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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차 한 잔 주세요!"

"덕현이 왔구나! 그래 들어와 앉아라! 고3이 되는 2009년 기축년(己丑年)! 복(福)이 많이 필요할 텐데, 복 많이 받아라!"

 

"예, 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차 마셔라! 보이차야!"

 

"이거 되게 비싸다고 하던데…."

"오래 될수록 비싼데 이건 7년 정도밖에 안 돼 그리 비싼 건 아니야!"

 

"휴대전화는 1년만 지나도 바꿔야 하는데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좋군요!"

"그래, 연설과 치마길이는 짧을수록 좋고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는데 여기 있는 차호(茶壺), 찻잔 그리고 골동품들은 다 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인 셈이구나."

 

 

"저건 선생님이 그리신 거예요?"

"응, 올해가 소띠 해잖아. 그래서 그려 보았는데 그림솜씨가 별로다."

 

"옆에 있는 글씨는 무슨 뜻이에요?"

"우여우보(愚如牛步)는 뚜벅 뚜벅 더디지만 깊은 무게로 발을 내딛는 소의 걸음처럼 우직하면서도 깊게 세상을 살아가자는 의미 정도겠지!"

 

"그 옆에 물고기그림은 또 뭐예요?

"중국인들은 새해가 되면 저런 그림을 많이 주고받는데, 고기 어(魚)자의 발음과 여유로울 여(餘)자의 발음이 '위(yu)'로 같아서 년년유어(年年有魚)는 해마다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함께 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된단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물고기 조각 소품이 있네요! 그럼 저 대나무그림은요?"

"저건 그냥 그림 같지만 사실은 편지란다."

"저게요?"

 

"관우가 조조에게 붙잡혀 있을 때 유비와 장비는 관우가 변절했다고 의심을 하게 되거든. 그때 관우가 그림처럼 위장해서 자신의 마음이 변함없음을 전한 유명한 댓잎편지야."

"댓잎편지요? 그러고 보니 정말 대나무잎에 한자(漢字)들이 숨어 있네요."

 

"기발하지? 나중에 연애편지 저렇게 한번 써보면 멋있지 않겠니?"

"글쎄요!"

 

"차 마셔라! 보이차는 완전 발효차여서 카페인이 없고 몸 속 노폐물을 걸러 주는 역할을 해. 그래서 화장실 가고 싶을 때까지 많이 마셔야 하거든…."

"예, 차에서 지푸라기 냄새가 나는 거 같아요!"

 

"그래 햇빛과 바람과 이슬을 머금은 찻잎을 세월에 숙성시킨 빛깔이 이렇게 검은 빛으로 우러나온 것이고 이 은은함에 자꾸 마음의 고개가 돌아가게 된다… 여기 차(茶)자를 잘 봐봐! 위에 풀초 十 十 더하면 20이지, 다음 아래에 있는 八 十 을 더하면 100이 되고 마지막 두 획이 八이니까 다 더하면 108이 되는 거야! 차에는 백팔번뇌와 같은 인생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고 또 차를 많이 마시면 108세까지 건강하게 산대^^"

"좀 억지스러운데요. 근데 이 발모양은 또 뭐예요?"

 

"여기 신기한 거 되게 많지? 그건 얼마 전에 산 건데… 발 위에 뭐라고 쓰여 있나 보면 유오지족(唯吾知足)이지?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안다는 뜻이니까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의미겠지. 발 족(足)이 있으니까 발에다가 글을 새긴 것일 테고… 저기 붓글씨를 보면 모두 입 구(口)가 들어 있는 거 알겠지?"

"예, 그런데 선생님 왜 발 위에 거미가 있어요?"

 

"어 그거 예전에 설지원 선생님도 물어봤던 건데, 거미를 중국어로 즈쭈(蜘蛛)라고 하는데 만족함을 안다는 지족(知足)과 발음이 같거든. 그래서 거미를 도안해 넣은 거야! 그리고 김종해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상(李箱)의 시 중에 '거미가 돼지를 만나다'는 의미의 지주회시(蜘蛛會豕) 라는 단편소설이 있는데 그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서로가 서로를 빨아먹는 거미 같은 존재로 그려지고 있대."

 

 

"와, 다 무언가 의미가 있는 것들이네요. 그럼 이 말(馬)들은 또 뭐예요?"

"어, 그건 당삼채(唐三彩)라고 부르는데 당나라 때 주로 황색, 녹색, 흰색 세 가지 채색을 사용해서 만들어서 불리는 이름이야. 비단길을 통해 아라비아 문물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아라비아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데 무덤에 부장품으로 주로 이 당삼채를 많이 묻었대. 비단길을 통해 동서문화를 연결했던 이 말들이 살았을 때의 영혼을 싣고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고 믿은 거지."

 

"그 옆에 있는 긴 돌 막대기 같은 거는요?"

"어, 그건 여의(如意) 라는 건데 왜 손오공이 들고 다니는 여의봉 같은 거지. 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의미로 손에 들고 다니는 거야! 보통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데 옥으로 만들어져 몸에도 좋고 등도 긁을 수 있고 또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통치할 수 있다고 스스로 자위하는 것이었겠지."

 

"선생님이 이런 물건들 다 사신 거예요?"

"어, 방송실에서 혼자 있으려면 소꿉놀이 하듯 이런 장난감 같은 것이 필요해서, 또 재미있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중국문화 소개하기도 좋잖아!"

"저 세숫대야 같은 것도 그럼 장난감이에요?"

"어, 그건 '시리엔(洗臉)'이라고 하는데 손잡이 부분을 문지르면 마찰과 진동에 의해 물이 튀어오르는데 주로 절에서 수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튀어 오르는 물에 세수를 했다고 부쳐진 이름이야. 그러니까 손에 물을 대지 않고 세수를 하는 것이지!"

 

"와! 한 번 해봐도 되요?"

"당연히 되지! 해 봐라!"

 

"그런데 왜 저는 잘 안 되죠?"

"마음씨가 안 좋은 사람은 원래 안 되거든…."

 

"선생님 물에 잠겨 있는 얘들은 뭐예요?"

"어 그건 오줌 싸는 아이들인데 보여줘?"

 

"예! 보여주세요!"

"물에 담가 두었다가 머리에 이렇게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줌을 싸거든… 꼬추로 들어간 물이 뜨거운 물을 부을 때 팽창된 공기 때문에 품어져 나오는 거야."

 

"와! 정말 신기하네!"

"시리엔이나 오줌싸개는 모두 진동과 공기 팽창이라는 과학의 원리가 숨어 있는 거야!"

 

"정말 그러네요! 근데 이건 젠가(Jenga) 아니에요?"

"그래, 젠가로 퀴즈 하나 내 볼까?"

 

"예, 뭔데요?"

"선생님이 대학교 첫 미팅에서 파트너가 낸 문제인데 선생님은 그때 못 풀었는데 너는 꼭 풀어라! 두 문제야! 하나는 불난 호텔(HOTEL)에 한 나무 조각만을 움직여서 불을 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 네 조각으로 밭 전(田)자를 만드는 거야! 할 수 있겠니?"

 

"와 이거 쉽지 않은데요!"

"항복하면 정답 알려줄게!"

 

"항복, 항복이요!"

"첫 번째 문제는 호텔 불을 끄기 위해 119에 전화한다는 것을 떠올리면 되고 두 번째 문제는 평면에서는 안 되니까 입체를 생각하면 되는 거야! 이렇게 말이야!"

 

"와, 재미있네요! 저도 박혜련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문제 하나 알아요!"

"뭔데? 내봐!"

 

"1+1=1에서 하나를 움직여서 식이 성립되도록 하는 거예요! 근데 선생님 저 차를 너무 많이 마셨더니 화장실에 가야겠어요."

"야! 답을 알려주고 가야지!"

 

"화장실 갔다가 수업 가야 되요! 선생님 오늘 차 잘 마시고 얘기도 잘 들었습니다. 답은 다음에 알려드릴게요!"

"그래 가라! 고3 준비 잘 하고…."


태그:#중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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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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