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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랜지기 오마이뉴스

지금까지 내가 가장 오래 사귀고 있으면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정성을 들이는 벗이 있다면 그 누구보다도 오마이뉴스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친구, 혹은 연인이 있어 이토록 오랜 시간 동안 지치지도 않고, 싫증도 내지 않고, 꾸준하게 벗해 온 벗이 있을까. '사원을 떠받드는 두 기둥처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함께 있을 수 있을까.

어찌 벗이라고 해서 서로가 내 맘에 쏙 드는 구석만 있겠냐마는 그동안 벗하며 지내온 오마이뉴스를 돌아보면 꽤 길게 이어온 만남이었다.

대체적으로 사는이야기와 책동네 기사를 써오던 내가 여행기사를 부쩍 자주 올리게 되었던 것은 순전히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이다.

원고료, 제주도여행 경비에 보태다

가까운 산으로부터 시작해서 차츰 먼 산까지 섭렵하면서 나는 말로만 들었던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 우리나라 최고의 산들을 거침없이, 오르고 또 올랐다. 바로 지난 해 여름의 일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 제주도여행 경비에 일조하고
▲ 제주도 여행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 제주도여행 경비에 일조하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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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주어진 황금 같은 휴가를 얻은 우리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그 무더운 여름날, 가까운 금정산에서부터 시작해 지리산 종주, 덕유산 종주 등을 끝냈다. 다시 설악산을 비롯해 강원도 일대를 샅샅이 뒤지며 여행을 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그러다 문득 제주도가 떠올랐다.

예전부터 제주도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내게 남편은 제주도 여행은 적어도 돈 1백만 원 이상은 있어야 그나마 좀 여유 있게 여행할 수 있다면서, 좀 여유가 생기면 하자고 했다. 그래서 감히 제주도 여행을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일이 허다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좋은 휴가 기간 동안 제주도여행을 갔다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딱히 제주도에 꼭 갈 것이라는 뚜렷한 계획도 없이 막연한 소망을 담아서 ‘제주도~제주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몇 번을 거듭 말했던가. 함께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꺼낸 말을 남편은 예사로이 듣지 않았나보다. 남편도 제주도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곧이어 남편이 ‘돈이 다 안 돼도 가 볼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마이뉴스 원고료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이 얼마 되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제가 좀 보탤게요!’하고 말했다.

그동안 이곳저곳 여행하면서 남편은 적지 않은 지출을 했다. 그런데도 내가 한 번도 여행비를 보탠 적이 없었기에 선뜻 나섰던 것이다. 나는 30만원을 여행경비에 기꺼이 보탰다. 나중에는 내 돈이 더 들어가 거의 40만원을 보태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둘이서 모은 돈은 채 백만 원도 안 되었지만, 여행 가서 밥은 직접 해먹는 등 최대한 지출을 줄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날 저녁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급히 인터넷으로 항공사 예약을 하고 펜션 예약도 했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런 여행이라 밤늦게까지 며칠 동안 제주도여행하면서 쓸 물건들을 챙기느라 우린 분주했다.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돈이 없다고 내내 미루기만 했다면, 제주도여행은 언감생심 아직도 꿈만 꾸면서 언젠가는~하고 주저앉아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짐을 꾸려 김해공항에 도착했고 곧 제주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오호호, 비행기는 두 번째 타 보는 것이었다. 예전에 잠시 다녔던 직장에서 우연히 회사에서 보내준 태국여행을 신나게 다녀왔고, 제주도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하늘 위를 나는 비행기 안에서 까마득히 아래 있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이것이 꿈인가 생신가 생각했다.

남편은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가만히 잡으며 ‘당신이 제주도~제주도~노래를 부르더니 정말 제주도 가네요!’하고 말했다. 그랬다. 노래를 부르다 제주도에 가게 된 것이다. 예상치 않은 시간에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감행한 제주도여행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졌고, 비행기는 오래 가지 않아 우리를 제주도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두서없이 시작한 여행은 처음부터 많은 것이 삐거덕거렸다. 날은 흐렸고 빗방울마저 후드득거려서 우중충한 날씨였다. 예약해 놓았던 펜션은 물 건너갔고, 렌트카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한참을 무거운 짐을 놓고 공항 바깥 의자에 앉아 있자니 막막한 것이 아닌가. 남편은 렌트카 회사를 샅샅이 뒤져 결국 소형차를 구했다. 어려운 고개 하나를 넘었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 문제였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렌트카를 구했으니 숙소가 없으면 차 안에서 자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제주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밤이 왔다.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디서 잘까 마땅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우연히 가게 된 교회에서 공짜 잠자리를 얻었다. 우리는 그 교회의 옥탑기도실에 기거하면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마지막 날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제주도 여행은 정말 멋졌다. 내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 여행이었다. 그렇게 내 생애 첫 제주도 여행은 참으로 소중하고 흐뭇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통장에 모아놓았던 오마이뉴스 원고료가 그렇게 제주도여행에 크게 일조를 했던 것이다.

원고료,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 마련하는 데 일조하다

매번 특종을 팡팡 터뜨려서 원고료가 팍팍 올라가는 것이 아닌 바에야, 옹달샘에 조금씩 물이 똑똑 떨어져 차오르는 듯한 원고료로 갑자기 벼락부자나 거부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디 글 쓰는 이들이 거금의 횡재를 바라고 쓰는가. 기사를 써서 그것이 짭짤한 수입의 원고료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호박이 넝쿨째 들어오듯 돈이 계속 굴러들어 오면야 더더욱 좋겠지만, 돈에만 눈이 어두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가 거금은 못 돼도 내게는 참 유용하게 쓰여 왔던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생애 첫 제주도여행경비로 유용하게 쓰였던 원고료는 그것 외에도 작지만 유익하게 쓰였다. 몇 년 전에는 한국관광공사와 오마이뉴스가 협력해 공모했던 여행기사에 내 기사가 당첨(?)되어서 30만 원짜리 현금이 든 카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현금카드는 생활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동안 여러 모양으로 작지만 유용하게 쓰였던 원고료가 이번에도 내게 큰 도움이 되는 일이 있었다. 바로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 마련이었다. 오래 전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몇 학기 공부를 하던 중, 중도에 내려놓고 지내왔었다.

그 사람이 이사를 한 이력은 곧 그 사람의 삶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했던가. 잦은 이사는 그야말로 고단한 삶을 반증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거나 포기했다가 작년 초에 다시 방송통신대학교에 재입학했던 나는 이왕 다시 시작한 공부, 끝까지 해서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등록금에 공헌한 원고료
▲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에 공헌한 원고료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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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내야겠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했기에 이번 2009년도에 등록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빠듯한 생활에 기십 만원의 등록금을 남편한테 달라고 할 순 없어 내가 직접 돈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듯한 원고료를 차곡차곡 모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겨우 한 방울씩 차오르던 물을 목마른 이가 옹달샘을 찾아 마시듯, 조금씩 모인 돈은 또 조금씩 지출할 일도 생겼다. 남편한테 손 벌리지 않고 내게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것이나, 통신요금을 내야 하는 등 나름대로 쓰일 데가 많아 좀처럼 원하는 만큼 모이진 않았다. 차츰 방통대 등록할 기간이 다가오는데, 어느 정도 모이면 또 곶감 빼먹듯이 조금씩 지출이 생겼던 것이다. 등록금 마련이 걱정이 되었다.

등록금 마감일이 임박해서는 최대한 원고료로 들어오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려고 애를 썼다. 남편은 가끔 장난삼아서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닭 꼬치를 사 달라고 하기도 했지만(그것 얼마 한다고), 천원이나 천오백 원하는 그것조차 눈 질끈 감았다. 그 모든 유혹을 못 들은 척하고서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다.

학비 대 달라고 말 못할 바엔, 내가 모은 돈으로 학비를 마련하고 공부하려면 여러 가지 유혹을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여보, 나중에... 나중에요!’하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사를 써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사 하나 올리기 위해 소비되는 시간과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던가. 또 원고료가 차곡차곡 모이기는 또 얼마나 힘든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에 일조
▲ 원고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에 일조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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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대 등록금 마감일이 점점 임박해 왔다. 통장을 확인해 보니 가까스로 등록금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책값은 안 될 것 같았다. 이래도 해야 할까.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값은 또 언제 마련한단 말인가. 과연 이 돈을 찾아서 등록을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 필요한 것에 써야 할까. 남편, 그리고 애들한테 해 주고 싶은 것들도 많은데, 어려운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태야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끝까지 처음 계획대로 밀고 가야 하는 것일까. 남들은 그 돈이 얼마 된다고 고민하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겐 큰 돈이었다. 나는 정말 이틀 넘게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민했다. 등록 마감을 하루 앞둔 날, 나는 은행에서 돈을 찾았다. 그런데 은행에 넣어 놓고 있던 목돈이 내 손에 직접 들어오니 더욱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긴 시간 동안 쓴 기사들... 그리고 거기서 받은 원고료... 그 작은 것들이 모여서 목돈이 되었기에 내 손으로 직접 돈을 만지니 아까워서 등록하기가 더 힘든 것이 아닌가. 돈은 그날 하루 종일 내 지갑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한숨이 절로 나왔나보다. 남편은 ‘여보, 무슨 걱정 있어요? 왜 그리 한숨을 쉬고 그래요?’하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하고 말할 뿐, 터놓고 말을 하지 못했다. 그렇잖아도 모든 이들이 힘들어하는 실업대란시대에, 그것을 현실적으로 실감하고 있는 형편인데, 행복한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날도 그냥 넘어갔다. 끝까지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 마지막 날까지 두고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오마이뉴스 원고료로 낸 등록금
▲ 등록금 영수증 오마이뉴스 원고료로 낸 등록금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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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돈을 당장 필요한 곳에 쓰고 나면 과연 후회가 없을까. 하던 공부를 접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후회가 없을까... 다음날 오전, 나는 어쨌든 마지막 기로에 이르렀고 용단을 내려야 했다. 그래, 눈 질끈 감고 끝까지 가는 거다. 미련을 두지 않기 위해, 지난밤에 고민하느라 지끈지끈 무거워진 머리를 이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내 눈 앞에 남편의 낡은 허리띠와 아들에게 사 주고 싶은 오리털잠바와 신발, 딸아이에게 사 주고 싶은 책들이 어른거렸다. 그래도 나는 눈 질끈 감고 은행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더 이상 갈등하지 않기 위해, 그동안 모아온 원고료를 등록금 영수증과 함께 은행창구에 내밀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누가 내 그런 고민을 알까.

며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을... 지금 당장 사랑하는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지만, 나는 등록금을 납부했다. 당장,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책과 옷 등은 사 주지 못한다 해도 아내가, 그리고 엄마가 시작한 것을 끝까지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도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훈이 되기도 하겠기에... 막상 등록금을 입금하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당장에 생각나는 필요한 것들, 남편에게 그리고 애들한테 해 주고 싶은 것들은 오늘 아니라도 하면 된다고 내 자신한테 일렀다. 이제 남은 것은 책값이었다. 이것을 어떻게 마련할까. 혼자 끙끙 앓고 있는데 등록한 다음 날 저녁에 밥을 먹다가 남편이 뜬금없이 물었다.

‘당신 학교 등록은 어찌 됐어요?!’ 아무 말은 않고 있었지만 생각은 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겨우 겨우 어떻게 마련해서 등록은 했어요. 그런데 딱 등록금만 마련된 것 있죠! 책값을 아직 못 냈어요’ 했더니,‘책값은 내가 대 주기로 했잖아!’ 한다. 언제 그랬지?!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난다. 작년에 재입학할 때 그때 남편이 그렇게 말했었다.

실제로 남편은 그때도 책값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뻤다.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해서 고민 고민하던 책값 걱정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휴~이렇게 해서 어렵게 등록금을 마련하고, 2009년 방송통신대학교 4학년 1학기에 등록하게 되었다. 방통 4학년 1학기에 등록은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쉬면서 펑크난 과목들이 많아서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끝까지 할 계획이다.

오마이뉴스에서 받은 원고료는 내게 이렇게 요모조모 유용하게 쓰였다. 수년 전, 한국관광공사와 오마이뉴스가 협력해서 공모한 여행기사(?)에 뽑혀서 30만 원짜리 현금카드를 받아 곶감 빼먹듯 빠듯한 생활에 유용하게 쓰였는가 하면, 원고료 일부를 제주도여행을 가는 경비에 보태고, 방송통신대학교 등록금을 내는 데 썼던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모양으로 쓰인 오마이뉴스 원고료. 작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통해 번 원고료이기에 그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하다. 또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서 뿌듯하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때문에 생긴 일] 응모글입니다.^^



태그:#오마이뉴스, #원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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