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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어제, 그제와 변한 것은 하나도 없는데, 해를 넘긴 첫날이라 그런지 새로운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년의 새해 아침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해 연봉과 보너스가 얼마나 될까 하며 새해를 맞이했지만 올해는 '짤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실직과 해고의 공포를 안고 맞이했습니다. 능력 여부를 떠나서 경기침체에 따른 감원태풍은 공포 그 자체입니다.

기축년 새해 아침을 맞으며 가장 큰 소망으로 꼽은 것이 '짤리지 않고' 직장생활 계속 하는 것이다.
▲ 새해 첫 일출 광경 기축년 새해 아침을 맞으며 가장 큰 소망으로 꼽은 것이 '짤리지 않고' 직장생활 계속 하는 것이다.
ⓒ 이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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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내와 함께 조촐하게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 주식으로 약 1억원 정도의 경제적 손실도 입었고, 직장에서는 영업실적 부진으로 성과급도 받지 못하는 등 최악의 한해를 보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5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인데, 거의 전 사원이 연말 성과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기업에서 아직 생존(?)하고 있는 친구는 200%의 성과금을 받았고, 불황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성과급을 주어 그나마 힘들게 보낸 한해를 기분좋게 마무리하도록 했습니다.

솔직히 저같이 중소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성과금은커녕 올해도 '짤리지 않고' 계속 회사 다니는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작년에도 경기가 안좋았지만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솔직히 올해 회사가 버텨낼지도 걱정스런 상태입니다. 회사가 어려워 문을 닫으면 저는 백수가 될 것이 뻔합니다. 지금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어느 회사에서 받아주겠습니까? 그나마 있던 사원들도 감원하고 있는 형편인 걸 감안하면 정말 걱정스런 한해입니다. 길거리에서 가끔 보는 노숙자들이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노숙자가 되고 싶어서 거리나 지하철역 주변에서 잠자는 사람들은 한명도 없을 것입니다.

지난 98년 IMF때 한번 명퇴의 아픔을 맞아 2년간 직장 없이 백수로 지낸 쓰라리 경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또 실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IMF때 명퇴할 때는 나이라도 젊어서 어디든 이력서를 넣으면 한번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많았는데, 지금 실직하면 이력서를 넣어도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친구들중에는 IMF때 실직한 후 지금 자영업에 뛰어든 친구도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문닫는게 손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안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해를 맞으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자!"고 신년 메시지에서 말했는데, 지금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부터 국정을 잘 살펴야 합니다. 출범 초기부터 시작된 국정난맥상은 아직까지 풀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정치권은 해를 넘겨 미디어법 등 첨예한 법률안을 놓고 대치중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들이 위기를 기회를 만들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는지요? 힘을 얻기는커녕 절망 안하면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살아남는 것'이 최대 목표입니다. 이렇게 초라한 목표를 안고 새해를 맞이하는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아마 저 뿐만 아니라 극히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 시대 대한민국의 모든 가장들의 저와 같은 목표를 안고 새해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1998~2007년 10년 동안 미국의 정부 통계를 분석해 본 결과, 연중 실직자가 가장 많이 나온 달이 12월과 1월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해직자 수의 월별 비중을 살펴볼 때 12월에 12.6%의 직장인이 해고 통보를 받았고, 다음으로 1월이 12.2%로 나와 각각 1~2위를 기록했습니다. 연중 가장 추운 계절인 12월과 1월에 일자리를 잃는 직장인이 24.8%인 것으로 나타났고, 실직자 4명 중 1명은 날씨까지 추운 한 겨울에 '해고의 절망'을 경험한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절망의 순간은 있게 마련입니다. 어둠이 깊을 수록 새벽은 오게 마련이라는 금언을 꼭 떠올리지 않더라도 희망의 새날이 오리라는 믿음 하나로 버티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 힘겹습니다. 아슬 아슬하게 외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나가지만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외줄을 건너면 안전한 탄탄대로가 보여야 하는데, 지금 외줄을 타는 중에도 저 앞에 넓고 환한 길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실직과 해고의 공포를 안고 가는 외줄타기를 올해는 끝낼 수 있을까요?


태그:#해고, #감원태풍, #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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