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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중국 인민해방군 모범 병사이자,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모범당원이며, 마오쩌둥의 어록을 한 자도 틀리지 않게 줄줄 외울 정도로 사상과 의식이 투철한 '우다왕'이란 이름의 사나이가 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고향에 있는 마누라에게 꼭 출세하겠다 맹세하고 떠나와 과연 간부 승진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철저한 복무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런저런 불운으로 승진이 차일피일 미루어지자 초조하기만 하다.

 

그러던 차에 취사병으로서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가 되는 행운이 찾아왔다. 마침내 우다왕의 눈앞에 간부로 출세할 길이 열린 것이다.

 

우다왕은 언제나 마오쩌둥의 가장 유명한 정치구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마음속에 되새기며 온 열성을 다한다.

 

하지만 한 여인이 그런 우다왕을 뜨거운 눈으로 은밀히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사단장의 마누라 '류롄'이었다. 어느날 사단장이 장기출장을 떠나자마자 류롄은 얼씨구나 하며 우다왕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마치 흔해빠진 불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류롄이 우다왕을 유혹하며 들이미는 나름의 까닭이 기막히다. 바로 이 부분이 다른 러브스토리와의 차이점이며 가장 절묘한 요점이다.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신과 동의어로 추앙받던 마오쩌둥의 사상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구호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구호에 따라 우다왕은 사단장의 마누라인 류롄에게 열성을 다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엄숙하고 숭고한 뜻이 욕망의 밀어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어이가 없는 한편 참으로 어마어마한 변주라는 생각이 든다. 똑같은 말이 혁명의 구호와 사랑의 밀어로 갈리는데 그 의미의 부조화가 전체에 걸쳐 묘한 분위기를 몽실몽실 만들고 있다.

 

이처럼 충격적인 발상만큼이나 금지된 사랑을 그리는 솜씨도 대단하다. 마치 세필(細筆)로 꼼꼼히 그림을 그리듯이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아리따운 여인의 몸매는 물론이요 열띤 사랑의 몸짓이 이백 쪽을 넘도록 펼쳐지니 뭇 사람들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들 만하다. 얼굴은 화끈거리고 입에는 흐뭇한 웃음이 걸린다.

 

읽다 보면 상당히 다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색, 계>(2007)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바라지 않았지만 몸의 부대낌이 거듭되자 나중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똑같다. 그동안 우다왕에게 천형(天刑)처럼 주어져 고통을 주었으나 묵묵히 참아왔던 것들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우다왕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사랑의 욕망이 쑥쑥 자라나 끝내는 자유의 열망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혹여 음탕하게 보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인간 존엄과 슬그머니 연결 짓는 옌롄커의 솜씨가 대담하고 멋지다. 우다왕과 류롄 둘 사이에는 만리장성처럼 높다란 벽이 자리하고 있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 벽을 넘어서려는 욕망이 든다.

 

자유롭게 사랑하고픈 사나이는 이제 지긋지긋한 굴레를 벗어던지고 귀여운 여인과 영원을 약속하고 싶다. 굴레는 둘의 자유혼을 속박하는 모든 사회체제다. 순간, 평생을 바친 마오쩌둥의 사상과 혁명의 모든 가치들이 믿음을 잃는다.

 

그것은 반역이다. 그리고 둘은 운명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급물살을 탄다. 마음 같아선 만리장성을 백번도 넘도록 우당탕 부수고 훌쩍 뛰어넘겠지만, 현실에선 굴강하고 높은 벽이 온전히 거기 존재한다는 게 뼈저리다.

 

모두들 알다시피 높이 날수록 떨어질 때 아픈 법이다. 사랑도 그렇다. 눈꽃이 휘날리는 어느 추운 겨울날, 굳게 닫힌 대문 앞을 쓸쓸히 서성이는 사나이의 모습이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웅진지식하우스(2008)


태그:#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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