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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이 정연주 사장 해임의 부당성을 지적한 글을 <오마이뉴스>에 보내와 싣습니다. [편집자말]
정연주 KBS사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사장실로 가기 위해 승강기를 타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사장실로 가기 위해 승강기를 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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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사전에 법치, 민주적 절차, 신의라는 단어는 삭제된 지 오래인 모양이다. 반면 그들은 '일사천리 막가파식' 일처리,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식의 이중잣대, '오락가락, 이랬다 저랬다'식 후안무치를 국정운영의 세 박자 세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특보사장단으로의 방송계장악과 탈법적 정사장 해임과정은 이 '삼박자 삼원칙'의 결정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착착 진행된 '정연주 몰아내기'

지난 대선 이후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정연주 KBS 사장 퇴임을 압박했다. 그러다가 강부자 내각,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졸속 처리 등 정권 초기 국정운영 미숙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들은 지지율 급락의 원인을 방송에서 찾기 시작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아예 노골적으로 "정 사장이 물러나지 않고 버티는 탓에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5월 14일 KBS 직원이 정 사장을 '배임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추진된 다음과 같은 일련의 과정은 한마디로 일사천리였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감사원 특별감사청구(5월 15일)- 김금수 이사장 사의표명 및 유재천 이사장 선임(5월 21일~6월 5일)- 감사원 특별감사 착수(6월 11일)- 신태섭 교수 해임 및 강성철 보궐이사 선임(6월20일~7월 19일)- 정 사장 출국금지(8월 4일)- 감사원, 정 사장 해임요구 결정(8월 5일)- KBS이사회 정 사장 해임 결정(8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결정(8월11일).

아마도 '막가파'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라고 생긴 말이 아닐까 싶기까지 하다.

정 사장 해임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변, 한나라당 강경파들에게는 '방송독립성'이라든가 '통합방송법 정신', '방송의 자유'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밀어붙이는 사이사이 박재완 정무수석이 나서 "공영방송 사장은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신재민 문화부차관은 "대통령에게 KBS사장 해임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엄연히 방송법상 '임명권'만이 명문화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더 나아가 공영방송사장에 대한 '임면권'을 명문화하지 않은 것이 '땡전뉴스의 치욕'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결과였다는 사실에도 그들은 눈을 감았다.

도대체 왜일까. 한나라당과 정부 여당은 국회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국회에서 법을 바꾸어 한국방송 사장을 물러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누군가 '매우' 급했던 모양이다. 하긴 "한나라당이 정권 잡았으니 맘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 한나라당과 그 주변인사들 입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온다고 하고 술자리에 한나라당과 주변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우리가 정권잡았는데 KBS사장 하나 못 바꾸느냐?"며 개탄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그 주변 '입질'만으로 이렇게 '막가파식'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도대체 누가 그렇게 급한 것일까. 세간에선 차기 KBS사장을 노리는 '후보군'이 밀어붙이고 있다고도 한다. 후보군 물망에 오른 사람들보다 더 급한 사람은 없는 것일까.

정연주 사장 해임작전은 은밀히 진행된 '게임'이 아니다. 국세청, 감사원, 검찰, 방통위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며 진행됐다. 국세청, 감사원, 검찰, 방통위 등 국가기관을 총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최근 감사원과 검찰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이 오간다고 한다. "BBK 사건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방송을 어떻게 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 이런 말도 들린다. "노통은 보수신문과 싸웠고 이통은 방송과 네티즌과 싸우는 모양새다".

과연 정연주 사장만 물러나면 방송장악이 가능할까. 더 나아가 문화방송을 민영화하고 문화방송사장마저 이 정권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바꾸고 나면 지지율이 급반등할까.  

내가 하면 '언론정상화', 남이 하면 '언론탄압'?

"기자실의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언론 스스로 고쳐야 한다. 정부가 나서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렇게 좌지우지 하겠다는 인식과 발상은 독재적 발상이다."

"노통의 뿌리깊은 피해의식이 언론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기자들의 면담취재를 봉쇄하려 한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하다."

참여정부 말기 소위 '취재지원 선진화방안' 문제가 터졌을 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이 말들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KBS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고쳐야 한다. 정부가 나서 사장을 바꿔 해결하겠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렇게 방송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인식과 발상은 독재적 발상이다."

"이통의 BBK로 인한 뿌리깊은 피해의식이 방송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KBS를 장악해 '땡이뉴스'로 만들려 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하는 일이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하다."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은 핍박받는 거대 신문사들의 '흑기사'였다. 그들은 언론자유의 수호신인양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을 비판했다. 심지어 신문시장의 독자매수행위인 경품공세를 막기 위한 대책에 대해서도 그들은 '언론탄압'이라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참여정부 초기 서동구 언론고문이 한국방송사장으로 임명되어 물의를 빚었을 때에도 한나라당은 이를 '방송장악음모' 등으로 규정하고 거세게 비난했다. 한나라당에 묻고 싶다. 지금 정연주 사장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 청와대와 감사원, 국세청과 검찰이 하고 있는 행태는 무엇인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이 하면 방송정상화고, 다른 정권이 하면 방송장악음모인 것인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한나라당과 청와대 주변의 '권력형 비리사건'에 대해서도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은 그것은 권력형 비리가 아닌 "지극히 정상적 재산축적 과정"이며 "상부상조"라고 옹호할 것인가.

이랬다 저랬다, 국민은 헷갈린다

11일 낮 여의도 KBS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에 참석했던 기자, PD, 사무직원 등 KBS직원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처리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신관 5층 유재천 이사장실 출입문을 봉쇄했다.
 11일 낮 여의도 KBS본관 2층 '민주광장'에서 열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 출범식'에 참석했던 기자, PD, 사무직원 등 KBS직원들이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처리와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신관 5층 유재천 이사장실 출입문을 봉쇄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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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최대인파가 몰려들었던 지난 6월 10일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소회를 밝힌 바 있다.

"6월 10일 광화문 일대가 촛불로 밝혀졌던 그 밤에 캄캄한 산중턱에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 행렬을 바라봤다. 국민을 편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 촛불로 뒤덮였던 거리에 희망의 빛이 넘치게 하겠다."

그는 "나도 민주화운동 1세대"라고 말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뼈저리게 반성했다"고도 했다. 하지만 6월 29일 있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내용은 180도 달랐다. "촛불집회의 성격이 변질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뼈저린 반성' 이후 겨우 10일 만에 강경대응방침을 천명했다.

도대체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은 무엇을 '뼈저리게 반성'했던 것일까. 조갑제 등 보수논객 일부와 보수신문들이 주장해온 '촛불 강경대응', '초전박살론'을 일찍이 채택하지 않은 것을 반성한 것일까.

하긴 지난 대선이후 행보를 돌아보면 대통령의 헷갈리는 행보는 이제 '국민적 상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쇠고기정국에서도 대통령의 말은 계속 바뀌었다.

지난 4월 12일에는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고 발언했고, 1억원짜리 쇠고기운운하며 우리 축산업계의 경쟁력강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지난 5월 8일에는 광우병 운운하는 사람들을 "FTA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몰아붙였다. 촛불집회 규모가 점점 커지자 뒤늦게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자책했다"는 등 자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했다.

외국 한 시사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촛불시위를 "그들의 건강과 어린아이들의 안전에 관한 우려의 문제"라며 "한국에는 국민들의 시위가 진정한, 그리고 의미있는 변화의 단초가 된 전통과 역사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면서 입장을 바꾸는 데에는 10일도 걸리지 않았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지지율 하락을 '방송탓'으로 돌리며 '정연주 사장 해임작전'에 돌입했다.

도대체 "뼈저리게 반성한" 것은 누구이고, 180도 입장을 바꾸어 강공드라이브를 추진한 것은 누구란 말인가. 이랬다저랬다,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최고 권력자의 행보는 국민을 헷갈리게 한다. 그리고 '방송'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대통령의 헷갈리는 행보야말로 국민을 등 돌리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명박 정부 8개월이 피곤하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 그리고 보수언론이 아무리 '잃어버린 10년' 운운해도 벌써 국민들은 지난 10년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운 지난 10년', 우리 사회는 법치와 원칙, 민주적 절차의 완성, 상식 혹은 신의의 정치를 이루어냈다. 방송독립성 문제를 '법과 원칙'의 틀 안에 명문화한 것 또한 양보할 수 없는 성과였다.

이제 8월 8일은 방송독립성을 짓밟은 부끄러운 날로 기록됐고 아마도 정연주 사장은 이 정권의 탈법적 해임에 맞서는 법적 소송에 들어갈 것이다. 정 사장이 짓밟힌 방송독립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의로운 싸움에 꿋꿋하게 임해 주기를 바란다. 그나마 지난 10년의 민주화 성과 중 이명박 정부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유일한 영역이 사법부인 듯하다. 사법부의 '법'에 따른 원칙적 판단을 기대해 본다. 


태그:#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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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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