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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측근 구본홍씨의 사장 취임으로 벌어진 'YTN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50일 가까이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사측은 최근 사장 출근 저지 투쟁 등에 동참한 노조원 6명을 고소하고, 76명을 징계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YTN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나도 징계하라'는 직원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노조와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릴레이글과 댓글 일부를 싣는다. <편집자주>

[1] "혜택은 사양, 저도 잡아가세요"

 

국제부 신OO입니다.

 

6명 고소, 그리고 76명 징계 심의. 나름 전략적으로 선택한 명단이겠지요. 딱 그 숫자만큼만 회사에 항명한 것이라 믿고 싶겠죠. 그들만 처벌하면 항복할 것으로 생각했나요? 물론 심의 과정에서 숫자는 더 줄겠죠.

 

제 이름이 명단에 빠진 것에 대해서는 일단 감사합니다. 그래도 저를 예쁘게 봐주신 거니까요. 하지만 그런 혜택(?) 사양하겠습니다. 같은 편이 아니니 저도 잡아가세요. 명석한 분들께서 혹시 실수로 빠뜨린 것은 아니겠죠? 나름대로 채증을 하셨다면 잘 살펴보세요. 저 역시 많은 노조원들과 더불어 주주총회를 저지하려 했고 사장실을 점거한 채 구호도 외쳤으니 말이죠.

 

공정방송을 위해 싸우는 노조원들은 훨씬 많답니다. 명단에서 빠지면 회사 편이 될 거라는 착각은 말아주세요. 부당한 인사가 난 뒤 소집된 비상총회에 100명 가량이 모였다고요. 그 숫자가 적어보였나요? 그 숫자가 전부로 보였나요? 그 뒤에 어린 더 크고 많은 분노를 보지 못했나요?

 

저 자신은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밖에서나마 내내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현상과 본질을 동시에 꿰뚫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선배들은 다 어디 갔나요? 그나마 보이는 것도 믿고 싶지 않았던 거겠죠.

 

저 자신 그동안 노조게시판에 눈도장만 찍고 그저 조용히 노조의 지침만 따랐습니다. 하지만 더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머지 조합원 동지들도 이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부팀장 선배들에게 한 번 더 호소합니다. 옳은 것을 위해 이제는 제발 행동해 주세요. 달갑지는 않겠지만 누구에게나 퇴직의 순간은 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후회할 일을 남기지 말아야죠. 언론인이란 무엇보다 명예를 먹고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감히 조언합니다.

 

제가 입사했던 1994년, 대한민국 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며 수송동 사옥으로 모여들었던 선배들은 정말 큰 사람들이었죠. 제가 잘못 본 거였나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습니다. MB 특보 출신 구본홍씨를 위해 그동안의 자존심과 신념을 버릴 건가요?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글에 달린 댓글]

- 징계·고소 대상은 말 그대로 살생부. 저도 그 명단을 보고 신 선배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측의 명단에는 구본홍씨의 사장 취임을 반대해 온 모든 노조원의 이름이 올라가야 마땅합니다. 비록 여러 가지 사정으로 투쟁의 현장에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의 뜻과 의지만큼은 하나였으니까요.

- 너 그럴 필요 없는데. 안 그래도 니 맘 다 아는데. ㅎㅎ 근데 너무 고맙다. 나 누구냐고? 징계 대상에 포함된 니 동기

- 저도 신OO씨랑 같은 상황이던데요. 왜 빠졌지? 이상하네.

- 저도 징계명단에 올랐지만 노조원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사실 투쟁을 제대로 못해 미안할 따름이지요. 징계명단에 올랐으면서도 "너무 다행이다"라는 마음. 참 아이러니칼하지요.

- 이래서 아직 이 조직이 다닐 만 합니다. 고맙다. 우리가 그동안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구나.

- 이 싸움 우리가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점점 듭니다.

 

[2] 징계에 동참합니다

 

사장임을 내세우고 있는 구본홍씨는 최근 경영기획실의 이름을 빌려 '현실을 직시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며 "더 이상의 파행과 경거망동은 끝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네, 저희는 구씨와 사측의 제안대로 현실을 분명히 직시하고 있습니다. 취재와 제작, 방송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 선배 후배들의 자랑스런 이름이, 징계 대상 명단에 오른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YTN 구성원으로서, 또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가슴 깊은 고민과 아픔을 보듬어 주던 사랑하는 선배와 후배들의 이름이 징계와 고소대상에 오른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낙하산 반대와 공정방송 사수를 외치며 싸워온 저희들의 행동을 '경거망동'이라고 표현한 사측에 묻겠습니다.

 

낙하산 반대와 공정방송을 외치며 용역들에게 가로막혀 눈물 흘리는 후배들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고, 후배들의 패기 넘치는 양심이 행여 너무 일찍 꺾이지 않을까 걱정하며 행동에 나선 선배들의 모습이, 또 사랑하는 자녀와 아내, 남편을 두고도,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갖은 협박과 위협에도, 바른 길을 가자고 외치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함께 행동에 나선 후배들의 모습이, 진정 "경솔하여 생각 없이 망령되게 행동"하는 '경거망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저희는 이 경거망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저희도 징계해주십시오! 자본과 권력이 아니라, 양심에 따라 길을 걷는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첨언) 징계동참에 함께 해준 9기 조합원들은 인사 대상자들에게 경고 메일을 보내며 구체적인 징계 수순을 밟고 있는 사측과 구본홍씨의 방침에 반대한다는데 모두 뜻을 함께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힙니다. 또한 저희들의 행동이 파업 투표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에서, 또는 누군가의 지시나 부탁을 받고 이뤄진 일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며, '음모'를 제기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YTN 공채 9기

 

[이글에 달린 댓글]

- 에이.. 지금까지는 억지로 참았는데......후배들이 울리는구나. 선배들이 잘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얘들아

 

[3] YTN에서 보낸 14년, 그 날들을 생각하며

 

먼저 글을 올린 분들은 기꺼이 처벌해달라는 표현을 썼지만 왠지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뭘 잘못해 벌 받는 것 같아서. 다만 정당한 행동에 대한 결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불사하겠습니다.

 

다음주 화요일이면 이 회사 밥을 먹은 지도 꼭 14년이 되는 날이 되는군요. 문득 14년 전 그 날들이 그리워서. 그땐 꿈도 많고 쉽게 지치지도 않았었는데. 내 발길을 이 곳으로 돌리게 유혹했던 빛바랜 신문광고와 현 사장이 준 사령장, 그리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세월을 마셔버린 입사 동기 100명의 얼굴들을 추억해봅니다.

 

[이글에 달린 댓글]

- 고생이 많다. 우리의 청춘을 바친 회사 우리가 지키자. 자리에 따라 직업윤리를 내팽개치는 못난 선배들은 이제 잊어버리고 우리가 후배들에게 본받을 만한 선배가 되자. 우리 동기들이 하나가 돼 옳은 길로 뭉쳐 나가자.

 

[4] 옳기 때문에 꺾을 수 없습니다

 

인사팀에서 보내 온 '엄중 경고' 메일 성실히 읽어봤습니다. 사규에 따라 처벌해 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구본홍씨 저지 집회 과정에서 사측이 채증 등에 의거해 올린 징계 명단에도 제 이름 꼭 넣어 주십시오. 부득이한 사정으로 '구본홍 저지' 집회 불참하고 서초동 출입처로 직행했던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열심히 참석했는데, 왜 징계 대상 명단에 빠져있는지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저를 무시해서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겠습니다.

 

의자에 기대다시피 앉을 수밖에 없는, 만삭이 다 되어가는 사우도 징계하시겠다면서 저 같은 사원 왜 빼시나요? 일정 부분 자기 손해 볼 각오도 없었다면, 애초 집회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 하는 데 힘 보태겠다면서 편하게 이뤄보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아둔하지는 않습니다.

 

여태 살아오면서 10차례도 넘게 봐서 대사 외울 정도가 된 영화가 있습니다. '강철중' 시리즈입니다. 2편에서 현실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 '꼴통 검사'로 출연해 서울중앙지검 검사장과 동료 검사들 모아놓고 이러더군요.

 

"이렇게 구린내 풀풀 나는 사건 그냥 두면 검사 더 못 합니다. …쪽팔려서요."

 

범인 잡으러 가면서 상관인 부장검사 손에 자기 신분증 꼬옥 쥐어주고는 이러더군요. "홍길동이 왜 홍길동이 된 줄 아세요"라고. "00을 00라고도 말 못하는 조직이면 저 안 돌아옵니다"라고요.

 

전 그렇게 말할 용기 없습니다. 그리고 조직 떠나 안 돌아오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내가 너무 사랑하고 선후배들과 함께 하고 싶은 직장이라서 못 떠납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땀 흘리며 서로 아껴주고 회사 키우고 그렇게 잘 하고 싶어서 못 떠납니다. 저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더라도 그냥 버티고 있을 랍니다.

 

이런 말 하는 저는 부족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옳기 때문에 꺾을 수 없는 일을 하려는 것이니 감수하겠습니다. 제가 그것의 합당 여부를 마음으로 용납하건 아니건. 하지만 지금 회사는 지금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잠시라도 생각 한 번 해보십시오.

 

[5] 몸은 떨어져 있지만...

 

지국 근무자로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사우들과 함께 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사측의 일방적인 징계·고소 대상자 명단에 오른 82명의 선후배, 동기들의 이름을 봤을 때 미안한 마음에 전화 한 통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YTN을 사랑하는 대다수 노조원들이 같은 마음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부당한 인사 조치는 즉각 중단돼야 하고, 진행될 경우엔 신OO 선배 뒷자리에 저희들의 이름도 올려주십시오. 바다 건너 제주도에서 마음으로 응원하는 권OO, 고OO.

 

[이 글에 대한 댓글]

- 오랜만에 보는 이름 두 글자씩만 해도 눈물이 울컥한다. 힘들 내자!

- 코 끝이 찡한다. 우리모두 힘내자. 홧팅.

 

[6] 쭉! 같이 가겠습니다

 

쭉! 같이 가겠습니다. 징계·고소 대상자 명단에 선후배들의 이름을 보면서 입사부터 지금까지 이들과 함께했던 나날들을 회고해 봅니다.

 

정말 진정한 방송을 해보자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용기있는 선배들과 후배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괴로워한 것도 사실입니다.

 

멀리 제주에서 동기와 후배가 징계에 대한 동참을 요구하는 글을 보고 저를 비롯한 2명의 조합원이 징계명단에 이름을 추가로 올려줄 것을 희망한다는 각자의 뜻을 확인했습니다.

 

영상편집팀 박OO, 영상취재팀 김OO, 나OO 이상 3인을 징계. 고소 대상자 명단에 추가로 올려주십시오. 이는 누구의 지시나 누구의 권고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이글에 대한 댓글]

- Y.T.N 아직은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요즘은 왜 이리 눈물이 많이 나는겨. 오늘은 눈시울을 안 붉히려 했는디.


태그:#YTN 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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