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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의병장 윤희순 '안사람의병가' 비
 여성 의병장 윤희순 '안사람의병가' 비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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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치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있나.
우리도 나가,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시정 받들쏘냐, 우리 의병 도와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춘천과 가평일대, 그리고 만주벌판에서 의병활동을 벌였던 여성의병장 윤희순이 여성들에게 보급하여 의병활동을 돕게 했던 노래라고 한다.

이동휘선생의 독립전쟁
 이동휘선생의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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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문일평 어록비
 호암 문일평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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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독립은 민족이 요구하는 정의 인도로서 대세필연의 공리요 철칙이다.'
역사가이자 언론인이었던 호암 문일평의 '애원시' 중에서

'2천만 동포는 다 필사하기까지 최후 1인의 혈점이 필적하기까지 정의와 인도를 표방하여 우리 독립을 국제연맹에 요함도 물론, 외교상에 일수난이어니와 나는 우리 독립을 단순한 외인의 찬조에 의뢰함보다도 내가 내 혈로써 우리 자손 억만대의 광영이요 행복 되는 완전무결한 독립을 사려하는 마음, 다시 말하면 최후 혈전이라야 반드시 영원한 독립을 성공하리라 하노라' 대한민국 원년 11월4일 이동휘

성재 이동휘 선생은 구한말의 독립운동가로 상해 임시정부에서 군무총장, 국무총리를 지낸분이다.

'을유년 8월 15일에 일본이 패망하고 소련과 미국이 나라를 남북으로 분단하도다. 공산주의와 외래문화가 민족과 국가를 망치고 공산, 자유의 극한대립이 세계를 파멸할지니 마침내 한민족의 선도문화가 크게 번창하여 공산, 자유의 대립 파멸을 막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리라' 독립운동의 선구자 홍암 나철 선생의 예언시다.

나철선생 예언시
 나철선생 예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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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렬 광복군 선언문
 유장렬 광복군 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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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 나철은 전남벌교 출신으로 구한말 부정이라는 벼슬을 지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참지 못하여 1907년 매국노들의 암살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에 탄로나 전남신안군의 지도섬에 유배되었다. 그 후 특사로 풀려나 1909년 음력 1월 15일 중광절에 대종교를 창시하고 포교를 시작하였다. 1916년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일제의 학정을 통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대한독립 광복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할 것을 굳게 맹세한다'
광복단 선언문 유장렬선생 어록.

유장렬 선생은 전북 고창출신으로 1912년 독립의군부의 의병장 이석용의 부장으로 활약했다. 그해 12월 조선총독 데라우치에게 정권반환요구서와 철병요구서를 제출했다. 1913년 경상북도 풍기에서 한훈, 채기중 등과 광복단을 조직해 친일파인 양재학, 서도현 등을 살해하고, 오성헌병분견소를 공격해 일본군 여러 명을 사살했다.

1919년 4월 이병하, 김제원과 같이 전북 고창의 부호 김기팔의 집을 습격하여 군자금 2630원을 마련하고, 계속해서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주의 부호 집을 침입하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서애 유성룔 어록비
 서애 유성룔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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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시무8조비
 이덕형 시무8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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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께서 우리 땅을 한걸음만 떠나셔도 조선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지금 동북의 여러도가 옛과 다름없고 호남의 충신의사가 곧 벌떼처럼 일어날 것인데 어찌 나라를 버리고 압록강을 건너가는 의론을 해야 하겠습니까'

임진왜란 초기 피난길에서 선조가 동파에 이르러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물었을 때, 명나라로 건너가 도움을 청하자는 조정 공론에 서애 유성룡이 반론으로 제기한 말이다.

'임금의 한 생각이 나라의 치란은 판가름 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어리석으면서도 지극히 두려운 것이 백성의 마음인 것입니다. 공평하고 인자한 정사를 펴 민심을 수습하셔야 할 것이며, 새로운 무기를 제조하고 군사는 무예를 조련시켜 전 장병을 정병으로 양성하여 외침에 대비해야 하며, 지형의 요해한 곳을 살펴 방어진을 설치하여 영원한 자주국방의 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중인 1594년 한음 이덕형이 상소문으로 올린 시무8조 중에서

권율장군 격문
 권율장군 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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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장군 어록비
 김시민장군 어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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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문, '하늘이 무심하여 나라는 암흑의 운을 당하매 그 틈을 타 쳐들어오니 백성들은 실로 위급한 때를 만났구나. <중략> 이곳 호남은 일찍이 이 나라의 왕업이 창건된 곳이다. 도순찰사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지 않았으니 국가에 끼친 죄를 면할 길이 없도다.

백성들은 이미 적에게 해를 입었으니 어찌 어진 사람 있는 나라라 하리요. 아, 아, 슬프도다, 모든 고을의 남아들이여.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자. <중략> 저 흉적을 물리침에 온 힘을 다하여 토벌하도록 하자. 우리들의 충성심을 다해 선조 대대로 물려온 이 산천을 다시 맑게 하고, 다시 사직을 반석위에 세움으로서 나라의 공명을 청사에 남기도록 하자. 나와 함께 나아가 왜적을 토벌할 사람은 서둘러 지정된 날자에 모여주기 바란다.' 임진왜란 당시인 1592년 10월 도원수 권율의 격문

'나는 충의를 맹세하고 진주성을 지켜 국가중흥의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힘을 합쳐 싸우면 천, 만의 섬 오랑캐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를 따르는 자 살 것이며 도망하는 자 멸할 것이니 감히 도망하는 자는 목을 베리라.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지고 식지와 장지도 활을 당기다 남은 세 손가락마저 떨어질 때까지 싸우리라'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0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부사 김시민

곽재우 의병장 유서
 곽재우 의병장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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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병들은 이름이나 이익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이니 왜적을 격파하는 데만 힘쓰고 죽은 적의 머리를 베어 이를 조정에 바치고 논공행상은 논하지 말라' 1592년 홍의장군 곽재우의 유서에서

독립기념관 순환로와 추모의 자리에 세워져 있는 어록비 중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여성 의병장 윤희순의 '안사람 의병가'가 일행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이 되리라는 나철선생의 예언시에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안사람 의병가, #의병장, #이승철, #어록비, #예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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