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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반가운 가을비도 내렸는데 어디 바닷가에 가서 꽃게요리나 먹고 올까요?”

“그거 반가운 말씀이네요, 날씨도 자꾸 썰렁해지는데 추워지기 전에 서해바닷가 어때요?”

 

이틀 동안 내린 가을비로 하늘이 맑고 고왔던 지난 금요일(24일) 동생 부부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동생 내외는 늦은 아침을 먹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온 모양이었습니다.

 

동생이 어디 바닷가에라도 나가자고 하는 제안에 반색을 하고 나선 것은 아내였습니다. 꽃게요리라는 말이 구미를 당겼을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꽃게요리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아내인데 올가을엔 꽃게요리 한 번 푸짐하게 먹어보지 못하고 지나갈 뻔 했던 것이 섭섭하던 참이었으니까요.

 

무작정 떠난 서해안 나들이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그냥 집을 나섰습니다. 큰길에 나서서야 어디로 갈 것인지 다시 말이 나왔습니다. 제수씨는 소래포구로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전에 소래포구에 갔다가 몰려든 차량들 때문에 길이 막혀 답답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동생이 싫다고 합니다.

 

 

승용차는 어느새 내부순환도로에 올라서 있었습니다. 내가 충남 태안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어느새 오전 11시가 지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너무 늦게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시간도 늦었는데 김포 대명포구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대명포구? 그곳이 좋겠네요. 거리도 가까워서 기름 값 절약도 되고.”

 

모처럼 동생과 아내의 의견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평소엔 이들 둘 사이에 의견이 맞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거든요. 매사에 꼼꼼하고 소극적인 동생하고는 달리 아내는 매우 적극적이고 기분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삼촌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근사하게 한 턱 쏘는 거지요?“

“아뇨? 난 그런 레스토랑 보다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훨씬 맛있고 좋은 걸요. 형수님이 한 턱 쏘신다면 그건 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매사 이런 식이었으니까요. 이들 형수와 시동생은 평소 사이가 아주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막상 뭘 의논하거나 어디를 함께 갈 때면 아내와 동생은 사사건건 충돌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웃기는 말싸움을 벌였거든요. 서로 자기주장을 하며 적당히 분위기를 띄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수씨와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의 편을 듭니다. 나는 동생을 편들어 주고 제수씨는 손위 동서인 아내 편을 들어주는 거지요. 그러나 농담으로 벌어진 논쟁은  대개 여자들의 주장이 통하는 편이었습니다. 남자인 나와 동생이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고 물러서 주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날은 그럴 필요가 없게 된 셈이지요. 곧바로 대명포구로 향했습니다. 내부순환도로를 빠져나온 우리는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가양대교를 건너 김포를 향했습니다. 그런데 김포를 지나 대명포구가 가까워질 무렵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어! 이거, 모처럼의 포구 나들인데 비 때문에 김새는 거 아녜요?”

“정말 그러네요, 그래도 비는 더 내려야 돼요, 어제까지 내린 비는 너무 적어요.”

 

아내와 동생이 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역시 다시 엇갈립니다. 거제도에서 매실과수원과 고구마 농사를 짓는 동생이 아내와 같은 생각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 앞 창문에 부딪히는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지요, 바람까지 거세게 불고 있었습니다.

 

가을비가 지나간 썰렁한 대명포구 풍경

 

도로가 조금 막히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차가 ‘대명항’ 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난 거리에 접어들자 잠깐 동안 쏟아지던 비가 그치고 있었습니다. 앞쪽 저 멀리 푸른 하늘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지요.

 

 

왼쪽 앞으로 초지대교가 바라보이는 갈림길에서 잠깐 들어가자 대명포구입니다. 포구 경내로 들어서 오른편의 유료주차장을 지나자 선착장 바로 앞 넓은 주차장이 텅 비어 있는 모습입니다. 승용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을 뿐 근처엔 차량도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지요.

 

차를 세우고 우선 선착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정박해 있는 어선들 위에선 어부들의 손길이 한창 바빴습니다. 경운기로 실어온 그물을 갑판위로 올려 수북하게 쌓아 놓은 모습도 보입니다. 선착장에 아직 그대로 쌓여 있는 그물들도 곧 어선 위에 실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리 넓지 않은 선착장이나 주차장 근처에도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선착장 한쪽 귀퉁이에서 낚시하는 몇 사람이 썰렁한 포구를 가려주고 있었지요. 낚시꾼들에게 다가가 고기가 낚이느냐고 물으니 고개만 설레설레 흔듭니다.

 

빈 낚싯줄만 던져 놓고 하릴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등 너머로 갯벌에 앉아 있는 물새들의 모습도 쓸쓸한 풍경이기는 마찬가집니다. 어선 가까이 다가가 그물을 싣고 있는 어부들에게 곧 출항할 거냐고 물으니 바람이 거세어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어선에 그물을 쌓아 놓은 어부들은 바람이 심한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뭍으로 내려옵니다. 김포와 강화 사이 해협에 놓인 초지대교가 무지개처럼 바라보입니다. 그 초지대교 위로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 몇 덩어리를 배경으로 날아오른 갈매기 한 마리가 거센 바람을 맞받으며 힘겨운 날갯짓을 합니다.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는 파란 하늘이 참 맑고 곱습니다. 조금 전까지 내렸던 비는 어쩌면 환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강 하구 쪽인 북동쪽의 하늘도 역시 맑고 고운 모습이기는 마찬가집니다.

 

 

“강처럼 좁아 보이는 바다가 파도는 대단하네.”

 

정말 그랬습니다. 강화해협은 폭이 좁아 바다가 아니라 넓은 강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몰아치는 거센 바람에 풍랑이 일어 바닷물을 뒤집어 놓았는지 물색이 매우 혼탁해보입니다.

 

선착장에서 철조망으로 가려진 왼편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쪽 갯벌엔 몇 척의 폐선들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갯벌에 깊이 빠진 채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척의 폐선이 요즘의 경제처럼 썰렁한 포구를 더욱 쓸쓸하게 합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또 한척의 폐선 위에는 낚시꾼 한 사람이 올라 흙탕물 수로에 낚싯줄을 던져놓고 있었습니다.

 

폐선들 앞에는 작은 흙탕물이 흐르는 수로가 있고 그 수로 너머는 널따란 갯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갯벌 위에 하얀 점들이 총총히 바라보여 자세히 살펴보니 물새들입니다. 물새들은 목을 잔뜩 웅크린 채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습니다.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에 바람까지 거세어 물새들도 고기잡이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 썰렁한 선착장, 거센 바람 때문에 출어하지 못하고 묶여있는 어선들, 빈 낚싯줄만 던져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낚시꾼들, 갯벌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 물새들. 모두가 가을비 내린 후의 맑고 고운 하늘과 어울리는 쓸쓸하고 한적한 포구의 가을 풍경입니다.

 

“아이 추워! 이제 그만 따뜻한 곳으로 들어갑시다.”

아내의 얼굴빛이 창백해 보입니다. 몸이 허약하여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이고 보면 썰렁한 선착장과 갯벌 풍경이 더욱 추웠을 것입니다. 서둘러 주차장 안쪽의 어물 판매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얼큰하고 맛있는 꽃게탕으로 추운 몸을 녹이다

 

어물 판매장 안엔 사람들이 제법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선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지난 이틀간의 비바람 때문에 어선들이 출어를 못한 때문이겠지요. 아내는 우선 꽃게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꽃게는 값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들어온 살아있는 꽃게는 몽땅 20kg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값을 물으니 1kg에 45000원이랍니다. 아내와 제수씨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러섭니다. 값이 적당하면 한 상자 사들고 오려고 했었는데 틀렸다며 식당으로 가자고 합니다.

 

꽃게탕이라도 먹고 가자고 합니다. 아무리 꽃게 값이 비싸더라도 그냥 갈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지요. 가까운 곳에 꽃게요리를 하는 식당이 있었습니다.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꽃게찜은 포기하고 대신 국물이 시원한 꽃게탕을 먹기로 했습니다.

 

45000원 짜리 꽃게탕을 주문하자 맛보기 음식들이 푸짐하게 나옵니다. 꽃게요리 뿐만 아니라 생선회를 파는 식당이어서 맛보기 음식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곧 꽃게탕이 나왔습니다. 우선 국물을 한 숟갈 떠서 맛을 보니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그만입니다.

 

“어! 이 꽃게탕, 예상했던 것보다 국물 맛이 매우 좋은데요.”

 

아내와 제수씨가 동시에 감탄사를 올립니다. 값이 부담스러워 꽃게찜을 먹지 못하고 꽃게탕을 시켰는데 맛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기분이 좋아진 모양입니다.

 

소주 한 병을 곁들여 먹은 꽃게탕은 맛이 매우 좋았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차고 알이 꽉 찬 꽃게탕은 질과 양 모두 만족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모두 밥 한 그릇씩을 뚝딱 해치웠지요.

 

“꽃게가 비싸다고 그냥 돌아서다니, 다시 가서 2kg 씩만 삽시다.”

 

앞장을 서는 쪽은 항상 아내입니다. 제수씨가 따라 나섭니다. 얼큰하고 뜨거운 꽃게탕을 먹고 힘이 솟은 듯 두 사람이 어물매장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동생과 내가 어슬렁어슬렁 뒤따랐지요. 그러나 매장에 들어서니 조금 전에 어선에서 내린 살아있는 꽃게는 그 사이 모두 팔리고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제수씨의 얼굴에 실망의 표정이 역력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꿩 대신 닭이라고 했지? 얼음에 채운 꽃게라도 사야겠어. 그냥 갈 수는 없지.”

 

이날 아내와 제수씨는 살아있는 꽃게 대신 얼음에 채운 꽃게와 김장용 새우젓, 그리고 다른 생선과 건어물까지 사들고 나왔습니다. 빈손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대명포구 나들이는 이렇게 푸짐한 나들이가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꽃게, #대명포구, #썰렁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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