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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독일 속담을 빌리면 '사월과 오월은 그해의 열쇠'란다. 우리 속담은 삼사월(음력을 말하므로 사월과 오월이 된다)에 낳은 애기 저녁에 인사한다는 말과 같은 뜻이겠다. 이는 어린 아이가 태어난 그날 저녁에 인사한다 함이니, 삼사월은 하루해가 몹시 길어서 무슨 일이든 하루만에 거의 다 해 치울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오월이 가까워 오는 4월은 해가 길어졌다. 새벽에 일어나 산책하는 시간이 빨라졌다. 퇴근 후에도 산행을 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어제는 조금 일찍 퇴근해서 금정산에 올랐다. 주말에 산벗들과 오르는 산행도 좋지만, 혼자 오르는 등산도 호젓해서 좋다. 찌르르 호호르르 뻐꾹뻐꾹 온갖 새 소리에 나는 벌써 속세를 떠난 스님처럼 한가로운 마음이 된다.
 
 
이 4월이 가면 그만 봄도 가고 말리라. 벚꽃이 진 자리에 파릇파릇 연두빛 잎새가 돋아난 것이 어제였는데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짙어간다. 정말 4월의 숲은 청아하다. 마치 18세 소녀의 꿈처럼 연두빛으로 물드는 금정산 가는 길은 여기 저기 새소리 요란하다.
 

 
봄 햇살들 활시위 팽팽히 당기는데
탱크 뚜껑 같은 그루터기들
여기 저기 너부러져 있었다.
재선충에 병든 몇 그루의 소나무 숲속에서
팔이 잘린 상이 군인처럼 고로쇠나무 몇 그루도 서 있었다
돌무지에 모가지가 눌린 풀들이 비명을 질렀다.
살갗이 벗겨진 음나무와 팽나무도 초록을 뱉고 있었다.
잠시 등 굽은 나무 등걸에 기대서
구름 흐르는 하늘을 오래 쳐다 보고 있다.
우유빛 아침으로 세수한 이슬들이
툭툭 산의 이미와 와서 떨어졌다
<산림 시편> 자작시
 

 
올해 초 내가 세운 계획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게, 모 인터넷에서 '내가 나에게 보내는 새해 계획 확인 메일'을 신청했다. 그런데 며칠 전 내가 보낸 내 메일을 열어보고 새해 첫날 세운 내 계획의 어느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새해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의 하나도 나는 4월이 지나는데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바삐 돌아가는 일상이 내 생활을 다 빼앗아 버리고 나만의 생각 나만의 취미 나만의 일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신문에서 읽었는데 요즘은 점심 시간도 아껴서 취미와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유행이라는 얘기다. 나는 이제 길고 긴 4월의 남은 시간과 5월의 시간, 그리고 6, 7, 8월 등 남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내 시간으로 많이 만들어가리라 작심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산길이 있는 곳으로 무작정 걸어서 올라왔다. 산성 마을이다. 나는 오래만에 닭장 밖으로 나와서 저희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닭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청아한 사월의 숲 속에서 아름다운 여신상을 만났다. 정수리에 가득 꽃바구니를 인 여신상...
 

 

이 한해의 열쇠인, 4월의 마지막날까지 나는 물고기처럼 잠들지 않고 깨어 있으리라 다짐해 본다. 그러나 산 속은 세상보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모양이다. 산길이 어둠을 재촉하고 있었다.


태그:#4월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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