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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분단 50년 만에 어렵사리 이어진 철도가 다시 절단난다고 한다. 민족 화해에 돌파구를 열었던 금강산에 난데없는 총성이 나고 입산금지 팻말이 붙더니, 이제는 민족 공조의 상징이라던 개성공단마저 존폐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어감 좋았던 말들, 햇볕과 포용은 다가오는 겨울과 함께 시나브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남북조 시대의 분단 국민들

북한이 면담을 이유로 남측의 개성공단 관련 기구 대표와 입주기업 대표 전원을 개성공단으로 소집한 가운데 24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수십대의 차량이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있다.
 북한이 면담을 이유로 남측의 개성공단 관련 기구 대표와 입주기업 대표 전원을 개성공단으로 소집한 가운데 24일 오전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수십대의 차량이 개성공단으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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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상에 하나 밖에 없는 분단국가의 국민들이다. 우리는 제국주의 식민지와 이데올로기 냉전의 제물이 되어 타의로 갈라졌다. 이 땅에 분단 시대가 도래한 것은 신라와 발해 이래 천 년 만의 일이다. 우리는 지금 남북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어언 60여 년, 이제 민족 분단의 나이는 환갑을 훌쩍 넘겨 버렸다.

우리는 무모하게도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 400만 명이 넘는 동족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든 전쟁도 치렀다. 그래서 휴전선 155마일을 '피어린 육백리'라고도 불렀었다. 전쟁 후 남과 북은 철천지원수가 되어 피차를 적대시했다. 한쪽에서는 '미제의 괴뢰'라고 손가락질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 사이 까만 가슴 타들어가던 이산가족들은 혈육의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하나둘씩 이승을 떠야 했다.

글로벌 시대에 '민족'이라고 하면 촌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민족주의라고 하면 괴팍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민족인 것을 어찌하나. 그러므로 분단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는 다른 것에 앞서 민족주의적인 개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는 지난 2000년 6월 15일의 감동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것은 분단 민족으로서 마음에 뿌옇게 서려 있던 수치감을 걷어낼 수 있게 해 준 쾌거였다. 우선 동족끼리 더 이상 괴뢰니 도당이니 미제니 적화니 하는 말들을 쓰지 않게 된 점만으로도 흡족했다. 사람들은 노래로만 부르던 통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평소 '북한문화유산답사기'를 쓰고 싶다고 했던 내 친구는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남과 북의 근접은 미국의 부시 때문에 다소 늦춰지기는 했지만 교류와 경협은 한층 확대되었다. 그 결과 다시 남과 북 정상이 만나 10·4선언을 도출했고 개성 공단에 이어 개성 관광길까지 열리기도 했다. 개성 공단의 생산량은 날로 늘어갔다. 사실 이런 것들은 불과 10년 전 시점으로는 꿈과 같은 일이었다.

이 모든 것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 삽시에 와해됐다. 속담 그대로 공든 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명박 정부는 대북관계에서 실패만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김대중 정부의 대북관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이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관에도 나름대로 민족의식이 작용했다. 반면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에는 민족적 개념이란 게 없다. 있다면 오로지 돈, 즉 그 중요하고도 천박한 경제뿐이다. 이 대통령이 보기에 남한은 부자이고 북한은 동족이라기보다는 가난한 타인일 뿐이다.

비핵 개방 3000의 허구성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는 '비핵·개방 3000'으로 압축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책이라기보다는 가난한 북한을 야유하는 일종의 '프로파간다' 같은 성격의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국민소득을 이런 식으로 운운하는 것은 명백히 내정간섭의 성격을 띤다.

이것은 747만큼 공허한 숫자의 수사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은 남한의 국민소득도 올릴 능력이 없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 대통령 취임 후 남한의 국민소득은 환율과 반비례해서 줄어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자기 나라 국민소득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의 나라 국민소득을 올려줄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가난한 북한에 대한 부자로서의 교만감이 배어 있다. 쉽게 말해 이것은 '시키는 대로 하면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독선적인 논리이다. 보통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때에는, '내가 무엇을 해 줄테니 너도 무엇을 해 달라'는 식으로 하는 법이다. 따라서 이것은 순서를 바꿔 '3000 비핵·개방' 먼저 3000달러로 만들어 줄 테니 나중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라는 요구보다도 더 교만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6자회담 합의를 지키라고 하면서 정작 남과 북 국가원수끼리 합의한 6·15와 10·4선언을 백안시해 왔다. 또한 남한에는 인권 악법인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키면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간섭하는 유엔 결의안 채택에 앞장섰다. 촛불은 신속하고 과감히 단속하면서도 삐라 살포는 방기해 왔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강경한 조처를 내리도록 만드는 데 작용한 것 아닐까.

그래도 이 대통령은 남한 보수 세력치고는 북한을 동반자 또는 상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발언을 많이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한때는 극우세력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외신과의 회견에서는 더욱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23일 기내회견에서도, "북한과의 화해, 공동 번영, 상생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발언과는 모순되는 대북강경발언을 하기도 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북한이 내 욕하는데 왜 가만히들 있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한겨레> 보도). 이런 모순된 발언들은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일관성이나 철학 같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무개념'처럼 비친다는 것이다.

또한 이 대통령은 툭 하면 자기가 북한 동포를 사랑한다고 말한다(사실 이런 말은 교회 장로가 할 말이지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는다. 여당 내에서도 대북 특사의 필요성을 제기하지만 그는 검토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면으로 볼 때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무개념이 아니라 표리부동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사게 만든다. 양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았다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의 대북정책이라고나 할까.

정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입'

사태가 이렇게까지 이른 데에는 이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입'이 기폭제가 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통일하는 게 궁극 목표"라고 말했다. 이번 북한의 조처는 바로 이 발언 직후에 나온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흡수통일론으로서 6·15와 10·4 선언은 물론, 상호 체제 존중을 명시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도 배치되는 발언이다. 입장을 바꿔, 만약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사회주의 체제로서의 통일이 궁극적 목표"라고 말했을 경우 남한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겠는지 상상해 보자. 대뜸 "북한은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 아니겠는가. 아마 뉴라이트 같은 단체들은 곧장 규탄대회라도 열었을 것이다.

또한 이 대통령은 북한이 이미 10월 중순께 남북관계 전면 차단을 포함한 중대 결단 가능성을 예고해 놓고 있는 상태에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말은 북한에는 속된 말로 "배 째라"는 식의 의도로 비칠 수가 있다. 결국 북한은 기다리겠다는 이 대통령에게 이번 강경조처로 응답한 셈이다. 따라서 "이번 북한의 조처는 이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공자는 부자로서 교만하지 말고 빈궁하면서 아첨하지 않기를 가르쳤다. 부자는 교만해지기 쉽고 가난한 사람은 비굴해지기 쉽기 때문에 공자는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조금 잘 산다는 남한이 교만해져서는 안 된다. 아울러 북한은 가난하기 때문에 비굴할 것이라는 선입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이것은 대북관계에서 실패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다.

우리는 대북관계가 파탄 났을 때 으레 국난이 발생했음을 현대사를 통해 확인한다. 이승만 시절에는 전란, 김영삼 시절에는 환란이 일어났다. 대북문제를 원만히 풀지 않고는 평화와 풍요를 기대할 수가 없다. 대북 문제를 그르치는 것은 민족사에 죄악의 기록을 남기는 짓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 김갑수는 소설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역사팩션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



태그:#대북정책,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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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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