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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나의 도시>의 '남유희'. 그녀는 잘 다니던 직장의 대리직을 벗어 던지고 뮤지컬 학원에 등록한다. 오랜 꿈이었던 뮤지컬 배우가 되려고 서른 나이에 과감히 학생이 된다. 주변 친구들은 왜 그만 둔거냐며 제정신이냐고 묻지만 그녀는 담담하다. 아니, 행복하다. 비로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그녀에게 대리직 연봉은 이제 걸림돌이 못 된다. 뮤지컬을 시작한 후 바로 두각을 내보이는 그런 대단한 천재도 아니다. 마지막 방송에서 그녀는 작은 역에도 만족해하며 순간을 즐긴다.

 

사는 대로 생각해? 생각대로 사는 거지

 

  <달콤한 나의 도시>를 보면서 내심 남유희의 용기가 부러웠다. 사람들은 과연 자신에게 물질적 풍요를 주고 있는 직장을 그만 두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 수 있을까. 갈수록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정년도 빨라졌는데 말이다. 누군가 말했다더라. 23살이 되면 그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좋아하는 일도 돈이 안 되면 힘겹고 즐겁지가 않은데 순전히 '락(樂)'만으로 삶을 즐기는 게 가능할까.

 

  가수 겸 음반 프로듀서 박진영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음악은 學(학)이 아니라 樂(락)이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악장, 두루미도 이렇게 말한다. "연습이 즐거워야 연주도 잘 되는 거 아닌가요?" 이에 강마에는 이렇게 응수한다. "공연 망치면 너나 나나 평생 악몽이야!" 즐거움도 좋고 이해도 가지만 현실은 현실이라는 강마에의 씁쓸한 충고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초반을 장식한 석란시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본업으로 두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한때 음악을 전공했거나 좋아했던 이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계속 이어오지 못하고 평범한 회사원, 9급 공무원, 주부, 수의사 등 음악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동호회를 하면서 계속 음악을 해 오던 사람도 있지만 시어머니 수발과 집안일에 치여 몇 십년간 악기를 만져 보지도 못한 사람도 있다. 이들에게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아주 오랜만에 혹은 처음으로 설렘을 준다. "내가 정말로 무대에 설 수 있구나."

 

 '음樂', 그 즐거움이 일이 된다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성공적인 공연에 시에서는 석란시립교향악단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빅뉴스에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시향의 멤버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강마에는 그들의 예상을 쉽게 벗어났다. 강마에는 실력이 있다고 판단한 세 명에게만 오디션을 제의했고 나머지는 다른 뛰어난 연주자로 채우겠다고 했다.

 

  앞으로 이를 둘러싼 갈등이 드라마 속에서 쭉 전개되겠지만 시립교향악단의 설립은 음악에 대한 또 다른 시련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낙오된 사람들은 함께 작전도 짜보면서 시향에 들어가려 애쓰고 있지만 그들이 시향에 들어가더라도 어려움은 계속 될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오케스트라 연주는 이제 즐거움이 아니라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점은 크다. 그저 즐기는 차원이 아니라 일이고 본업이 되는 셈이다.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했던 연습량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힘들 것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남유희가 하고 싶어 하던 뮤지컬을 하면서 기쁨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그 뒤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는 모른다. 취미가 본업이 된다면 자기가 즐기는 일이기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본업이 된다는 것은 그 분야의 전문인으로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고 취미가 아닌 밥값을 해야 하는 직업이 된다. 따분하고 재미없게 여겨왔던 본래 직업, 회사원이나 공무원 말단직, 경찰 등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할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걸 참지 못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악기를 잡지만 시향은 자신을 옥죄던 직장과 같아질 것이다.

 

  <달콤한 나의 도시>나 <베토벤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꿈을 찾아 떠나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기쁨을 누려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무슨 일이든 시간이 흐르면 흥미도 떨어지고 적성도 맞지 않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자신이 그저 돈 버는 기계 같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그 일이 설령 듣는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라고 해도 말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6회 분량이 방영되었고 아직 방영분이 반절 넘게 남아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드라마이긴 하지만 '휴먼 드라마'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듯이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 지는 대충 감이 오는 바이다. 철저한 실력주의자인 강마에는 수준 이하의 오케스트라를 성공적으로 끌어올리며 음악으로부터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이고 어렵기만 했던 클래식 공연은 즐거운 음악 시간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오랫동안 묵혀뒀던 꿈을 연주하다.

 

  "자, 즐거운 음악시간이다." 이 드라마와 자주 비교되는 <노다메 칸타빌레>의 지휘자 치아키가 'R☆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시작하며 하는 말이다. 치아키는 여주인공 노다메가 만화 <프리고로타>를 알려주기 전까지 실력에 못 미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호되게 다루기로 유명했다. 음악에 있어서 무척이나 엄격한 그였지만 완벽만을 추구해서는 좋은 음악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단원들을 유연하게 이끌어 간다.

 

  이런 점에서 두 드라마가 비슷하다고 지적을 받고 있긴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아직 결말이 남은 드라마기에 앞으로 <노다메 칸타빌레>와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음대생들의 이야기지만 <베토벤 바이러스>의 오케스트라는 음악이 전공이든 아니든 각자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사정에 처해있는 사람들이 주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우여곡절도 많고 서로 타협점을 찾기도 어렵다.

 

  단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만은 뒤죽박죽 오케스트라와 냉혈한 강마에 사이에서 조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음악은 완벽해야 한다'와 '즐거워야 한다'. 아마추어와 프로. 둘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음악의 본질이 이 드라마를 통해 어떻게 구현될 지 기대된다.

 


태그:#베토벤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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