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6일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연금기금이 미국 금융위기의 상징인 세 회사(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AIG)에 7720만 달러를 투자했다가 원금의 2/3에 해당하는 손실을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 확대 정책의 적절성 여부가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실장이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주식투자 확대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주>

미국발 금융공황을 계기로 국민연금기금의 해외주식투자 손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메릴린치·AIG 3개 회사에서 500억 원, 공적자금이 투입된 2개 모기지 회사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서 5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이 1천억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기업들 외에도 해외주식에 투자된 국민연금기금이 많기 때문이다.

 

민주당 최영희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까지 국민연금기금이 해외주식에 투자한 금액은 5조1914억 원이었다. 올해 7월까지 5조2254억원을 추가 매입하여 총 10조4168억원이 되었다. 지난해 말까지는 1016억원의 흑자를 냈으나, 올 들어 적자로 바뀌었다. 7월까지 해외주식의 시가평가액은 9조6284억원으로 지난 연말과 비교하면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 과연 여기가 끝일까?

 

해외주식 손실, 1조 원 훌쩍 넘을 것

 

뉴욕증권거래소(NYSE)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2007년과 비교해 약 1/4의 손실을 내고 있다. 작년 하반기 1만4000 포인트 수준에서 올해 초 1만3000 수준으로 낮아졌고, 올해 7월 말 1만1500 수준으로 하락했다. 9월 17일 현재는 7월 말에 비해 다시 약 1천 포인트가 떨어져 1만610이 되었다.

 

다우지수가 7월까지 약 1500 포인트 하락하는 동안 국민연금기금 보유 주식의 시가평가액에서 1조 원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고, 8월 이후에도 다우지수가 1000 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점을 감안하면, 현재 국민연금기금이 투자한 해외주식의 시가평가액 손실분이 1조원을 훌쩍 넘은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가 또 끝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으면 국민연금기금은 올해 말까지 약 7조원을 더 투입해 총 17조원을 해외주식에 쏟을 예정이다. 2009년에는 다시 10조 원을 늘려 총 27조원이 해외주식에 배정된다. 국민연금기금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를 경우 앞으로 5년 후인 2013년엔 해외주식 비중이 더욱 대규모로 늘어난다.

 

왜 이렇게 해외주식 투자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일까? 정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국민연금공단 등 세 주체가 공조한 결과이다.

 

 

정부는 이전부터 해외주식 투자 확대를 국민연금기금의 활로로 여겨왔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중장기 국민연금 기금운용 마스터플랜 기획단'을 구성하고 국민연금기금의 중장기 운용에서 해외시장 비중을 확대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플랜은 국내채권·국내주식·해외주식·해외채권 등 자산군별로 기대수익률을 추정했는데, 국내채권은 5.3%로 가장 낮게, 해외주식은 10.08%로 가장 높게 책정했다. 결론은 당연히 해외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애초 기획단을 구성한 의도대로이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매년 해외주식 비중을 늘리는 기금운용계획안을 마련해 왔고, 이명박 정부 들어선 증가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있다. 내년에 해외 주식투자에 총 27조원이 배정되어 있는데, 2007년과 비교하면 2년 만에 무려 5배나 증가한 금액이다.

 

해외주식투자가 늘어나는 데에는 가입자 대표, 정부, 공익위원 등이 참여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도 한몫을 하고 있다. 기금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기금이 지니는 고유한 성격, 즉 전 국민의 노후예탁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민간 여유자금을 재원으로 하는 사적펀드와 유사하게 목표 수익률을 책정해 왔다. 이러한 수익률 설정 방식을 채택하는 한, 고위험 자산인 해외주식 투자를 확대하는 정부 방안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금운용 실무조직인 연금공단의 운용방식도 의문투성이다. 정부 측 인사가 국민연금기금에 관한 발언만 하면 연금공단이 대대적인 순매수에 나서는 연관성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민간 기관투자자들이 빠져나오는 장에서 유독 국민연금기금만 9월 들어 매일 순매수에 나서는 행태를 어떻게 자산운용자의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길 수 있을까?

 

연금공단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정한 투자 예정액을 집행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기금운용위원회가 확정한 기금운용계획은 자산군별로 시장상황에 따라 투자 비중을 조정할 수 있도록 상당한 정도의 허용 범위를 설정해 놓고 있으므로 현재의 주식시장에 대한 판단에 따라 투자 비중을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렇게까지 연금공단이 무리하게 주식투자를 집행할 필요는 없다.

 

올해 5월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성과를 보면 국내채권, 해외채권, 대체투자 모두 3%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국내주식은 마이너스 0.64%, 해외주식은 마이너스 3.73%를 보여 주식부문에 이미 경종이 울렸다. 그런데도 연금공단은 국내주식과 해외주식 매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6월 취임한 박해춘 이사장에 우려와 비판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이다.

 

결국 국민의 소중한 노후예탁금을 가지고 정부, 기금운용위원회, 연금공단 '삼총사'가 위험한 게임을 공조해 왔다. 이와 함께 다음과 같은 편향된 통념들이 국민연금기금을 사로잡아 왔다.

 

위험 관리의 기본을 망각한 연금공단 이사장, 그리고 대통령

 

첫째, 해외주식이 고수익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환상이다. 고수익을 강조할 뿐, 고수익에 고위험이 동반된다는 자산운용의 ABC가 애써 무시돼 왔다. 그 결과가 오늘의 사태다. 자산운용시장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지금은 파생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국제적 투자은행이 몰락하는 금융공황 상황이어서, 고수익보다 고위험이 더욱 강조되어야 할 때이다.

 

이 대목에선 연금공단 책임자와 국정운영 책임자가 마음에 걸린다. 지난 7월 박해춘 이사장은 현재 6%대인 기금수익률을 8%대로 올리겠다고 호기를 부리다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나마 기금운용위원회가 목표수익률을 7%대로 설정한 배경에는 이 수위까지가 국민연금기금이 감내할 수 있는 위험한도였기 때문이다.

 

위험 관리의 기본을 망각한 사람이 연금공단 이사장이라 어처구니가 없으나 그래도 어쩌랴? 대통령은 국민과 대화에서 10% 이상 수익률을 달성하겠다고 객기를 부리는 판이니.

 

둘째, 장기 주식투자는 안전하다는 주장도 현실과 다르다. 연금공단은 자신이 기관투자자로서 주식을 장기 보유할 것이므로 단기 수익률 잣대로 운용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기의 기준이 애매할 뿐 아니라 단기에 위험한 주식이 장기에는 위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 수 있는가? 또한 장기투자를 한다는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에서 투자회전율은 2007년 국내주식의 경우 100%, 국내 투신사에 위탁운용한 주식의 경우는 회전율이 156%에 달하여 장기투자 원칙이 무색하게 매매를 거듭하였다. 위탁계약 기한이 정해져 있어 회전 요인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직 해외주식 투자의 회전율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현재 해외주식투자는 모두 해외투자기관들에 의해 위탁 운용되고 있다.

 

이론적으로도 장기 주식투자가 다른 자산군에 비해 수익률이 높을 거라는 주장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오죽하면 <한국경제신문>의 논설위원조차 국민연금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비판하며 '평균적인 주식 수익률은 언제나 시장수익률에 수렴한다'는 원칙을 강조했을까?

 

셋째, 기금수익률을 높여 국민연금 기금 고갈에 대처하겠다는 발상은 국민연금 재정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상시적 기본 소득이 아니라 투전판의 기대수익으로 가계부를 짜겠다는 주장과 엇비슷하다.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에 미치는 결정적 변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 수준이다. 기금수익률은 적립된 기금 운용에서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재원으로서 국민연금 재정에선 2차적 변수일 뿐이며, 수익률 범위도 시장 상황을 뛰어넘을 수 없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가능한 빨리 국민연금기금 운용체계를 전면 재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정부와 기금운용위원회는 향후 5년간 해외주식, 국내주식 비중을 급격히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중기자산배분안을 공개하고, 동시에 이것의 백지화를 선언해야 한다. 연금가입자들이 직접 자신의 노후예탁금에 대한 운용방안을 논의하도록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둘째, 현재 기금운용전략 수립에서 절대적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수익성 원칙을 폐기하고, 대신 안정성이 그 자리에 서야 한다. 향후 채권 중심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금융기관의 공공화, 사회서비스 건설 등에도 국민연금기금이 참여할 수 있다. 일부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책임투자(SRI) 기조를 중시해야 한다.

 

셋째, 국회에 제출되어 있는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 개정안은 폐기돼야 한다. 이 개정안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안정성 원칙을 강조하는 가입자 추천위원을 내쫓고 민간투자전문가에게 국민연금기금을 내맡기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형식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가입자 대표성을 부정하고, 거대 국민연금기금을 금융세력에 선사하려는 개악 법안이다.

 

가입자의 연금주권운동 절실하다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은 연금가입자이다. 이제 가입자가 나서 연금주권을 선언하자. 지금까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제대로 가지지 않았던 국민연금기금이다. 올해 말 적립금이 250조원으로 국가재정 256조원과 맞먹고, 2040년대엔 무려 2500조 원에 육박하는 소중한 우리의 노후예탁금이다(2005년 불변가격 1천조 원, GDP 대비 50% 수준).

 

올해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기금운용체계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국민연금기금은 고위험 자산시장 늪에 빠지게 된다. 박해춘 이사장의 공격적 기금운용이나, 의사 결정에서 가입자 배제를 핵심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법 개정안은 모두 해외주식을 비롯한 위험자산에 국민연금기금을 내맡기려는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공동프로젝트이다.

 

한나라당이 지배하는 국회에서 법안이 확정되기까지 고작 2~3달 시간이 남았다. 미국발 금융 공황을 계기로 불거진 국민연금기금 운용 논란에서 연금주권운동이라는 소중한 씨앗이 움트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이 소중하게 유지,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사회공공연구소 홈페이지는 http://ppip.or.kr입니다.


태그:#국민연금, #주식투자, #연금주권운동, #박해춘, #금융위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시민은 기자다!" 오마이뉴스 편집부의 뉴스 아이디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