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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염원동산에서 만세삼창
 통일염원동산에서 만세삼창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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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국이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나려면 혁명은 불가불 할 수밖에 없지 않소!"
1926년 12월 28일 일제의 대구 법정에서 일본인 판사를 질타한 의열단원 이종암의사의 말이다. 그는 의열단장 김원봉의 지시로 중국 상해 황포강 외탄부두에서 배에서 내리는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저격에 실패한 후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3.1 독립운동의 만세소리가 온 누리에 진동했던 그날의 함성이 들릴 것 같았던 지난 토요일(3월7일),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함께한 사람들은 70여명이었다.

먼저 통일염원의 동산에서 뒤늦은 기념행사로 애국가 제창, 그리고 만세삼창으로 식을 마치고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전시되어 있는 기념물들과 기록들, 그리고 일제가 우리 선열들에게 행한 잔혹한 모습의 조형물들이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며 치를 떨게 했다.

전시실을 모두 돌아보고 선열들의 애국시와 어록비들이 세워져 있는 순환로를 따라 걸었다. 전에도 독립기념관에 한 번 다녀갔지만 순환로를 걸어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순환로에 들어서자 길 좌우에 커다란 비석들이 나타난다. 모두 선열들의 나라를 사랑하는 시와 말이 기록된 비석들이었다.

순환로 옆에는 '독립군 체험학교'와 애국시, 어록비가 모여 있는 '추모의 자리'가 포근한 봄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순환로에는 무려 89개의 애국시와 어록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종암 의사의 어록비도 그 중에 섞여 있었다.

이종암의사 어록비
 이종암의사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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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선생 어록비 나의 소원
 백범선생 어록비 나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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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눈길을 끈 비는 백범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어록비였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유 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 중에서 발췌한 글이라고 적혀 있었다. 너무나 유명한 말이었지만 백범선생의 모든 것이 담긴 글이어서 언제 읽어보아도 가슴에 담기는 글이었다.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고, 땅이 작고 사람이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1907년 4월 20일 종로 YMCA 강당에서 행한 '생존경쟁'이라는 연설문 속에서 발췌한 이준열사의 어록이었다.

일성 이준열사 어록비
 일성 이준열사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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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우 의병장과 충정공 민영환 어록비
 연기우 의병장과 충정공 민영환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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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 이준열사는 한말의 항일애국지사로 독립협회에 참여하고, 개혁당, 대한보안회, 공진회, 헌정연구회 등을 조직했다. 열사는 1907년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고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등과 합류하여 참석하려 했다. 그러나 일본측의 악랄한 방해로 참석치 못하고 순국한 분이다.

'아! 슬프도다. 삼천리강토를 보전하지 못하니 너나없이 어찌 애통치 않으리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이 몸 차라리 싸워 충혼이 되리라' 군인 출신으로 을사조약에 항거하여 강화도 지역에서 의병장이 되어 싸웠던 연기우 의병장의 어록비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일제에 맞서 싸웠던 군인다운 기개가 가득 담겨 있는 글이었다.

'슬프다. 나라와 민족의 치욕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경쟁 속에서 멸망하리라. 삶을 원하는 자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 살아갈 수 있으니 이는 여러분이 잘 알 것이다. 나 영환은 죽음으로써 황은을 갚고 2천만 동포에게 사과하노라.

의병장 민충익 어록비
 의병장 민충익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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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긍호 어록비
 민긍호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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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환은 죽어도 황천에서 동포들을 돕고자 하니 우리 동포 형제들이여 천만배 분려하여 뜻을 굳게 갖고 학문에 힘쓰며 합심 협력하여 우리의 자주독립을 회복한다면 나는 지하에서 기꺼이 웃으리라. 오호라!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우리 대한제국 동포에게 마지막으로 고별하노라. 1905년 11월 4일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유서내용이다.

'슬프도다. 이제 우리나라는 일본에게 병탄되었으니 나라 없이 일가일신의 영예가 있을 수 없고, 망국의 설움 받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다. 애달프다. 우리 집 재산을 다 팔아서 창의군 병기와 군량에 충용하리라'  창의군 대장 민충식공이 가족과 동지들에게 남긴 격언이다.

'긍호는 국권을 빼앗기고 국민이 도탄에 빠져 있는 때에 긍호가 일본에 투항하면 일본치하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부가 8역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모르는바 아니나 긍호의 뜻은 나라를 찾는데 있으므로 강한 도적 왜와 싸워서 설혹 이기지 못하고 영혼이 망망대해에 떠돌게 될지라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을사늑약 후 여주지역에서 일본에 맞서 싸웠던 민긍호의 어록이다.

다산 정약용 어록비
 다산 정약용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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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앙 어록비
 조소앙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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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는 국민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국민이 관리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다. 청렴은 관리의 본분이고 만 가지 선행의 원천이며 모든 덕행의 근본이므로 청렴하지 않고서는 관리로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벼슬이란 반드시 바뀌는 것이므로 바뀌어도 놀라지 않고 잃더라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에서 발췌한 글로 시대를 초월하는 관리들의 지침서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 제도와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호혜평등으로 민주국가 건설하자' 조소앙 선생의 '3균주의'는 선생이 독립운동의 기본 방략과 조국건설의 지침으로 민족주의 정신사상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개 같은 왜적놈을 한울님께 조화받아 일야간에 멸하고서 대보단에 맹서하고 한의 원수까지 갚아 독립 달성하겠습니다'  동학 농민운동가이며 천도교 제4대 대도주였던 춘암 박인호의 기개 넘치는 어록이다.

춘암 박인호 어록비
 춘암 박인호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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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록비 하나하나를 찬찬히 살펴 읽으며 걷노라니 선열들의 숨결이 가까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국민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남긴 유서에서는 비장한 감회가 끓어오른다.

그러나 침략국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는 의병장과 독립지사들의 글에서는 넘쳐나는 기개가 가슴 가득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곤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역사청산도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아직도 당시의 친일세력과 그들의 후손들이 준동하는 현실에서 선열들의 어록은 결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라 깊이 되새겨야 할 역사의 교훈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립기념관, #어록비, #이승철, #선열, #순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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