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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집에서 책을 읽었다. 이 좋은 계절 휴일거리치고는 소소한 일이다. 한 주일 동안 머릿속을 채웠던 일들을 풀어내고 혼자만의 시공간적 요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마음을 기울여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 그에 걸맞은 방편을 찾았다. 독서였다.<어린이를 위한 경청>과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 가까이 두고 읽었던 책이다.  

 

<어린이를 위한 경청>(정진, 위즈덤하우스), 현이는 새로 전학 간 학급에서 손은미와 사사건건 부딪힌다. 둘은 합창대회를 앞두고 제1바이올린 연주를 놓고 경쟁한다. 하지만, 손은미가 선생님께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현이는 선생님으로부터 오해를 사게 된다. 그로 인해 바이올린 연주의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왕따  정연지의 몰래 도우미를 해야 한다.(후략)

 

이 책은 베스트셀러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의 어린이판으로, 상대에게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얼마나 좋은 소통의 지혜인지를 일깨워준다. 또 어린 독자들은, '현'이의 변화된 모습으로 간접경험하며, 듣기 싫은 이야기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것보다 '경청'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하나,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조신영, 박현찬, 위즈덤하우스), 30대 후반의 이청, 이토벤의 스토리텔링으로 가볍게 읽히는 책이다. 어느 날 그의 회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한다. 상사는 이토벤에게 구조조정에 협력하면 악기 대리점 개설권을 준다는 제안을 한다. 그는 동료의 비난에 귀 막고 회사의 구조조정을 돕는다. 그러나 대리점을 개점하는 날, 이토벤은 갑자기 쓰러진다. 불치병이다. (중략) 결국 이터벤은 자신의 독선적인 행동을 뉘우치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가는 감동의 드라마를 통해 '공감'과 '상생'을 위한 경청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이청득심(以聽得心), 마음을 기울여 들음으로써 마음을 얻는다

 

그러나 두 책에서 이야기 꼭지를 풀어가는 관점이 다르다. <어린이를 위한 경청>은 성인 대상의 <마음의 지혜를 얻는 경청>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둘 다 '경청'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어린이를 위한 경청>은 경청을 바탕으로 다른 친구를 도우며 성장하고, 친구 관계의 중요성을 넌지시 일러준다는 점에서 이야기를 달리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느 관점인가. 평소 건성으로 '알았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이토벤, 남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자기 편한 대로 이해하고 결정하는 스타일로, 그렇게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살아온 그가 '들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오십보백보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라는 것'.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얘기다.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지만, 누구나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먼저인 것은 아마도 듣는 것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습성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 속을 헤집고 들어가 보자. 악기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는 이토벤, 그는 음악을 좋아한다. 곱슬머리 외모가 베토벤과 닮았다. 그런 까닭에 그는 '이토벤’으로 불린다. 그러나 그것은 정작 귀가 멀어 잘 듣지 못하는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다고 동료들이 비꼬임으로 붙인 별명이다. 직장에서 판단이 빠르고, 또 주저 없이 행동을 옮기는 스타일인 이토벤, 그러나 남의 의견에 대해서는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의 판단과 경험을 가지고 결정을 내린다.

 

'말 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먼저다

 

가정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그는 아들이 자폐아가 된 이유조차 맞벌이인 아내 탓으로 돌린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회사구조조정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 두게 되고, 뜻밖에 불치병인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결국,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은 한 줄거리로 요약된다.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한 직장인이 그로 인하여 스스로의 삶을 반성하게 되고, 가족(아내와 아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커다란 선물('경청')을 남기고 떠난다.

 

이 책에서 소중한 반전은, 자기밖에 모르고 너무나 이기적인 이청, 이토벤이 죽기 전에 아들인 현이에게 바이올린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동료의 도움을 받아 바이올린을 만들기 시작하는 데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토벤은 점점 인간적이고,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상대방의 말이 아닌 가슴으로부터 우러나는 소리를 듣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요즘은 말 잘하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 당연히 말을 잘 할 수 있게 가르치는 학원도 성업 중이다. 그러나 이토벤의 심정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말을 잘 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는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게 우리 생활의 준칙이었다.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경청'이다

 

평소 우린 어떤가. 여러 사람이 만날 때면 한 쪽에서 말을 하고 있는데, 또 다른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뭐가 그리 바쁜지 말을 잘라 버린다. 흔한 경우다. 물론 나도 그런 때가 많다. 그땐 정말 누구의 말을 들어야할지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난감한 상황이다.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경청'이다. 경청을 읽으면서 그 동안의 내 자신을 반성해 봤다. 낯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언컨대 이토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들어달라고', '충고하지 말라고', '판단하지 말고 그저 들어 달라고',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돼.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아도 좋아. 그저 내 이야기만 들어주면 돼'라는 숱한 몸짓을 보냈다.   

 

이 책은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서 일깨워주고 있다. 그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도 모르게 남의 말을 끊으며, 자기 말만 한다. 물론 나 또한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내 이야기를 앞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너그럽지만 안타까운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박종국 기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현재 창녕부곡초등학교에서 6학년 아이들과 더불어 지내고 있으며, 다음 블로그 "배꾸마당 밟는 소리"에 알토란 같은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조신영 외 지음, 위즈덤하우스(2007)


태그:#경청, #반성, #충고, #판단,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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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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