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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할아버지 집(지금 살고 있는 터에 옛집)에는 군불을 지필 수 있는 두 개의 아궁이 위에 큰 가마솥 두 개가 각각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매일같이 할아버지가 누렁이 쇠죽을 끓이거나 물을 끓이는데 사용했고, 나머지 하나는 콩을 쑤거나 두부를 만들 때 간혹 할머니가 이용했습니다.

 

벼뿐만 아니라 고구마, 깨, 콩 등 밭에 심어둔 농작물들의 가을걷이도 모두 끝내고 겨울철 땔감도 마련해 놓은 뒤에는 할머니와 어머니는 메주콩을 쑤어 돌절구(이 절구를 누가 훔쳐갔습니다)에 넣고 빻아서는 네모난 메주를 만들어 짚으로 엮어 할아버지 방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래서 메주로 장을 담구기까지 할아버지 방은 언제나 구수한 메주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은 된장과 간장, 고추장은 손수 해먹었지만, 청국장은 해먹지 않았습니다. 냄새 때문인지 집안 사람들은 청국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데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가을이면 콩을 한가득 사와 죄다 청국장을 만들어서는 추운 겨울동안 청국장 찌개를 즐겨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시집 와 청국장이 그렇게 먹고 싶어 시장에서 조금 사와 뒤뜰에서 몰래 끓여 드셨는데 집안 사람들이 '이게 무슨 냄새냐'며 소란을 떨었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밭에서 나는 고기'라는 콩을 가지고 만든 청국장은 다들 아시다시피, 영양분도 많고 소화가 잘 되는 식품으로 발암물질도 감소시키고 유해물질을 흡착해서 몸 밖으로 배설시키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런 청국장을 요즘 어머니는 신나게 만들어 내시고 있습니다. 작년에 수확한 묵은 콩이 아직 남아 있어 그것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내시는데, 그 과정을 3일에 걸쳐 이것저것 여쭤보며 지켜봤습니다.

 

우선 어머니는 아침밥을 지어놓고 묵은 콩을 물에 깨끗이 씻어서는 콩을 불렸습니다. 햇콩은 4~5시간 정도면 충분한데 묵은 콩이라서 7~8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저녁을 먹고 난 뒤 불린 콩을 삶아 아니 쪄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물속에서 7~8시간 정도 퉁퉁 불은 콩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둥그런 소쿠리에 담아서는 밥솥에 얹혀둡니다. 이 둥그런 소쿠리는 구멍이 "숭숭" 나 있어 찜기 역할을 톡톡히 해줍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원래 콩을 삶아야 하지만 옛날처럼 큰 가마솥을 이용할 수 있는게 아니라서, 콩물이 가스레인지로 넘칠 수 있어 불린 콩을 쪄내신다고 합니다. 콩을 찌면 삶는 것보다 영양소 파괴도 적을 거라 하시네요. 삶게 되면 물에 콩의 영양소가 씻겨나간다고 말입니다.

 

불린 콩을 얹은 솥단지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처음에는 강한 불로 열을 가하다 20~30분 뒤에는 약한 불로 한 3~4시간 정도 쪄내게 됩니다. 어머니는 매일 저녁에 하는 일일 드라마를 한편 보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콩이 돼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쪄낸 콩은 이제 밥솥(청국장 발효기)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 밥솥은 'OO하세요'하는 회사의 제품인데, 어머니가 냉장고를 새로 들이실 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밥솥에 청국장과 식혜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어머니는 '따로 청국장 뜰 밥솥을 살 생각이었는데 참 잘되었지 뭐냐' 하십니다.

 

쪄낸 콩은 밥솥 안에 거름망을 얹어 부린 뒤 '청국장' 버튼을 누르면 됩니다. 옛날 방식대로 지푸라기를 넣지 않아도 공기중에 떠도는 균과 만난 콩이 잘 발효되어 청국장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밥솥에서 콩이 청국장으로 변하는 시간은 총 48시간 그러니까 이틀 정도이고, 밥솥은 청국장이 다되면 "삐삐삑" 거립니다.

 

 

 

이렇게 탄생한 청국장은 그 특유의 냄새를 물씬 풍기지도 않고 참 얌전합니다. 청국장을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 냄새를 쫓기도 하지만, 저희집은 아버지를 비롯해서 어른들께서 청국장을 즐겨먹지 않아서 냄새는 피해야 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청국장 콩은 바람이 잘 통하고 볕이 잘드는 옥상에 널어 바짝 말립니다. 말린 청국장은 절구로 빻거나 믹서기로 갈아서 양념통에 넣어두거나, 그대로 냉장보관을 해서는 필요할 때마다 꺼내 청국장 가루로 만들어 먹습니다.

 

 

 

 

청국장 가루가 들어가는 요리는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밥상에 매일 오르는 칼칼한 김치찌개가 대표적이고 그 외 고추장을 푼 무, 감자, 호박국을 끓일 때는 어김없이 이 청국장 가루가 양념으로 들어갑니다.

 

어쨌든 3일동안 60시간의 기다림 끝에 어머니가 손수 만든 우리집 청국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청국장 때문에 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구수하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도 집에서 국산 메주콩으로 '보약'이라는 청국장을 만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시중의 조미료보다 몸에도 월등히 좋고 맛난 우리의 청국장을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청국장, #어머니, #콩, #발효,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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