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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부터 시작된 국회 국정감사가 어느덧 중반을 넘어서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국감은 여러 청문회와 함께 정치 신인들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분투하는 장이다. 초선 의원들은 맹렬한 공격력을 발휘하며 국민들의 '눈 도장'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이에 반해 다선 의원이나 중진 의원들은 대개 뒷짐 지고 '점잖게 피감기관 나무라는 공자님 말씀 같은'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떤 중진 의원들은 지방 감사 일정에는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 소속 박지원(민주당·전남 목포) 의원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는 'DJ의 복심'으로 불리는 민주당 중진이다. 재선 의원이지만 그의 정치적 무게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이름 뒤에 항상 따라붙을 정도로 무겁다.

 

초선처럼 진지한 '알지만' 의원

 

그런 그가 마치 초선 의원처럼 국정감사에 열심이다. 박 의원은 지난 6일 감사원 국감때 부터 13일 광주고법·광주고검 국감까지 단 한 차례도 결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 단 한 차례도 자리를 뜬 적이 없다.

 

13일 오전 실시된 광주고법 국감에서 그의 발언 순서는 10번째였다. 일부 의원들이 동료의원의 질의시간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인사를 하거나 급한 용무를 보러 자리를 비우지만 그는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한 의원이 "형님, 후배들 봐서 살살 하시죠"하고 농담을 건네도 "오랜만에 국회에 와서 배우려고…"하며 웃어넘겼다.

 

그는 14대 때 국회의원을 하고 18대 때 국회로 돌아왔다. 15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1997년 정권교체와 함께 권부의 핵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보좌한 이유가 크다. 물론 노무현 정부에서는 대북송금 특검과 함께 영어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무죄로 종료되긴 했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문광부장관과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박 의원은 요즘 국감현장에서 '알지만' 의원으로 통한다. 모든 질의에 앞서 "제가 …을 해봐서 알지만" "그 자리에 있어봐서 알지만", "찌라시에 근거한 검찰수사를 받아봐서 알지만" 등으로 국정경험을 토대로 질의해 피감기관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법사위 4총사' 팀플레이

 

박 의원의 활약은 국정감사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6일 감사원 국감에서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에 대한 특별감사와 관련 "절차상 잘못이 있었다"는 감사원장의 사과를 받아냈다. 이는 민주당이 자평하는 초반 국감성과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는 "사법 60주년에 걸맞게 사법살인 등에 대한 사법부의 진정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김용담 대법원 행정처장 등은 "사법부의 사과 부분을 백서에 포함시키면 된다"고 반대했지만 결국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식사과를 이끌어냈다.

 

광주고법과 광주고검에 대한 국감에서도 그는 ▲ 인화학교 장애학생에 대한 성폭력범에 대한 낮은 형량 부당 ▲ 일부 국가기관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폄훼 ▲ 쌀 직불금 철저수사 ▲ 무기명 투서로 시작하는 수사의 부당성 등을 지적하며 자신에게 주어준 발언기회를 모두 사용했다.

 

박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이 체계적인 팀 플레이를 이끌기도 한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모두 4명. 박영선·이춘석·우윤근·박지원 의원이다. 이들은 감사 시작 전 아침에 모여 작전회의를 열고 공세전략과 역할분담을 결정한다고 한다.

 

13일 광주에서의 국감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이들의 작전은 이런 식이다. 먼저 이춘석 의원이 포문을 열면, 박영선 의원이 가세해서 여러 사례를 제시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간사인 우윤근 의원이 법리적 보강을 하고 나면, 박 의원이 질책할 건 질책하고 사과받을 건 사과받고 마무리한다.

 

한 보좌관은 "민주당의 팀 플레이는 중진인 박 의원이 폼 잡고 있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중진인 박 의원이 솔선수범해서 국감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는 모습은 전에 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의원의 국감 기조는 '억강부약'

 

한편 박 의원은 14일 오후 광주고검 국감 보충질의에서 "국민의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이회창 후보 자제분들의 병역비리 수사에 대해서 검찰총장을 통해 압력도 하지 않았고, 법무부장관을 통해 인사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은 "지금까지도 이회창 후보 자제분 병역비리 조사는 이 박지원이가 박영관 부장에게 특별지시를 해서 이루어졌고 굉장히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됐다는 오해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영관 제주지검장은 서울지검 특수1부장 시절에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했었다.

 

박 의원은 이어 "그런데 어느날 제가 검찰 인사를 보니까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전주지검장에서 제주지검장으로 발령이 나셨더라. 그래서 저는 상당히 '이 박지원으로 인해서 박영관 검사장이 피해를 보는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서 "제가 오늘 이렇게 밝히는 것이 박 검사장 인사에 또 불이익이 있을지 혹시 좋은 일이 있을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박 검사장이 앞으로 검찰에서 더 큰 성공을 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의 기조를 '억강부약(抑强扶弱)'으로 정했다고 한다. "약한 자에겐 힘을 주고 강한 자는 바르게 이끈다"는 뜻이다.

 

박 의원은 보좌진이 준비한 질의사항과 자신이 별도로 수첩에 꼼꼼하게 메모한 질의사항 중에서 피감기관의 현장 분위기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해 대응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보좌진들은 보도자료를 미리 배포하지 못하고 국감이 다 끝난 후에야 작성해서 언론사로 보내고 있다. 의원과 보좌진이 국정감사 현장에서 선의의 질의경쟁을 벌이는 모습이다. 

 

'호통 국감' '버럭 국감' 같은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번 국감 역시 여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진이지만 초선처럼 국감에 임하는 박 의원의 사례를 다른 중진의원들에게 권유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태그:#국정감사, #박지원,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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