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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 폭탄이 터졌다.

 

불도저 이명박 정부가 '강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한 건 해낸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들이대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 혼돈이 일어난다. 나는 중산층인가, 서민인가, 아니면 극빈층인가?

 

왜냐하면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감세 정책안'이라고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각종 종이 신문 세면 이상에 실린 세제 개편안 보도를 보고 한 눈에 무슨 소리인지 알아내는 서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과표구간이니 법인세니, 양도소득세니 쉬운 말인 것 같지만, 먹고 살기에 바쁘고 버는 돈이 적어 낼 세금이 얼마 되지 않는 서민에게는 일상생활에 많이 쓰이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좀 억울한(?) 것은 나의 소득과 주거 수준이 정부가 분류하는 중산·서민층의 기준을 충족하려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사실이다. 아니 내 평생에 서민층에 턱걸이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중산층은 어림도 없다.

 

 

나는 중산층인가? 서민인가? 극빈층인가?

 

일단 경제적인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래도 고정급을 받고 있는 정규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발표하면서 소득세 과표구간 8천800만원 이하를 중산·서민층으로 분류했다고 한다. 과표구간이 8800만원이라는 이야기는 각종 소득공제를 감안했을 때 실제 연봉으로는 1억원이 넘는다는 뜻이다. 정규직인 나는 중산·서민층의 상위 기준선에 50%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기준으로 소득세를 깎아줬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 이번 조치로 가구소득 1억원인 집은 99만원의 세금을 깎아주면서, 2천만원인 집은 4만원을 깎아줬다. 1년에 4만원이니 한 달 월급에서 3천333원을 깎아주는 셈이다. 서민의 생활 안정을 위해서 정말로 큰일을 해 주었다고 고맙다고 굽신거리기라도 해야겠다.

 

그나마 나는 남들이 부러워해주는(?) 정규직이라 연간 50만원의 세금 정도는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이번 세제 개편으로 이득을 얻는 유일한 액수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연간 50만원 깎아주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면서 좋아해야 할까? 그러기에는 다른 분야 세제 개편이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근로소득세 개편을 살펴봤으니 수순에 의거하여 부동산 세제 개편을 보자. 부동산 세제개편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면서 절로 주눅이 든다. 근로소득세야 개인적인 노력으로 어찌어찌 해서 중산층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민층에 턱걸이라도 했는데, 부동산 쪽으로 눈을 돌리면 금방 극빈층으로 전락을 한다(진짜 주거 빈민층에게는 미안한 표현인 것을 안다, 그러나 용서하시라, 이명박 정부가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다).

 

강부자 내각 기준으론, 나는 '극빈층'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1가구 1주택자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이 되는 고가주택의 구분점이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상향된 것이다. 9억 원이 안 되는 아파트는 고가주택이 아니란다. '강부자' 내각이 보기에는 7~8억짜리 아파트가 중가 아파트이고 6억 이하 아파트는 저가 아파트가 되는 것이다. 말하기 창피하지만 내가 부동산에 가진 자산이라곤 1억 원 전세자금이 전부다.

 

앞으로 한 10년을 월급 통장 째 저축하면 저가 아파트를 살 것이고, 한 20년을 모으면 중가 아파트를 살 모양이다. 수입의 50% 정도를 꼬박 저축한다고 하면 20년 걸리면 저가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정부가 말하는 저가 아파트 하나도 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부동산 보유 수준으로 보건데, '강부자 내각' 기준으로 나는 극빈층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정부는 6억 원이 넘는 주택을 전국의 4%정도, 약 29만가구로 추정했다고 한다. 물론 이중에 39.3%가 강남, 서초, 송파에 몰려 있고, 18만 가구 정도가 양도세 면세 혜택을 받게 됐다. 이명박 정부는 이들을 위하여 정말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장기보유특별공제도 20년에서 10년으로 단축하고, 전체적인 양도세율도 완화했다. 이중 삼중의 혜택이 '강부자 내각'에 의하여 '강부자'에게 주어진 것이다.

 

 

'강부자 내각'이 내게 준 것과 '강부자'에게 준 것

 

'강부자'에 대한 정부의 세밀한 배려는 종부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과표적용률이 매년 10%포인트 높아지는 것을 작년 수준인 80%로 동결했다. 집값이 떨어지는데 세금부담은 오히려 높아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란다. 종부세에 붙는 농특세도 폐지해 세 부담을 한결 덜어주었다. 정말로 눈물겨운 배려라 아니할 수 없다.

 

상속·증여세를 크게 낮춘 것도 소외감을 극대화시키기는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집안에 부모님 재산이 좀 있다고 나도 이번 조치에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정부 통계에 의하면 작년 사망자의 0.7%만이 상속세를 냈다고 한다. 그만큼 어지간한 사람은 가난해서 상속세를 내기도 쉽지 않다.

 

알고 봤더니 현행 세제로도 10억까지는 일괄공제와 배우자 공제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님이 몇 억 정도의 재산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상속세 걱정을 하는 것은 주제 파악을 못하는 이야기가 된다.

 

결국 이번 상속·증여세 인하 조치는 재벌 총수 아니면 강부자 중에서도 일부에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재벌들이 상속세를 내지 않겠다고 법을 어기는 일도 사라지고, 신문 지상에 불명예스럽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상속세를 깎아주겠다고 저리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이러 저러한 명목으로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 돈을 더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이번 세제 개편으로 깎일 세금이 아니다. 그만큼 수입이 줄어들면 지출을 줄여야 하는 것이 정부 재정운용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일반 가계부 작성의 기본 원칙이다. 도대체 무엇을 줄일 것인가?

 

부자들에게 26조원 퍼붓기 위해 무엇을 줄일 건가

 

이번 정부 조치로 앞으로 5년간 26조원대의 세금이 감면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재정이 쓸 수 있는 26조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지출에서 줄인 세금만큼 삭감할 것인가? 정체모를 여간첩 하나 잡았다고 '한국판 마타하리'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정부가 북한 위협을 나 몰라라 하고 국방 예산을 줄일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 월급을 깎을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할 돈을 줄일 것인가?

 

정부는 감세로 인하여 경제가 활성화돼 세수가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을 하는 모양인데, 747 공약이 무너진 것이 언제인데 아직도 자신들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재벌 총수들에게 사면해줬으니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압박한 것이 현 정부이다.

 

재벌들이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현 정부이다. 이미 100대 기업의 사내 유보자금이 500조를 넘는다고 한다. 이런 돈을 쌓아놓고 있는 기업에게 법인세를 깎아주면서 투자를 활성화하게 한다는 논리를 정부는 펴고 있는 것이다. 감세로 세수가 확대될 것이라는 정부의 희망 섞인 기대는 불확실한 기대일 뿐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삭감할 예산의 대상은 복지 예산 밖에 남지 않는다. 안 그래도 한나라당은 좌파 법안을 개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 자유보다 평등을 상대적으로 강조하는 좌파의 사회과학적 개념을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이라면 대놓고 복지 법안을 고치겠다는 발언인 셈이다.

 

결국 서민은 죽이고 강부자는 살리는 정책이다. 좌파 정책을 펼쳤다고 한나라당이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10년 간 양극화 현상은 계속되었다. 여기에 지난 10년보다 정책의 중심 방향을 더욱 우측으로 틀겠다는 것을 명확히 한 이상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 양극화의 심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가 선택할 수순으로 복지예산 삭감이 아니면 공기업 매각도 있을 수 있겠다. 공기업 민영화도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자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흔들 수 있는 정책이다. 아마도 알토란같은 공기업을 팔면 감세로 인한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만큼 벌어질 공공요금의 인상은 또다시 서민의 부담이 된다. 정부가 이 카드를 가지고 감세를 추진했는지 알 수 없지만,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분을 어떻게 메우든 간에 모두가 서민의 삶을 불편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돌아올 몫을 뺏어가는 일임은 분명할 것이다.

 

경제적 혜택 못 줄 거면 립서비스라도 제대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번 세제 개편안이야말로 새 정부 들어 부자들을 위한 첫 정책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나마 정책담당자의 입을 통해 나온 가장 솔직한 발언으로 평가된다.

 

불도저식으로 화끈하게 '강부자'를 밀어주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라. '강부자'의 표로 당선되었고 그들이 지지기반이니 기반을 다질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란 것만은 인정해주기 바란다. 괜한 중산·서민층을 내세우진 말기 바란다.

 

그래도 중산층 끝에 줄을 달고 간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의 가슴에 멍만 남겨준다. 평생 가야 정부가 이야기하는 중저가 주택도 제대로 사지 못할 사람에게는 사회적 소외감만 증폭시킬 뿐이다. 경제적으로 이득을 주지 못할 것이면 립 서비스라도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태그:#세제개편안, #강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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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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