다. 만리포 해수욕장은 생의 바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12월 7일 유조선에서 기름이 유출되는 최악의 사고가 있었다. 겨울을 맞아 쉬고 있던 충남 태안 앞바다는 순식간에 검은 기름 덩어리로 덮였다. 그렇게 시작된 기름 유출 피해 현장은 지난 봄까지 절망의 땅이었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던 이영권씨는 음독자살을 했고, 지창환씨는 스스로 몸을 태웠다.

살아 꿈틀거리던 바다는 곧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밀물로 밀려온 바다는 기름 덩어리를 육지로 끊임없이 밀어 올리고는 썰물로 빠져나갔다. 고둥과 석굴 등의 갯것들이 처참하게 죽어갔고, 그 모습을 본 태안 주민들은 넋을 잃었다.

국민들도 분노했다. 억장이 무너진 국민들은 장화와 우비를 챙겨 태안으로 몰려 들었다. 그렇게 태안을 다녀간 자원봉사자만도 백만명을 훌쩍 넘겼다. 기름을 닦아내고 귀가 하던 이가 어이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기름 범벅인 바다를 살려내려고 태안을 찾았던 이들 중엔 기름 방제 후유증으로 고생한 이도 많았다.

죽음의 바다에서 생의 바다가 된 태안 앞바다

죽음과 삶이 교차하던 시기. 태안은 분노의 땅이었고, 절망의 바다였다. 그랬다. 바닷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분노했다. 주민들은 분을 참지 못하고 삭발을 했고 도로를 점거했다. 정치인들은 컨테이너 사무실을 차렸지만 대통령선거가 끝나고는 하나둘씩 등 돌려 떠났다.

그러했던 태안 바다를 지난 주말(26일)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김영현)에서 주최하는 '국토·모심·평화를 위한 '2008 태안문학축전' 참가자인 문화예술인 50여명과 함께 찾았다. 태안이 절망의 바다가 아닌 희망의 바다임을 증명하기 위해 태안으로 갔다.

혹독한 겨울 지나고 갯메꽃이 피었네
검은 바다와 사투 벌이며 닦고 또 닦아낸 기름 냄새
물빛 살아나고 파도는 쉼 없이 철썩거리건만
적요한 바다
잊혀진 바다

오늘 밥숟가락이 무겁네
내일이 무섭네

이제는 그냥 와서
해변을 거닐고 바다노을에 젖다가 쉬어 가는
사람이 희망이라네
모래틈 켜켜이 스민 갯마을 사람들의 상처
찾아오시는 발자국이 약이라는 그 마음.
그대로 소금꽃이네

- 함순례 시 '다시 태안 가자' 중에서 

태안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 우선 피해가 컸던 소원면 모항으로 갔다. 바다낚시로 이름을 날리던 모항은 옛 명성과 달리 한산했다. 그동안 방제 작업으로 닻을 내렸던 50여척의 낚시배들이 조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혹했던 겨울과 봄은 이제 흔적으로만 남았다. 기름 덩어리로 덮였던 모항 주변의 자갈밭은 예전보다도 깨끗했다. 고둥도 바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바다가 살아났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태안 바다는 정상입니다. 오버~
▲ 항해 중. 태안 바다는 정상입니다. 오버~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태안 모항 포구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
▲ 우리는 지금 바다로 간다. 태안 모항 포구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태안은 기름공원이 아닌 국립공원이라고요!

마을에서 내어준 두 척의 낚시배를 타고 기름 피해 일대를 돌아 보기로 했다. 검은 기름띠는 그 사이 푸른 바다로 변해 있었다. 사람이 만든 상처를 사람들이 모여 그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상처를 주는 자와 상처를 치유하는 자. 세상은 늘 그렇게 불공평함으로 돌아갔고, 바다 또한 그렇게 치유되었으나 바닷가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여전했다.

한 시간 가량 둘러본 바다는 조용했다. 바다가 살아났다는 것을 이미 알았던가. 낚시배 몇 척이 점점이 떠 있었었다. 그 배들이 반가워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었다. 기름 냄새가 떠난 바다는 비릿함으로 다가왔다. 뱃전에 부딪친 파도가 얼굴로 날아 들었지만 피할 생각 없이 맞았다. 짭짜롬한 소금기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분 좋은 항해. 그러나 몇 개월 전만 해도 이 바다는 기름 덩어리로 가득 했다.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고 그 절망 덩어리들을 하나씩 걷어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인해 절망의 바다를 마침내 희망을 바다로 환생시켰다.

배에서 내리니 점심 시간. 예전 같으면 붐볐을 횟집들은 빈 식당이 되어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약된 횟집으로 가 태안 앞바다에서 잡았다는 우럭으로 끓인 매운탕을 먹었다. 매운탕 맛은 오래 전 먹었던 그 맛과 다르지 않았고, 우리는 그 기가 막힌 매운탕을 안주로 지역의 소주인 '린'과 역시 지역 막걸리인 소원막걸리를 한잔씩 마셨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태안문학축전은 유류 피해로 고통 받았던 주민들을 예술로 위로하는 자리.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지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시인은 시로 주민들이 입은 상처를 보듬었고, 가수는 노래로 주민들이 겪었을 고통과 아픔을 함께 했다.

참으로 편안한 태안 땅에
도륙으로 얼룩진
기름 떼 벗겨내고
수천 수만 마리 살아 움직이는
희망의 햇살을 본다
물결 짓는 미소로 부는 싱그러운 바람을
자꾸만 목말라 받아 마신다

- 김영곤 시 '백화산에 올라' 중에서

아픔의 순간이 지나면 기쁨. 고통의 순간을 보내고 나면 환희.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맞이하는 희망.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올린 생. 그 모든 것이 절망을 딛고 일어선 태안 사람들이 대대로 받아야 할 축복일 것이었다.

기름범벅이던 바다가 제 모습을 찾았다.
▲ 살아난 바다. 기름범벅이던 바다가 제 모습을 찾았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문화예술인들이 태안을 찾아 그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했다.
▲ 태안문학축전. 문화예술인들이 태안을 찾아 그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승화했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바다는 살아났지만 주민들이 입은 상처는 여전

그러나 태안 사람들의 삶은 아직 온전하지 않았다. 기름 유출로 인한 보상은 턱 없이 작았고,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삼성중공업은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무한책임의 자리에서 유한책임으로 바뀌는 순간 태안 사람들은 또 절망했다.

"문제를 푸는 과정이 주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어요.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우선시 되지 않기 때문인 것이죠."

태안에서 만난 주민은 그간의 과정이 문제투성이라고 말했다. 정치라는 게 왜 존재하고 행정이라는 것이 왜 필요한지 모를 정도라는 것이다. 사람을 위한 정치, 사람을 위한 행정이 뒷전인 세상에서 태안 사람들은 지금도 역겨운 기름 냄새의 기억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축전 행사를 끝내고 역시 원유 유출로 큰 피해를 입었던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갔다. 일몰과 고운 모래로 유명한 만리포 해수욕장은 지난 과거를 묻은 채 인파로 붐볐다. 만리포가 살아났다는 것을 그들도 알았던 모양이었다.

검은 기름밭이었던 만리포 해수욕장은 다시 고운 모래로 살아났다. 멀미를 일으키던 기름 냄새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모래사장에서는 '춤추는 바다 태안'을 주제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희망의 깃발 사진'이 펄럭이고 있고, 사람들은 바닷물에 들어가 내리쬐는 폭염을 씻어내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을 첨벙거리며 모래성을 쌓았다. 모래성은 파도가 밀려오자 스스르 허물어졌고, 아이들은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 고사리 손으로 모래를 모아 더 큰 모래성을 쌓기 시작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 가면 "똑딱선 기적소리~" 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 만리포사랑. 만리포 해수욕장에 가면 "똑딱선 기적소리~" 로 시작되는 노래가 있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연인들은 손을 꼭 잡고 길게 이어진 해변을 걸었다. 그들은 어느 지점에서 멈추더니 모래에다 '영원히 사랑해'라고 썼다. 행사장에서는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노래가 울려 퍼졌고, 주변의 상인들은 오랜만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서
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사랑
그립고 안타까워 울던 밤아 안녕히
희망의 꽃구름도 둥실둥실 춤춘다.

점찍은 작은 섬을 굽이굽이 돌아서
십리 뱃길 위에 은비늘이 곱구나
그대와 마주앉아 불러보는 샹송
노젓는 뱃사공도 벙실벙실 웃는다.

- 노래 '만리포사랑'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

똑딱선의 기적소리는 없지만 만리포 바다가 만들어 낸 풍경은 지난해 여름과 다르지 않았다. 만리포 옆의 천리포 해수욕장, 백리포 해수욕장, 십리포 해수욕장까지. 태안이 품고 있는 모든 바다는 이제 살아났다.

파도가 우리를 막으랴!
▲ 바다와 아이들. 파도가 우리를 막으랴!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아이가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다.
▲ 소녀. 아이가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모래성을 쌓고 있다.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자원봉사요? 내 아이가 뛰어 놀 곳이라 최선 다했어요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튜브까지 챙겨 온 가족 피서객을 만났다. 아이는 튜브에 올라 바다로 뛰어 내리길 몇 차례. 그러다가 짠 바닷물을 먹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가족의 가장에게 물었다.

"해수욕장이 기름 범벅이었는데 아이들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걱정은요. 기름 유출이 있고서 자원봉사를 왔었어요. 제가 그때 만리포에서 방제 작업을 했는데, 아비가 아이에게 놀게 할 바다를 설렁설렁 했겠어요?"

가장은 아이에게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결과 바다가 살아났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었다.

"올 여름은 피서는 서해안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들을 많이 해요. 하지만 바다가 이렇게 살아났잖아요? 절망의 땅을 피하면 이곳 분들이 살아가기 더 힘드니 피서객들이 태안을 많이 찾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가장은 어려울 때 찾아주는 것이 더 힘이라고 말했다. 많이 찾아주는 것이 지난 겨울과 봄을 힘겹게 보낸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이란다. 그의 말이 맞다. 이제 태안은 환경의 성지가 되었으니 살아난 바다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태안을 많이 찾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경험한 사람들. 바다가 살아야 사람이 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 그들이 있는 한 태안을 넘어 우리 땅 어디에서도 희망의 꽃구름이 둥실둥실 춤추지 않을까 싶다.

태안국립공원이 기름공원으로 변했을 때 우리는 주저앉지 않고 함께 했다. 쏟아지는 눈발 견디며, 언 손 호호 불어가며 기름 덩어리 닦아 낸 태안 바다. 이제는 그 아름다운 바다에서 즐길 일만 남았다. 자, 떠나자. 만리포 사랑 노래 목청껏 부르면서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고운 모래와 밀려오는 파도...
▲ 발을 간지럽히는 것은? 고운 모래와 밀려오는 파도...
ⓒ 강기희

관련사진보기



태그:#태안가자, #태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