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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나 청소년이라는 말은 말 자체에서 풍겨나는 희망과 싱그러움이 있다. 인간의 청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깊기에 파우스트는 영혼을 팔아 청춘을 사고, 수많은 시인 가객들은 사랑과 더불어 청춘을 노래했을까.

 

<순수에게>는 손석춘이 ‘10대에 갈무리하면 평생 심지 굳으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하며 10대에게 주는 ‘순수 10계’이다. 그가 10대에게 말을 걸 결심을 하게 된 동기는  촛불집회서 만난 10대들이 외치던 “경제 살리기 전에 우리 목숨부터 살리세요!”라는 외침이 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후라 말한다.

 

… 2008년 5월이었지요. 온 나라가 밤을 밝힌 촛불집회 현장이었습니다. 촛불을 든 여고생들이 더불어 외친 한마디가 켜켜이 저를 둘러싼 관념의 껍질을 단숨에 뚫고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우리가 바보인가요? 경제 살리기 전에 우리 목숨부터 살리세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얼핏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이어진 상황은 ‘목숨부터 살리라’는 절규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지요. 경찰이 “여중 여고생 여러분, 시간이 늦어 밤길이 위험합니다”라며 주최 쪽을 겨냥해 학생들을 보내주라고 사뭇 의연한 척했을 때입니다. 여학생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곧장 입을 모아 답하더군요.

 

 “우리 원래 12시에 야자 마쳐요!”

 

그 외침에 하릴없이 눈물이 고였습니다. 남몰래 눈을 슴벅였지요. 찬찬히 톺아보니 옳았어요. 야자!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이름의 타율이고 억압이지요. 눈빛 맑은 여고생들의 외침, “우리 목숨부터 살려 달라”는 부르짖음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어요. 그 자리에 모인 이유가 광우병 소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외로운 10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던 10대 친구, 촛불을 든 청소년의 눈에 어리던 불빛이 떠올라 싱그러운 10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평생을 순수하게 살고 싶은 모두에게 말 걸기를 시도했노라고 글의 첫머리에 밝히고 있다.

 

그는 ‘숨겨진 진실 밝혀내기’라는 첫 화두로 10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해서 ‘자기 발로 우뚝서기, 인류의 길 톺아보기, 민주주의 나무 찾기, 자아실현의 길 그리기, 자기 주도 학습 익히기, 싱그러운 사랑 배우기, 정치 경멸의 정치 읽기, 아름다운 집 상상하기’로 말 걸기를 마무리한다.

 

‘숨겨진 진실 밝혀내기’의 초점은 역시 10대 여중고생이  주도해 촛불소녀로 상징된 촛불문화다. 그는 2008년 촛불은 촛불 혁명(candle revolution)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만큼  역사의 어둠이 짙어질 때마다 두고두고 진실을 밝히는 기제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렇다고 모든 청소년들이 반드시 촛불을 들어야만 하거나 거리로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흔한 사회적 양분법 보수와 진보가 아닌, 개인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선택. 즉 인생을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에 대해 현명한 선택이야말로 보수와 진보를 넘어 선  그가 제시하는  진실 찾기의 열쇠다.

 

 

성숙한 2, 3단계 직립을 향하여

 

많은 이들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1차적 요인으로 ‘직립’을 꼽는다. 두 발로 서서 걷게 된 인간 뇌의 발달이 지금의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사실 첫 돌 전 후, 두발로 서서 걷는 경이로운 체험은 개인이 맛 본 최초의 혁명에 비견할 만하다. 그렇다면 2단계 직립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직립의 1단계, 곧 몸의 곧추서기는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고갱이는 아닙니다. 직립의 다음 단계는 정신의 직립입니다. 성숙의 2단계이자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직립이지요. 인간의 자아의식은 서서히 싹틉니다. 열 살 무렵이면 조금씩 자기 세계를 열어 갑니다. 15세가 되면 마침내 정신의 직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요.… (중략)

 

…정신의 직립이란 자기 두 발로 서서 자신의 눈으로 ‘세상 읽기’를 뜻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읽어 가는 걸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미 어른이 된 기성세대지요.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세상살이를 가르치는 과정, 그것을 ‘사회화(socialization)'라고 합니다. 직립의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게지요.…

 

그렇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를 전후로 정신적 직립을 위한 처절한 자기 싸움이 시작된다. 정신적 직립이 이루어지지않은 때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 기성세대가 이미 그려 놓은 그림들이 비로소 10대들의 순수한 눈으로 읽혀지는 시기가 온 것이다. 이쯤에서 기성세대들은 위선과 거짓의 목소리를 낮추고  겸손하게 자신들을 되돌아봐야 할지 모른다.

 

정신적으로도 ‘순수’라고 이름 붙여진 10대들은 ‘벌거벗은 기성세대’, 지금까지 기성세대가 걸어 온 족적을 살펴 때 묻고 추악한 기성세대에게 가차 없이 촛불을 들이대며 그들이 본 ‘진실’을 외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직립과 더불어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3단계 직립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인생의 총체적 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랑’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Love is fulfillment of the law)'이라는 말처럼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직립을 향해 가는 일이야 말로 참살이를 지향하는  순수한 인간 모두의  소망이 아닐까.

 

…사랑은 직립 인간이 성숙하는 3단계로 마지막 단계입니다만, 1단계부터 성숙의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몸의 직립은 어머니 젖과 다사로운 사랑이 있기에 가능하지요. 정신의 직립을 위해서도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타인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는 ‘수동적 자아, 곧 객체로서의 자아’를 벗어나 스스로 결정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자아’로 곧추서기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성 간의 사랑이든 우애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우리기 배워야 할 까닭입니다. 삶은 싱그러운 사랑을 배우는 ‘평생 학교’지요. 우리가 이 지상에 존재하는 의미도 사랑을 체험하는 데 있을지 모릅니다.…

 

비교적 열린 대화를 나눈다고 자부하는 나도 10대의 끝머리에 서 있는 아들아이와  가슴을 열어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기성세대인 내 자신의 모임에 아이를 데려가 보여주는 일이다. 함께 책읽기 모임, 함께 몸을 부딪치는 모임 등을 통해서 아이 스스로 정신적 직립과 더불어 사람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러나 혼자만의 목소리나 방법에는 한계가 있다. 아이에게 일목요연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10대를 이해하는 이가 애정을 담아 책을 통해  조곤조곤 ‘순수 10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 준 것이 내심 반갑고 기쁘다. 나직나직 건네는 그의  말 걸기가  10대들의 가슴에  촛불처럼  환하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순수에게>는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의 에세이로 사계절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순수에게 - 십대에게 말 거는 손석춘의 에세이

손석춘 지음, 사계절(2009)


태그:#순수에게, #손석춘, #촛불소녀,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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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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