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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직장맘들이 전업주부를 깎아내리는 경우는 내 주위에선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를 보는 게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아이를 낳은 직장맘들이 전업주부를 깎아내리는 경우는 내 주위에선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를 보는 게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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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장은 매일 꼭 체크해 주시고요. 학교, 학원 숙제 꼭 챙겨주세요."

대학원 시절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던 내가 학부모들에게서 흔히 듣던 말이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한 엄마들이지만,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직장맘들. 어쩌면 그때 겪은 간접경험 때문에 결혼 후 임신을 하면서 스스럼없이 전업주부를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많은 직장맘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은 자신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절대 엄마를 원망하지 않는다. 엄마의 사랑은 시간에 관계 없이 무한하며, 아이들이 느끼기에도 그러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당시 내가 과외로 만났던 아이들은 엄마와 관계가 아주 훌륭했다.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과외하면서 본 직장맘들 "취학하면 더 힘들어"

지난달 20일 열린 부곡초등학교 교육활동성과 발표회. 아이들이 취학하면 직장맘은 더 바빠진다. 각종 학교 행사에 대한 부담감 역시 무시 못하는 것 중 하나.
 지난달 20일 열린 부곡초등학교 교육활동성과 발표회. 아이들이 취학하면 직장맘은 더 바빠진다. 각종 학교 행사에 대한 부담감 역시 무시 못하는 것 중 하나.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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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들이 취학을 하면 직장맘의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취학 전까지만 해도 직장과 육아를 의연하게 잘 병행하던 여성들이, 취학과 동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고충이 시작된다. 엄마가 챙겨야 할 자잘한 준비물들, 엄마가(어른이) 도와주지 않으면 해결 못할 수많은 숙제들, 당장 고민하기엔 이를지라도 앞으로 펼쳐지게 될 수많은 시험과 입시에 대한 학업의 부담, 학교 청소, 급식 당번의 어려움 등등…. 직장맘에게로 쏟아지는 그 수많은 압박 때문에, 나 같은 대학원생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켜본 바, 많은 직장맘들이 취학하기 전까진 조부모에게 기본적인 양육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취학과 동시에 곧 학습 부분에 있어 한계를 느끼고, 결국 과외 선생님을 집으로 들이게 되는 수순을 밟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종일 과외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아이는 방과 후 학원 두세 군데를 전전해야 했다. 그리고 저녁식사 이후 과외선생인 나를 만나 두 시간가량 학교 숙제와 기타 등등을 도움 받았다.

그때 내가 겪은 대부분 직장맘들은 자신이 직접 아이들 학습을 챙겨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죄책감과 조바심을 드러냈다. 또 학원에 시달리다 온 아이들 역시 과외를 할 때면 학원 버스 타고 왔다갔다 하는 통에 지쳤다며 피곤함을 호소할 때도 잦았다. 그래도 뾰족한 수가 없으니 아이를 맡기는 것이겠지만, 참…. 직장맘이 의지할 데가 고작 과외 선생인 나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직장맘이 믿을 곳은 학원과 과외 선생뿐?

직장맘이 의지할 데가 고작 과외 선생인 나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직장맘이 의지할 데가 고작 과외 선생인 나뿐이라는 사실이 씁쓸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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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해도 정말 고단해 보이는 게 직장맘의 삶인데, 언론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전업주부 엄마가 맞벌이엄마 왕따시키기(이른바 '엄따')' 소식을 접하면 착잡하다. 전업주부인 내가 이럴진대, 직장맘들은 오죽할까.

그런데 사실 직장맘들이 전업주부들에 대해 '집에서 논다'고 폄하하는 것도 문제다. 본인의 자아실현에 자부심이 큰 사람들은, 전업주부가 된 나에게 '자기 인생을 가져야 한다'고 구하지도 않은 충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맘을 왕따 시키는 전업주부 엄마들이 상당히 못된 게 사실이지만, 사회생활 안 하고 집에서 편하게 지낸다고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직장맘들도 잘한 건 아니지 않은가.

직장맘을 왕따시키는 전업주부들의 가슴 한 켠에는 이런 식으로 직장맘들에게 무시당하면서 맺힌(?) 사연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다 큰 어른들이, 심지어 아이를 둔 엄마들이 설마 유치하게 저럴까?' 싶다가도, 여러 곳에서 사례를 듣다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다 싶은 까닭이다.

그런데 사실 아이를 낳은 직장맘들이 전업주부를 깎아내리는 경우는 내 주위에선 보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를 보는 게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는 일과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전업주부를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워킹맘도 적지 않았다(사실 정말로 자아실현이 최우선 순위라 일에 올인하는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할까?). 그런데 왜 자꾸 이런 오해가 생기고, 직장맘들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일까. 해결책은 정말 없을까.

직장맘의 아이, 내가 거두려는 이유

경기도 안산 모초등학교에서 아이들 하교를 지도하고 있는 어머니들. 내 아이가 취학해서 만난 친한 친구의 엄마가 맞벌이라면,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싶다.
 경기도 안산 모초등학교에서 아이들 하교를 지도하고 있는 어머니들. 내 아이가 취학해서 만난 친한 친구의 엄마가 맞벌이라면,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싶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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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과 동시에 전업주부를 선택한 나도, 상황에 따라 어쩌면 맞벌이를 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하게 될지도 모르는 '잠정적 직장맘'인 여성이다(물론 전업주부로 쭉 갈 수도 있다). 해서 직장맘들을 어떻게 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솔직히 사회에서 도와주는 데는 참 한계가 많고, 우리나라가 그런 시스템이 편하게 돌아갈 환경도 아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이 도와주는 게 가장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여 내가 계속 전업주부로 살 경우, 아이가 취학해서 만난 친한 친구의 엄마가 맞벌이라면, 그 엄마가 아이를 학원 뺑뺑이 돌리는 걸 원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것이 분명하다면, 내 아이와 같이 하교하게 해서 우리 집에서 숙제나 기타 등등을 챙겨주고 싶다.

어차피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챙기게 될 부분인데, 과외를 했던 내 경험상 한 명보다는 두세 명 그룹이 되면 훨씬 능률이 오른다. 전업주부 엄마들이야 어차피 그들 나름대로 각자의 프로그램(?)을 구동하게 될테니 함께 정기적으로 시간을 가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공부에 관련한 일은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반드시 '정기적'인 습관이 들어야 한다. 매일이면 더 좋고).

그렇게 해서 마음에 맞는 맞벌이 엄마를 만난다면, 애들끼리도 코드가 맞아서 친하다면, 서로 진짜 윈-윈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실제로 실현하게 됐을 때,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라는 것 역시 분명히 인지한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믿는다. 좋은 인연은 내가 마음을 열면 만들어진다는 것을 믿기에.

나중에 내 아이를 학교에 보냈을 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에 전업주부 엄마들끼리 맞벌이 엄마를 왕따시키는 그룹이 생성된다면, 나는 절대 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키지 못할 일이 절대 아니기에, 자신있게 맹세할 수 있다. 나의 의지로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 또한 왕따가 된다면, 그 왕따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나는 그저 같은 여성들끼리 서로 밀어내지 않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바람직한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노력만 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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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업주부, #직장맘, #맞벌이,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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