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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보는 비둘기이지만 작은 공간에서 단 둘이 조우하면 상황은 굉장히 공포스러워진다.
 늘상 보는 비둘기이지만 작은 공간에서 단 둘이 조우하면 상황은 굉장히 공포스러워진다.
ⓒ 오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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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에서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밥을 먹겠다고 혼자 요리를 하고 있었다. 부엌 앞에는 '보일러실+다용도창고+베란다' 기능을 하는 작은 공간이 있다. 다양한 기능이 있는 만큼 역시나 어설픈 공간이다. 보일러 배관은 약간 어색하게끔 벽을 가로지른다. 정확히 배관크기만큼 구멍이 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충 사각형 모양으로 구멍을 내고 그쪽으로 배관을 걸쳐 놓았다는 표현이 맞다.

뭔가가 '퍼드득~' 거렸다. 난 순간적으로 도둑이 들어온 줄 알았다. 하지만 도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요란했다. 저렇게 어설프면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 할 정도의 요란한 소리였다.

난 그저 강풍에 보일러 배관통이 심하게 흔들린 정도로 알았다. 아내는 "무슨 소리지?"라면서 그 어설픈 공간을 향해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들고있는 접시를 깨트렸다.

"꺅~ 비둘기다!"

정말이다. 비둘기가 그곳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 배기통을 위해 뚫어놓은 작은 창문의 틈새로 육중한 비둘기가 들어왔다. 그리고 뭔가 자유롭지 못한 곳임을 직감했는지 몇 번의 난리를 쳤다. 보일러 배기통을 건드리며 필사의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자신이 들어온 공간으로 다시 나간다면 그게 어디 비둘기이겠는가. 멍청한 도시 비둘기답게 그 녀석은 아무 소득없는 탈출시도만 했다.

아내는 무조건 "비둘기를 내 보내라!"고만 외친다. 아 정말 미치겠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혼자 살면 에프킬라 대량살포 혹은 쥐약을 미끼삼아 여기가 비둘기가 살아갈 곳이 못된다는 바로 '지옥같은 도시 중에서도 최고인 서울'을 증명해 주고 싶었지만 아내의 요구는 '지금 당장!', 그리고 '죽여서는 안된다!'는 것. 처자식을 지켜야 하는 순간이 드디어 도래했는가? 가장의 어깨가 이래서 무겁단 말인가?

하지만 아내의 요구조건은 극히 까다로웠다. 특히나 우리집 창문 모기장은 계폐식이 아닌 부착형이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그래서 창문으로 비둘기를 내보내려면 그 모기장을 찢어야 한다. 내가 그 좁은 배기통 구멍으로 비둘기를 다시 안내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비둘기 보내기 작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일단 내가 그 공간에 들어가서 그 비둘기랑 단 둘이 조우를 해야 하고 그 상황에서 창문을 열어야 하고 그 와중에 모기장을 찢어야 했다. 물론 그동안 그 미친 비둘기가 얌전히 있을 리 만무하다.

결혼 후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위기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작은 박스를 하나 찾았다. 그 옆에 구멍을 냈다. 즉 안전모를 만들었다. 아내는 그 박스를 방패삼아 진입하라고 했지만 난 명령을 불복종했다. 원래 자기가 직접하지 않는 사람이 이론은 빠삭하다.

그리고 과도 하나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살짝 열었다. 다행히 비둘기가 일단 지친 상태다. 구석에서 무엇인가 경계의 눈초리를 보이곤 있었지만 방금 전의 발광에 비교하면 아주 얌전한 상태다. 살며시 그 공간에 진입했다. 비둘기조차 눈치 못차릴 정도로 살며시 들어가는데 아내는 매몰차게 문을 안쪽에서 닫아 버렸다.

그 소리에 비둘기가 놀랐다. 또 난리다. 퍼득퍼득. 정말 그 공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난 벽쪽으로 숨어서 "이 놈아~ 널 구하라 왔다니까!"를 외쳤다. 정말 처량하게.

비둘기는 다시 안정을 취했다. 살며시 창문 하나를 열었다. 모기장을 찢어야 했다. 그런데 창문이 열리는 순간 외부와의 연결이 완성된줄 안 그 무식한 비둘기가 갑자기 날라와서 지 몸뚱아리를 모기장에 부닥친다. 그런데 그 순간 동료의 위기를 직감한 다른 비둘기 한마리가 날아왔다. 그래서 모기장을 사이에 두고 쌍박자 발광을 시작했다.

몇 분 후 비둘기는 다시 진정했다. 모기장을 찢었다. 웬만큼 찢었지만 비둘기는 나가지 않는다. 바로바로 나가면 그게 또 비둘기이겠는가. 그래서 반대쪽 창문쪽의 모기장까지도 찢어야되겠다고 생각하고 창문을 열었다. 그러니 또 아까 했던 발광을 다시 시작. 바로 옆이 찢어진 모기장인데도 그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 무식함 보여주는 도시 비둘기. 실망 작살.

비둘기가 지쳤다. 그 틈에 결국 모기장 전체를 다 찢었다. 그런데 휑하니 다 찢어놓았는데 가지를 않는다. 아 내가 미쳐. 내가 이 녀석을 이쪽으로 몰아야 하는데 그 녀석이 너무 구석에 배수진을 쳤다. 즉 내가 다가갈수록 계속 나갈 쪽과 멀어진다는 거다.

그래도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녀석의 몸뚱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깃털은 더럽다. 누가 이 녀석을 평화의 상징이라 했던가? 잡종중에서도 잡종의 족보를 가진 놈이 분명했다. 발은 완전 닭발 수준. 게다가 그 사이에 똥은 얼마나 지렸는지 냄새까지 지독했다.

엉성한 안전모 때문에 행동반경이 불편했던 나는 일단 박스를 치웠다. 그런데 그 순간 비둘기가 놀랐다. 나는 더 놀랐다. 난 그냥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구석에 몸을 숙였다. 그리고 비둘기는 혼자 퍼득 거렸다.

그리고 3~4초후 조용해졌다. 드디어 그 공간으로 탈출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녀석이 어디 구석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창문을 닫을 생각을 못했다. 겨우겨우 상황을 파악했다.  

부엌으로 다시 가고자 하니 문이 안 열린다. 아내가 안쪽에서 문을 잠갔다. 비둘기랑 같이 죽든지, 아니면 임무를 완수하라는 뜻이었던가?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지르고 너무나 당당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들때문에 이러는거야~ 아~ 가장으로 사는게 힘들구나~ 저 비둘기 녀석 당신때문에 살아서 돌아간거야. 나 혼자 있을 때 왔으면 생체실험 각오해야 되는데~."

아내가 대답했다.

"아주 우연히 얼떨결에 비둘기가 날아가는 거 다 봤거든~~"

내가 말했다.

"그게 바로 평화적으로 비둘기를 다시 보금자리로 보내는 방법이지."

어쨌든 사람 안 다치게 하고(?) 잘 도망쳐준 비둘기에게 감사를 표한다. 무서웠다. 지옥굴에 나 스스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정말 결혼하고 나서 가장 변한 나의 모습이다. 이게 고귀한 말로 하면 '희생'인가? 담력부터 키워야겠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daum.net/och7896 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비둘기, #초보아빠, #초보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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