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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대박, 인생역전, 로또광풍, 벼락맞을 확률보다 더 낮은 당첨률 등 로또 복권을 두고 말들이 많았던 만큼 화제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중 로또 복권 한번 안 사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로또 열풍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로또 당첨금이 이월되고 당첨금이 수백 억이 된다는 예상에도 한번도 로또복권을 사지 않았습니다. 로또복권의 낮은 당첨확률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확률을 가르치며 그 당시 유일한 복권이었던 주택복권의 당첨확률에 대해 계산을 해주시며, 확률적으로 '당첨확률이 아주 낮다, 아니 거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기억이 납니다. 내가 사는 복권 한 장의 값은 비록 작은 금액이지만 이 돈이 모여서 수십, 수백억이 되고 보니 사람들이 무지개를 좇는 소년처럼 자꾸 무지개를 쫓아가지만 가면 갈수록 무지개는 더 멀리 달아납니다.

지난 몇 년간 로또복권의 광풍이 휘몰아친 후 사람들의 관심이 이젠 조금씩 식어가고 있습니다. 남들 다 살 때 사지 않았던 그 로또복권을 지난 2월 말에 처음으로 사봤습니다. 당첨확률이 낮아 사지 않겠다던 복권을 구입한 이유는 올해 대학에 들어간 큰 딸의 등록금 때문이었습니다.

대학에 합격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 마음에 500만원이 넘는 입학금과 등록금을 빨리 내야 했지만 중소기업에 다니는 아빠 월급으로 단번에 내기는 쉽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서민들에게 500만원은 1년 적금입니다.

아파트 살 때 대출금을 받아 은행에 손벌리기도 힘든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마이너스 통장에서 일부를 빼고 모자라는 돈은 아내 명의의 카드로 빼서 등록금을 납부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년간 1천만원에 달하는 큰 딸의 등록금을 마련하려니 앞이 캄캄하고 아내에게 무능력한 남편이란 자책감까지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경기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직장이라 요즘 말이 아닙니다. 하루 하루 해고의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비애를 그대로 안고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중독'에 빠진 샐러리맨들이 많은 이유는 바로 '해고'와 '실직'의 공포 때문입니다.

지난 2월말 회사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IMF 때 실직을 하고 식당을 하다가 얼마 전 정리를 하고 재취업을 위해 여기 저기 다니고 있었습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친구와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섰습니다.

친구를 보내고 회사로 들어가려는데 제 눈에 띈 글씨가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로또복권, 인생 역전!' 게다가 로또명당이란 글귀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순간 가슴이 콩콩 뛰는 느낌이었습니다. '만약 로또에 당첨된다면…. 당장 회사 그만두고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고 마음 편히 아내와 여행이나 다니면서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로또명당집 앞에서 쭈뼛쭈뼛 하다가 들어갔습니다. 한방을 노리는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심지어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앳된 사람들도 로또를 사기위해 용지에 번호를 찍고 있었습니다. 저는 사람들 속에 섞여 용지에 번호를 찍기 쑥쓰러워 그냥 잠시 서 있었습니다. 로또를 사기위해 번호를 열심히 찍고 있는 사람들이 마치 무지개를 쫓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도 모르게 어느새 용지를 집어들고 사인펜으로 번호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생전 처음으로 로또복권 3장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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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산 날이 수요일인데, 토요일 추첨 때까지 3일간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나도 모르게 당당했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로또에 당첨만 되면 너희들 다 죽었어' 하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로또를 사서 당첨된 사람은 조상님 꿈이나 돼지꿈을 꾸었다던데, 저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로또를 샀다는 말을 안 했기 때문에 당첨되면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놀래주고 싶었습니다.

토요일 로또 추첨한다는 것을 모르고 일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로또 산 것이 생각나 인터넷으로 번호를 확인해보니 역시나 1등은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1장이 번호 3개가 맞아 6등에 당첨되었습니다. 당첨금이 5천원입니다. 20~30억의 당첨금으로 인생 역전을 바라던 제 꿈은 한여름밤의 꿈이었습니다.

3일간 당당했던 마음도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와 회사에 나가서도 다시 해고와 실직의 공포를 안고 일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수학선생님이 말씀하시던 확률을 믿고 로또를 사지 말았어야 했는데, 잠시 일확천금의 망상에 사로 잡혀 살았습니다. 가슴 한구석에 올해 대학에 들어간 큰 딸의 등록금 부담이 있어 저도 모르게 로또명당으로 발걸음이 옮겨진 듯 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본 로또복권은 제게 잠시 동안의 행복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행복의 대가로 지불한 1만5천원이라는 돈이 아깝지는 않았습니다. 서민들이 로또복권을 통해 이런 행복이라도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낙으로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역전은 아니더라도 로또를 구입한 후 당첨일을 기다리는 동안만이라도 서민들의 마음은 모두 부자고 행복한 재벌로 살 것입니다.

저 혼자만의 로또광풍은 결국 허망으로 끝났고, 다시는 허망을 꿈꾸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Daum)에도 송고되었습니다.



태그:#로또복권, #인생역전,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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