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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제대로 썼는지, 나라 살림을 맡은 공무원이 어떤 부정부패를 저지르는지 철저히 살피고 바로잡는 기관이 감사원이죠. 나랏일을 하면서 뇌물에 흔들릴 수 있고 이권에 끼어들 수 있는 공무원들을 걸러내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들추는 게 감사원이죠. 그런 감사원이 도리어 비리를 감추고 정권에 눈치를 본다면 누가 감사를 받으려 할까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코드맞추기 감사'를 통해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공기관장들을 몰아내는데 감사원은 발 벗고 앞장을 섰습니다. 거기다 쌀 직불금 명단 폐기를 두고 논란을 일으켰지요. 끝내, 10월 6일 국감장에서 김황식 감사원장은 "(KBS 감사 과정에서) 국민에게 오해의 소지를 제공했고, 절차상 불미하고 미흡한 점이 있었다"라고 사과하기에 이르네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10월 20일 6급 이하 공무원들로 구성된 '감사원 실무자협의회'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탄식하며 감사원 내부 통신망에 다음과 같은 요지로 글을 올렸습니다.

 

"감사원이 권력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은 부인할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과거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조선시대 삼사의 선비들은 목숨을 걸고 왕에게 직언했으니 우리도 대통령과 권력에 맞서는 한이 있더라도 소신껏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감사원의 미래도 없을 것이다. 입신양명을 위해 권력에 줄을 대거나 조직 발전을 저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과감한 인적 쇄신이 있어야 한다."

 

비리를 폭로한 대가로 12년 동안 법정에 선 남자

 

여기, 비리를 은폐하려는 상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공익제보를 한 사람이 있지요. 바로 현준희씨에요. 1996년 감사원 주사였던 현씨는 "효산그룹 콘도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감사 과정에서 감사원 국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감사를 중단시켰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폭로하지요. 

 

당시 '소통령'이라고 불렸던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 등 김영삼 정권 사람들이 관련된 비리 의혹은 총선을 앞둔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려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요. 그 뒤 국회 국정감사와 검찰 수사 과정을 통해 많은 부분이 드러나게 되지요. 불의에 저항하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그에게 정부는 고마움으로 보상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파면당하고 명예훼손으로 두 달 동안 옥고를 치릅니다. 그리고 12년 동안 진저리나는 법정공방을 치르게 됩니다. 

 
지난 13일, 대법원(재판장 전수안 대법관)은 무죄 판결을 확정짓지요. 최종 승소를 한 그를 만나러 25일 서울 종로구 계동으로 갔습니다. 그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삽살개 순둥이와 현준희씨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상징이자 외국 손님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순둥이를 쓰다듬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감나무에 감이 걸려 있습니다. 
 

 

- 감사원(서울시 종로구 가회동)과 가까운 곳에서 계시네요.

"그렇지요. 감사원 직원들이 안국역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오면 마주칠 수 있지요. 제가 감사원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은 결백의 상징이에요. 내부비리 고발한 것에 대해 거리낌 없고 부끄럽지 않으니까요." 

 

- 12년 만에 승소를 하셨습니다.

"국가는 내부고발자를 보상하지는 못할망정 저를 잘라버렸지요. 그리고 재판을 12년 동안이나 끌었어요. 감사원이 부패를 저지르면 감사를 못해요. 감사원은 성지이고 절대적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니까요. 저는 이번 사건을 두 가지로 봐요. 먼저 권력이 입김을 행사하여 정당한 감사를 막고 보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김영삼 정권 비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김영삼 정권 비리에 대해서 파편화되어서 기사가 났었는데, 이제 대법원 판결도 난 만큼 그 내용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네티즌들이 놀랄 거예요."

 

국회제출 할 때 감사원이 자료 변조, 사건 은폐

 

 

- 효산콘도사건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요. 

"제가 감사할 때 효산 잔고에 100만원 밖에 없었어요. 그런 엉터리 회사였어요. 아주 싸게 땅을 사고 로비를 해서 콘도를 지을 수 없는 땅에 콘도 허가를 받지요. 엄청나게 땅값이 올랐겠죠. 불법으로 콘도 허가를 받은 데다 금융에서도 불법 대출을 했더라고요. 그렇게 부당이득이 생겼는데 제가 감사해서 문제가 되면 돈이 날아가잖아요. 그래서 상부에서 손 떼라고 압박이 내려온 것이죠. 

 

당시 YS 오른팔 김우석씨라고 있는데 94년 12월 말까지 건설부 장관이었어요. 95년 1월에 오명씨가 임명되는데요. 오명씨가 장관이 되자마자 바로 효산건이 처리되더라고요. 이미 94년에 효산과 건설부 사이에서 로비가 다 이루어졌지요. 김우식씨가 자기 발뺌 하려고 95년 되자마자 일을 처리하려고 준비한 것 같아요. 김우식씨는 나중에 내무부장관도 하는데 결국, 뇌물 받아 잡혀 들어가지요. 이 사람이 이철수 제일은행장하고 고등학교 동창이에요. 

 

이렇게 문제가 있는데도 감사원은 덮어만 두려고 했지요. 당시 국장은 바로 국장에서 사무총장으로 2단계 진급하더라고요. 이례적 특진 인사가 이루어지는 것 보고 사건 은폐하여 정권 보호해준 기여 때문이 아닌지 의심스러워요." 

 

사실 조작해 감사원에서 쫓아내

 

- 감사원에서 현준희씨를 문제 삼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농협과 유공(현 SK)에 제휴 아이디어를 내서 양쪽으로 상을 받았어요. 여기 보세요. 상장과 당시 상 받을 때 사진이에요. 그런데 감사원은 제 뒷조사를 하더니 공갈협박해서 농협과 유공에서 돈을 뜯었다고 하는 거예요. 

 

국회 국정감사 속기록을 살펴보면 정형근 당시 국회의원이 물어요. 현준희씨가 농협과 유공에서 돈을 뜯었다면서요? 그러면 바로 감사원장이 '네, 이렇습니다~' 하면서 대답을 하는 거예요. 어처구니가 없지요. 조순형 의원이 그걸 어떻게 정형근 의원이 알고 있는지 물었지요. 그러자 감사원장이 현준희씨가 내부고발자라고 TV에 나오니까 유공 직원이 분개해서 감사원에 신고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알아보니 양심선언한 지 사흘 뒤 감사원이 유공 직원을 찾아갔더라고요. 그리고 석 달 동안 그 사람을 괴롭히는 거예요. 감사원 기록에도 남아있어요. 어떻게 감사원이 민간회사원에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도 미안하지요. 

 

96년 직위해제를 당한 이유가 경고 3회와 무능이었어요. 무능은 인정하겠어요. 쫒아낼 때 무슨 이유를 못 대겠습니까. 그런데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경고를 3번이나 받았다고 버젓이 사실을 조작해서 내놓은 것은 말도 안 됩니다." 

 

- 충분히 일찍 끝날 수도 있는 일인데 12년이나 걸렸습니다. 

"1, 2 심 이겼는데 대심(주심 이규홍 대법관)에서 파기 환송되었어요. 대심에서 파기 환송된 게 살아난 게 거의 없지요. 그런데 서울지법 항소합의부 판사님(당시 판사 김선혜)이 직접 나서서 자료들을 찾아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준 결과 무죄판결을 내렸지요. 정말 은인이지요. 그렇게 다시 대법에 올라갔어요. 그러나 검찰이 또 재상고해서 2년이 또 가버렸어요. 조목조목 따지며 왜 재상고를 하는지 밝혀야 하는데 그것도 없더라고요. 검찰은 그냥 불만인 거죠. 그렇게 끌다가 이제야 승소한 거예요. 12년이 걸렸다우. 민변에서 무료 변호를 12년동안 해줬어요. 김창준 변호사가 아주 바쁜 사람인데도 12년 동안 도와줬어요. 정말 고마운 분이지요."

 

책임지는 사람도, 사과하는 사람도 없는 현실

 

- 승소 후 사과하는 사람이 있었는지요.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사과하는 사람도 없어요. 원통하지요. 못된 상놈은 항렬만 높다는 우리 속담이 있잖아요. 감사원, 대법원, 법원 한국 최고기관들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은폐하려고 서로 입 맞추고 이럴 수 있나요. 감사원의 파면 결정을 인정한 법원 판결에 대해 재심을 신청할 거예요. 징계취소를 받아내고 복직할 거예요. 또 몇 년이 걸리겠지요. 

 

제가 20년 가까이 감사원에서 일했기에 애정이 남다릅니다. 감사원이 완전히 무너지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믿어요. 경찰, 검찰, 국정원 등 공안기관들은 그동안 민주화조직으로 거듭나려 애썼는데 감사원만 무풍지대였지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저한테는 세상에 알리면 놀랄 만한 일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 옳은 길을 가셨지만 가족들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요.

"방송 3사, KBS, MBC, SBS에서 제가 힘들게 사는 장면을 다 찍어갔어요. 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지만 방송 쪽에서는 찡하고 감동적인 것을 보여주고 싶었겠지요. 힘들었지요. 내부고발 할 때는 집사람과 상의했었어요. 집사람이 믿어줬고. 그런데 아이들에게 말을 못했는데 눈치를 다 채더라고요. 한 달 뒤, 집 정리를 하는데 딸이 작성한 웅변대회 초고를 보았어요. 고1 딸아이가 발표할 내용의 제목이 '고발이 미덕인 사회'였어요.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양심 갖고 진실을 알리고 부당한 것에 저항하는 것이 미덕인데 현실은 아니잖아요. 애들보다 못한 사회지요. 김성태 이별의 노래라고 아나요? 이게 제 심정과 같아요.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다 싫어, 그런 심정이에요. 뺑소니 사고가 일어났을 때 누가 신고하면 좋잖아요. 신고가 없으면 탐문조사하고 많은 사람을 뒤져야 하니까요. 거기 들어가는 돈이 다 세금이에요. 그런데 내부비리고발은 세금이 안 들지요. 그 혜택은 국민 전체가 누릴 수 있지요. 그런데 보복이 두려워서 신고를 못하게 하는 현실입니다." 

 

 

현준희씨에게 사과하고 감사원은 독립기구가 되어야

 

감사원 홈페이지에는 '바른 나라, 깨끗한 정부 국민과 함께 감사원이 만듭니다'는 문구가 있지요. 바른 나라, 깨끗한 정부를 위해 힘쓰는 감사원이 비리를 감추고 옹호한다면 그것은 현준희씨 말대로 '범죄'지요. 자신의 할 일을 잊은 채 정권 눈치를 보며 이해관계를 따지는 감사원의 지도와 조사를 누가 받으려 할까요. 친절한 금자씨가 한 말이 생각나네요.

'너나 잘하세요'. 

 

감사원은 새롭게 출발해야 합니다. 정권을 '감싸'는 감사원이 아니라 공정하고 독립된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정권에서 분리되어 소신껏 지도감사를 하여 바른 나라, 깨끗한 정부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현준희씨에게 사과하고 그를 복직시켜야 합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은 반성하고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모르쇠하는 현실에서 앞으로 그 누가 비리고발을 하겠습니까. 그의 양심고백이 정권형 비리를 밝혔지만 정작 그는 해고되고 재판에도 서게 되지요. 그렇게 12 년 동안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했지요. 현준희씨의 억울함만큼 방 안에는 산더미 같은 자료들이 쌓여있더군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오마이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준희, #감사원, #내부고발자, #효산콘도, #권력형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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