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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태우고 남이섬 선착장을 쉴 새 없이 왕복하는 배
▲ 남이섬 선착장을 왕복하는 유람선 사람들을 태우고 남이섬 선착장을 쉴 새 없이 왕복하는 배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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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강변에 가랑잎처럼 떠 있는 남이섬에 혼자 다녀왔다.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인사동에서 버스를 타고, 가평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그렇게 남이섬에 도착했다.

첫인상은 이랬다. 배를 타고 남이섬을 휘감고 포위하여 흐르는 강을 건너니 북적이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내국인들을 포함해 일본에서, 중국에서, 동남아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모습이 예상보다 많이 보였다. 사랑하는 연인사이로 보이는 쌍쌍의 젊은이들은 팔짱을 끼고, 허리를 감고,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낭만의 섬에 오르고 있었다.

남이섬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며 잠시 조용한 탐색을 했다. 살짝 살얼음이 언 강물은 마치 암·수의 잿빛 누룩 뱀 한 쌍이 서로의 몸을 섞어 나누는 은밀한 정사처럼 황홀해 보였지만, 요란스럽지 않게 흐르고 있었다.

암 수의 물이 몸을 섞어 은밀히 흐르고 있었다.
▲ 남이섬을 포위하여 흐르는 강 암 수의 물이 몸을 섞어 은밀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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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주변의 나무들은 온몸이 굳어버린 듯 미동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육지에서 찾아온 도시 사람들의 자극적인 냄새가 그리 달갑지 않았는지 그들의 표정은 몹시 건조하고 추워보였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혹한의 강가에 늘어선 아까시 나무들의 초췌한 겨울나기는 애처로워 보였다. 하지만 또 그 나름의 운치도 있어 보였다.

남이섬의 한 가운데 중앙잣나무 길을 걷다가 오른편에 ‘백풍밀원’이라는 잔디밭으로 들어섰다. 사시사철 푸른 기운을 잃지 않고 도도한 모습으로 고개를 하늘로 뻗은 잣나무 군락이 거기 한 쪽에 열을 지어 서 있었다. 그 나무들 사이 마른 잔디밭 위에는 낙엽이 잔잔하게 깔려 아주 미세한 바람의 유희에도 가누지 못하는 쇠잔한 몸을 허망하게 운명처럼 내맡기고 있었다.

나는 남이섬의 중앙과 좌우를 가로지르며 열을 지어 늘어선 메타세퀘이아, 은행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의 세련된 도열을 감상했다. 그 곳에 ‘수목 의장대’처럼 서 있는 나무들의 한결 같은 자태는 사뭇 진지하고 단정했으며, 숨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메타세퀘이아가 늘어선 남이섬의 대표적 숲길이다.
▲ 메타세퀘이아 숲길 메타세퀘이아가 늘어선 남이섬의 대표적 숲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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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무들이 주~욱 늘어선 아름다운 낭만의 숲길에서 연인끼리, 친구끼리,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온통 사진을 찍었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섬답게 곳곳에는 당시의 추억을 담은 기념소품과 배우들의 사진이 있었다.

카페 벽면에 붙어 있는 <겨울연가> 주인공들의 사진
▲ 겨울연가 포스터 카페 벽면에 붙어 있는 <겨울연가> 주인공들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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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변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벼운 산책을 했다. 강변의 바람은 가늘었지만 그 차가움은 예상보다 찌릿하게 시렸다. 오랜만에 아무 동행자 없이 혼자서 걷는 남이섬의 산책은 한적하고 자유로웠다.

‘유영지’라는 작은 연못에서 얇은 두께로 얼어 있는 흡사 한반도 지형과 비슷한 하얀 얼음지도를 볼 수 있었다. ‘창평원’이라는 마른 잔디밭에서 자전거를 타며 젊은 날의 우정을 나누고, 추억을 쌓는 한 무리의 여학생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들은 서로의 등을 마주한 채 빙 둘러 앉아 각자 핸드폰을 허공에 들고서 기억에 남을 자신만의 미소를 ‘셀카’로 찍었다. 나는 그녀들을 보며 이른바 88만원 세대들인 저들에게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우정과 낭만의 추억이 충만해지길 바랐었다.

젊은 친구들끼리 잔디밭에서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추억을 만끽하고 있다.
▲ 남이섬에서 자전거 타기 젊은 친구들끼리 잔디밭에서 자전거를 타며 즐거운 추억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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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들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기념이 될 단체사진 한 장을 정성껏 찍어주고서 ‘언젠가 다시 보면 반갑게 인사하자’는 친절한 눈빛을 교환하며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 야외음악당이 있는 ‘창평원’을 걸으며 으스스한 얼굴을 한 야인(野人)의 마스크를 만났고, 또 별장마을 잣나무 길 옆에 있는 ‘남이장대’를 들르고, 안데르센 홀과 ‘정관루’를 지나쳤다. 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남이섬의 구석구석을 호젓하게 살피고 즐기며 가출한 방랑인처럼 혼자만의 행복한 도보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점심때가 다가오자 한 끼니의 식사를 때우기 위해 추억의 옛날 도시락 집에 들렀다. 나는 은근히 몸속으로 파고든 추위 때문에 서서히 얼어버린 얼굴과 손을 화목(火木)난로 옆에 서서 뜨끈뜨끈하게 실컷 녹였다.

양은 도시락 한 통에, 어묵 한 사발
▲ 추억의 옛날 도시락 양은 도시락 한 통에, 어묵 한 사발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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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고, 따끈한 누런 양은 도시락 한 통과 어묵 한 사발을 사서 난로 옆에 앉아 맛있게 해치웠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 한 사발과 노릇노릇한 김치전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니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연기처럼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앉아 혼자만의 낭만적 음주에 대한 짜릿한 유혹을 간신히 참아냈을 뿐이고, 마침내 일어나 근처에 있는 ‘차 마시는 책방’으로 발길을 옮겼을 뿐이고, 헬렐레 주체 못하는 입술을 쥐어뜯으며 “끄응~” 한 마디의 외마디를 뱉어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책방에 들어서니 비좁은 공간에는 낮은 앉은뱅이 나무의자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몸을 밀착한 채 앉아 있었다. 책을 보는 사람,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사람,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소곤소곤 대며 귓속 이야기를 속삭이는 젊은이들이 꽤나 있었다.

비좁은 책방 안에 다닥다닥 앉아 책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사람들
▲ 차 마시는 책방 비좁은 책방 안에 다닥다닥 앉아 책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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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안의 젊은이들은 밉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해서 소곤거렸다. 나는 그들의 소곤대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젊은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의 대화일 것쯤이라고 짐작했었다.  

나는 나이 지긋하신 주인장 어른께 천 원을 내고 원두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그리고 책방 벽면에 가득히 꽂혀 있는 다양한 책들을 둘러보면서 따뜻한 휴식과 여유로움을 즐겼다. 하얀 종이컵에 담긴 따끈한 커피 한 잔의 향기는 깊고 감미로웠으며, 주인장 내외분의 소박한 인상은 매우 평온해 보였었다.

나는 아주머니와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사시는 곳이 어딘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이 곳 일은 재밌으신지... 아주머니는 뭘 그런 걸 다 물어보냐는 듯 정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도 싫은 내색 없이 빙긋이 웃어 주셨다.

나는 평화로운 휴식을 충전한 후 주인장 내외분께 인사를 드리고서 책방을 나서며, 짧았지만 따뜻했던 두 분과의 인연을 마음 속 수첩에 적어 넣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키다리 나무가 높이 뻗어 있었다.
▲ 하늘을 향한 나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키다리 나무가 높이 뻗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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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중앙잣나무 길 위에 두 다리를 곧게 세웠다. 그리고 그 곳에서 푹신하게 발밑에 쌓인 낙엽들을 충분하고 부드럽게 여러 번 밟고 또 밟았다. 뭐랄까? 나만의 느낌에 대한 기억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내 마음과 머릿속에 각인하고자 하는 내 특유의 본능이 발동했기 때문이었을까...

선착장으로 걸어 나오며 눈앞을 보니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의 행렬이 밀려오고 있었다. 흐릿한 남이섬의 오후 숲길에는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매료시키는 분위기가 있었고, 연인들에게 달콤한 사랑을 전염시키는 매혹적인 색소폰 소리도 있었다.

남이섬, 언젠가 내 마음이 거칠어지고 건조해질 때면 나는 다시 그 섬에 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7일 남이섬에 다녀온 후 작성한 글입니다. 남이섬-인사동 간 왕복 운행(1만5000원)버스를 타고, 선착장 승선료+ 남이섬 입장료(6.000원)을 내면 다녀올 수 있는 간편한 주말여행 코스 입니다.



태그:#남이섬, #겨울연가, #메타세퀘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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