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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업주의 사진과 유서가 안마시술소 앞에 걸려 있다.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업주의 사진과 유서가 안마시술소 앞에 걸려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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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 장안동이요."
"거기 요즘 가도 못해요."
"뭘요?"
"거기 안마시술소 요즘 단속 심하잖아요. 전부 영업 안 해요."

늦은 밤, 서울 대학로에서 택시를 타고 "장안동"을 외치자 택시 기사가 한심한 눈길을 보낸다. 눈빛은 '여태 단속 소식도 몰랐니?'하고 묻는 듯하다. 내가 "거기(?) 가려는 것 아닌데요"라고 말해도 별 소용이 없다.

오히려 기사는 "장안동 아니어도 괜찮잖아요, 그냥 강남 쪽으로 갈까요? 요즘 그쪽으로 많이 가는데"라며 새로운 정보를 알려준다. 지난 주말(6일) 밤 11시께 서울 대학로에서 택시를 탔을 때 벌어진 일이다.

장안동으로 향하며 택시 기사에게 기자 신분을 밝히고 이것저것 물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여전히 '성 구매자'로 나를 바라봤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기사는 "서울에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택시를 타고 장안동 가자는 성인 남자의 9할 정도는 안마시술소 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로 장안동은 안마시술소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안마는 사전적 의미인 '손으로 몸을 두드리거나 주물러서 피의 순환을 도와주는 일'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최근 동대문경찰서의 집중 단속이 말해주듯 장안동 안마시술소의 핵심은 성매매다. 장안동에는 크고 작은 안마 업소 약 50여 개가 몰려 있다.

장안동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니 장례식장에서 맡을 수 있는 진한 향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향 연기는 안마 업소 '쿨'에서 퍼져 나오고 있었다. 이 업소 1층 주차장 입구에는 최근 경찰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최아무개 사장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분향소에는 '상인회 일동'에서 보낸 화환이 가득했다.

경찰 단속으로 일제히 영업 중지한 장안동 안마시술소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안마시술소 업주의 가게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경찰의 단속에 항의해 자살한 안마시술소 업주의 가게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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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바로 옆에는 최 사장의 사진과 함께 그가 남긴 유서가 적힌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의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동대문 경찰서장님,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에 장안동 상인들의 모습을 보셨는지요. 물론 저희 성매매 업소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매일 두렵고 신물이 납니다. 저의 죽음으로 상인들의 안전이 조금 더 연장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리고 안마 업소 '쿨' 건물 정면에는 '최○○ 명복을 빕니다'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길을 지나는 시민들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쿨' 주변의 모든 풍경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6일 찾은 장안동은 주말임에도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불야성을 이뤘다던 안마 업소의 간판 불은 꺼진 지 오래였다. 경찰은 도로에서 음주 단속을, 골목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안마 업소와 각종 술집 그리고 식당이 몰려 있는 거리에는 '손님'들보다 경찰이 더 많이 보였다.

"단속을 해도 좋으니까, 저쪽 가서 하라고!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우리도 좀 먹고 살게 해줘야지. 정말 해도 너무들 하네."

안마 업소 사장들의 항의가 아니다. 장안동 상업지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한 아주머니가 경찰에게 거칠게 퍼붓고 있었다. 경찰은 이런 항의가 지겹다는 듯 듣는 체도 하지 않고 먼 산 바라보듯 시선을 다른 곳에 둔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장안동에서 경찰은 '공공의 적'으로 통하고 있었다. 상인들은 "경찰의 단속 때문에 엄한 사람들 다 죽게 생겼다"고 너나없이 경찰을 비판했다.

"먹고 살게 해줘야지!"... 장안동 '공공의 적' 된 경찰

9년째 장안동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밤이면 이 동네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는데, 지금은 단속 때문에 파리만 날리고 있다"며 "결국 안마 업소가 아니라 식당, 술집, 포장마차 등 모든 상인들이 먼저 죽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의 단속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장안동의 상가 밀집 지역. 손님이 없어 한 노점상이 잠을 자고 있다.
 경찰의 단속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장안동의 상가 밀집 지역. 손님이 없어 한 노점상이 잠을 자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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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동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박아무개 사장의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박 사장은 "경찰 단속 이전에는 서울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 없어 거리에서 축구해도 될 판"이라며 경찰의 단속을 비난했다.

박 사장의 소개로 한 안마 업소 사장을 만났다. 그는 "장안동에서 안마로 돈 번 사람들은 모두 예전에 돈만 챙겨서 여기를 떠났다"며 "지금 업소 사장들은 최소 10억씩 빚 얻어서 뒤늦게 장사를 시작한 사람들인데, 경찰이 우리 '피라미'들만 죽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단속을 하려면 다 하든가, 왜 장안동만 못살게 구는가, 강남이나 다른 데 가봐라, 아주 신나서 장사 하고 있다"고 목에 핏대를 세웠다.

장안동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은 자신의 '장안동 경험'을 들려줬다. 그는 "단속 전에는 금요일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오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며 "업소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타임에 12~18만원이었고, 업소에서 잠을 잘 수도 있었다"고 자세히 설명했다.

장안동 취재를 마치고 새벽 1시께 택시를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에게 "안마 업소 많은 곳으로 가자"고 하니 방배동으로 안내했다. 방배동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리니 안마 업소 직원이 빠르게 다가왔다.

"형님 안마 한 번 받고 가세요. 아가씨들 예쁘고, 어립니다. 댁이 어디세요? 안마 받고 주무시면 아침에 댁까지 모셔다 드립니다."

"경찰 단속? 안마도 강남은 불패"

"단속 없냐"고 묻자, "100% 안전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여긴 장안동하고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와 헤어져 다른 안마 업소 한 곳을 찾았다. 이 업소의 '실장'은 "우리 가게는 10번 오면 1번 공짜로 해주는 마일리지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며 "단골로 관계를 맺으면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올림픽 때문에 한동안 손님이 줄었는데, 추석만 지나면 곧 회복될 것"이라며 "장안동 단속 때문에 손님이 많이는 아니지만 약간 증가했다"고 밝혔다.

확실히 소문대로 강남의 안마 불빛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다. 순찰을 도는 경찰 차량이 지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장안동에서 자취를 감춘 안마 전단지와 '삐끼'들도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강남의 안마 업소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우리 강남은 장안동과 다르다"며 유독 '강남 불패'를 강조했다.

지난 6일 찾은 강남의 한 안마 시술소 골목. 장안동과 달리 강남의 안마 업소는 경찰의 단속 부담없이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강남의 한 안마 시술소 골목. 장안동과 달리 강남의 안마 업소는 경찰의 단속 부담없이 영업을 하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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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장안동 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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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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