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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일의 과정에서, 길의 도중에서 잃어버린 초심을 회복하는 것이며, 일의 결과나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뛰어넘어 자신의 순수 존재를 깨닫는 내려놓음의 정신과 만나는 일이다. 또한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온전히 다가서는 건강한 시간의 여백이다.

 

일상에서의 탈출, 자연으로의 복귀. 지난 토요일(25일)<문학춘추작가회>회원 50여 명과 함께 떠나가는 봄의 정취와 찾아오는 여름의 소리를 하늘 가까이에서 귀동냥하기 위해 메마른 대지 촉촉히 적시는 단비 좇는 설레는 가슴으로 길을 나섰다.

 

광주의 대표적인 문학단체인 <문학춘추작가회>에서는 매년 4월 이맘때쯤이면, <찾아가는 문학기행>을 실시한다. 이번 문학기행은 옛 전남도청 → 장성문화예술공원 → 곰소항 → 전북 부안의 신석정 생가 → 매창 공원 → 광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짜여졌다.

 

 

 

문학이 자연과 몸을 섞다

 

09:00 문화수도 광주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건립되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이 2012년 준공을 목표로 한창 분주한 삽질을 하고 있는 옛 전남도청 분수대 앞을 출발한 버스는 초록으로 물결치는 금남로 숲의 터널을 가로질러 시나브로 장성문화예술공원으로 향했다.

 

창가를 비껴가는 푸른 가로수 행렬, 도로변 곳곳에 널려있는 붉은 꽃 잔디 세상, 산과 들 지천에 누워있는 선연한 빛깔의 연분홍, 진분홍 영산홍과 철쭉 물결 등이 보는 이의 눈과 가슴을 황홀한 감동의 파노라마로 가득 채우며, 세속에 갇힌 답답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산과 들이 온통 푸른 초장이요, 울긋불긋한 형형색색의 꽃밭이다.

 

 

이동하는 버스 안은 정담을 나누는 회원들의 이야기꽃으로 출발부터 그 열기가 뜨겁다. "오늘의 문학기행은 우리 <문학춘추작가회>가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찾아가는 문학기행>으로 기행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고전문학 향기와의 만남과 선후배 문인들과의 묵시적인 대화를 통하여 문학의식 고취와 함께 보다 나은 내일의 자기발전을 도모하는 일에 그 의의가 있다"는 노남진 회장의 인사말씀.

 

300여 명이 넘는 문학춘추작가회 회원들의 신상명세서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는 박형철 계간<문학춘추> 이사장의 상세한 참석자 소개, 90이 다되는 연세에도 "삶은 아름다운 것이여, 문학인의 나이는 무한대여" 라며 조크와 유머와 너스레로 좌중을 웃기는 조연탁 시인 등 참석회원들의 정감어린 멘트, 술, 안주, 과일, 물, 김치 등 푸짐한 먹거리가 한데 어울려 문학기행의 맛을 더한다.

 

광주에서 장성문화예술공원까지는 버스로 30여 분 소요. 문화예술공원은 백양사 IC에서 남창계곡 앞을 지나 백양사 가는 길목, 장성댐 상류에 다소곳한 처녀의 부끄러운 속살로 자리하고 있었다.

 

 

시비 문학공원에서 만난 '103인의 문화예술인'

 

문화예술공원은 드넓은 대지에 잘 조성된 체육공원이다. 잔디, 꽃, 나무들의 조화로운 물결이 공원다운 운치를 듬뿍 안겨준다. "이곳 공원에는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동상과 김소월의 진달래 등 시 56편, 김인후의 초서 등 서화 11편, 허백련의 추경산수 등 그림 22점, 서능의 가거십훈 등 어록 13편 등 총 103점의 글과 그림들이 조각 작품으로 새겨져 있다"고 장성군 문인협회 부회장이며, 문학춘추작가회 이사인 조선희 시인은 말한다. 조시인은 장성군 문화관광해설사이기도 하다.

 

 

입구에 들어서니, 훤칠한 키로 무장한 공원 상징 탑이 손짓하고, 선연한 영산홍 꽃물결이 인사하고, 손광은 전남대 명예교수의 '장성문화예술공원의 준공 축하 헌시'가 우리 일행을 반긴다. 손교수는 <문학춘추작가회> 고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림문화 뿌리 내렸던 곳에

다시 詩·書·畵·語錄문화 새싹 되어 움트는

文不如長城이여.

 

눈부신 문화예술 속에 숨쉬고 있는 長城이여.

하늘 닿게 꿈틀거려 솟구쳐 生動하는

선비의 고장 발상지답게.

예술의 향기 넘치는 구나.

 

작품마다 영원한 개성 그 얼이 흐르고

마음을 비추는 밝은 빛이 사방을 밝히는구나.

 

무한한 예술의 힘이 가슴속에 정열로 남아

백암산 기슭 장성호 물 속에도

불붙는 단풍잎이 밝고 맑게 불타는구나.

 

골 깊은 山과 계곡 따라 아름다운 장성에 와서

문화예술공원, 詩 읽고 그림 보고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까지 느끼다가

노령의 精氣속에 머물다가 예술혼 묻혀 세계로 펼쳐라.

노령의 精氣속에 머물다가 예술혼 묻혀 세계로 펼쳐라.

 

 

조금 안으로 들어오니, 공원 한 중앙에 임권택 영화 감독의 동상과 <21세기 위대한 장성건설>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커다란 주춧돌이 보인다. 뒤편으로 야외공연장이 보이고, 마을이 보인다. 이곳 공원은 아무래도 옛 마을의 주변 산과 들에 조성된 듯하다.

 

한국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세계적인 명성을 떨쳐온 이 고장 장성출신의 예술인이다. 1962년도에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첫 메가폰을 잡은 이후 한국인의 전통과 삶의 정서를 빼어난 영상미로 승화시킨 수많은 명작들을 낳았다. 장성군이 그의 100번 째 작품 <천년학> 제작에 즈음하여 그동안 영화계에 남긴 그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고, 장성 군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 데에 보답하기 위해 이 조형물을 세웠다(건립 취지문).

 

"문학춘추작가회 회원 여러분의 장성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장성문협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득 담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기행의 첫 기록을 기념촬영으로 남겼다.

 

장성문화예술공원의 백미인 시비문학공원은 공원 좌측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바람이 세계 불고 날씨가 제법 쌀쌀하기는 하였으나,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조선희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로 답사를 시작했다. 방문객들은 입구에서부터 탄성을 질렀다.

 

유배중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장성 땅에 들어와 장성의 느낌을 절절이 담아낸 '장성에서'라는 시구가 먼저 눈에 띄었다. 연이어 동화작가 윤석중 선생의 '달따러가자' 동요시비가 보인다. '애들아 나오너라. 달 따라가자' 누구나 어릴 적 입에 달고 불렀던 노래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조시인의 선창에 따라 시비에 새겨진 동요를 힘차게 불렀다. 추억이 향수가 절로 밀려왔다.

 

애들아 나오너라 달 따러가자/장대 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뒷동산에 올라가 무등을 타고/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는 불을 못 켜서/ 밤이면 은바느질도 못 한다더라/애들아 나오너라 달을 따다가/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들이자.(윤석중의 '달따러가자').

 

호젓한 길을 따라 걸어가니, 100여 가지가 넘는 각각의 조형물과 시비들과 장승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은잔디 곱게 깔린 뜨락을 뽀삭뽀삭 거닐면 전국적으로, 시대적으로 다양하게 꾸며진 작품들을 살펴보니, 문학의 향기가 물밀듯이 밀려와 가슴을 쳤다.

 

이곳에는 엄한 꾸지람도 있고, 희망의 돛을 달아주는 사랑의 연가도 있고, 호남인의 기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애국의 메시지도 있다.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발걸음 멈추고 들여다보는 여유를 만들어준다.

 

 

김소월, 서정주 등 서정시인,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등 청록파 시인, 이육사, 유치환, 한용운, 타고르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문학대가들의 서정과 향수가 넘치는 시, 고경명, 기대승, 송순, 정약용, 정몽주 등 역사적 인물들의 한시, 김정희, 김인후, 이색, 김생 등 사학자와 화가들의 서예, 김홍도, 신윤복, 안견, 허련 화가 등의 그림, 김구, 서재필, 윤봉길, 안창호 등의 주옥 같은 어록 등을 접하니, 마음이 울렁거린다. 모든 것이 위대한 문학의 향기요, 값진 유산이다.

 

특히 시비 문학공원 전망대 앞에서 장성호 내려다보니, 장성호가 맑고  투명한 산정호수로 보이고, 공원 뒤편 노령산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남창계곡이 무릉도원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하늘과 산을 감싸 안고 있는 운무의 신비로움이 자연의 운치를 더한다. 이곳 시비 공원은 그야말로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사대부 집안의 묘로 보이는 웅장한 묘도 함께하고 있다. 사방팔방이 병풍림이고, 앞과 좌우가 온통 초원의 언덕이다.

 

 

몸집 큰 소나무, 벚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장승, 영산홍, 철쭉, 꽃 잔디, 위대한 문화예술인들의 살아있는 문학 혼, 이 모든 것들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아름다운 동거를 하고 있는 시비 문학공원은 너무나 가치 있고 소중한 우리네 문화자산이다.

 

내친 김에 작품 몇 점 소개해 본다.

 

'行雲流水' 하는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 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의' 나그네')

 

<나그네>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간결한 언어로써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그려내고 있다. 정처 없이 나그네가 가고 있는 남도 삼백리 모든 곳이 고향으로 보여 진다. 나그네가 걷는 걸음의 속도는 바람의 속도와 같으며, 바람에 떠밀려가는 구름의 속도와 같다. 行雲流水 하는 나그네의 유유자적함이 돋보인다. 강나루를 건너 밀밭 길도 아름답고, 술 익는 마을 하늘위의 저녁놀은 풍경 그 자체만으로 보석처럼 아름답다.

 

박목월(1916~1978)의 본명은 영종, 경북 경주 출신으로 본관은 밀양이다. 대구 개성중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갔다가 귀국, 1933년 동시<통딱딱 통딱딱>이 <어린이> 잡이에 특선되고, 1939년 <문장>지에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시단에 등단하였다.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 날 만하다'고 정지용은 말했다.

 

1946년부터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동심의 소박성, 민요풍 등이 조화를 이룬 자연친화와 전통적인 율조의 아름다움 서정시를 썼고, 이후에는 인간내면의 정서와 존재를 천착하여 상징의 차원까지 끌어올린 다양한 시적 변용의 시를 썼다.

 

1955년 아세아 자유문학상, 1968년 대한민국 문학상 본상을 수상했고, 1969년 서울시 문화상, 1972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으며, 한양대학교 교수,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시집으로 <산도화>, <난·기타>, <경상도의 가랑잎>, <청담>, <무순> 등이 있다.

 

 

봄비 시인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江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밭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수복의 '봄비')

 

<봄비>는 어느 봄날 비를 바라보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정취를 밝고 건전한 이미지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특히 봄비가 그치면 만물이 소생하고 처녀애들도 짝하여 새로이 설 깃이라는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통한 새 생명의 환희는 특유의 남도 가락과 함께 더욱 흥취를 돋운다. 한국 현대 시사에서 대표적 서정시 중 하나로 곱히는 이 작품은 국정교과서에 수록되었을 뿐 아니라 사후에 고향인 함평군민들이 뜻을 모아 시비를 세워 그의 높은 시 정신을 기리고 있다.

 

이수복(1924~1986)은 시인 전남 함평 출생으로 본관은 함평이다. 조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후 수피아여고, 숭일고, 광주일고, 순천고 교사를 역임했으며, 1954년 <문예>에 <동백>이, 1955년 <현대문학>에 <실솔>, <봄비>가 서정주에 의해 추천됨으로써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문학상과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했으며, 1968면 시집<봄비>를 출간했다.

 

 

순수 서정시인 용아 '박용철'

 

나의 하늘에도

나의 이 좁은 하늘에도

새는 날아온다.

 

웃처마와 아랫처마 사이의

발 남짓한 이 하늘에도

날씬한 몸 새는 날아온다.

 

학이 날아온다

이내 지나가노나

사라지는 그림자야

사라지는 그림자야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야

모든 사라지는 그림자는 헛될거나

 

새는 한가로이 지나가누나.

(박용철의 '좁은 하루')

 

박용철의 '좁은 하늘'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방황하는 심리가 잘 드러난다. 이는 이상향의 미래는 떠남의 의미가 존재한 환경에서 새의 기상으로 날아오는가 하면 지나가고, 순간 살아지는 그림자와 같은 새가 되어 한가롭게 그러나 허무의 날개 짓임을 보여주고 있다.

 

박용철(1904~1938)은 광주시 광산 소촌리 출생으로 호는 용아, 본관은 충주이다. 1920년 배재고보와 일본 청산학원을 거쳐 1923년 동경 외국어학교 독문과와 연희전문에서 수학하고 문학에 정진하였다. 문학을 하게 된 동기는 영랑과의 교우관계에서 비롯되었으며, 마침내 영랑과 함께 <시문학>(1930.3)을 창간했다. 그의 <시적변용에 대하여>는 존재론적 시론이며, 비평관은 인상주의에 가까웠다. <문예월간>, <문학>지 간행 및 외국 시 번역과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군선도'

 

국보 제139호인 김홍도의 <군선도>는 단원이 31세 때인 1776년 그린 8폭 병풍그림으로, 서왕모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신선들이 악수를 건너가는 모습이다. 상상속의 신선 세계답게 배경은 몽롱하게 비우고, 바람에 흩날리는 굵고 힘찬 옷자락과 신선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정이나 자세를 힘 있거나 섬세한 붓놀림으로 자유롭게 그려내었다.

 

김홍도(1745, 영조21~?)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풍속화가로 자는 사능, 호는 단원·단구·서호·고먼거사·취화사·첩취옹, 본관은 김해이다. 그는 20대에 도화원의 화원이 되어 28세인 1773년 어용화사로 발탁, 영·정조 어진과 왕세자를 그리는데 참여하였으며, 임금의 명으로 금강산을 비롯한 영동지역의 산수풍경과 백성들의 생활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풍속화로 조선후기 회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산수·인물·화조·신선 등 어떤 소재이거나 독자적인 화법으로 능숙하게 그려내면서 조선후기 주체문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찰방과 영풍현감을 지냈으며, 스승인 강세황으로부터는 '근대명수'라 찬사를 받기도 했다.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의 '하경산수'

 

허련의 <하경산수>는 소치 특유의 부드럽고 넉넉한 토산을 간결하고도 힘 있는 윤곽선과 먹점들로 처리해낸 일종의 '관폭도'이다. 여름비에 물이 불어 우렁차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를 관조하고 선비의 호언지기와 힘 있게 다루어진 바윗골과 폭포줄기, 소나무들의 필선들이 소치 그림 가운데 특히 골기 가득한 화폭을 보여준다.

 

허련(1809, 순조 9~1892, 고종 29)은 조선말기의 남종화가, 일명 허유라고도 한다. 자는 마힐, 호는 소치·노치·석치, 본관은 양천으로 전라남도 진도출신이다.

 

젊은 시절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로부터 정신적 바탕과 서화의 가르침을 받았고, 당대의 권문세가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예도와 문기를 높일 수 있었다, 시와 글씨, 그림에서 고루 뛰어나 삼절이라 하였으며, 말년을 고향 진도로 돌아와 '운림산방'을 짓고 자연과 예술을 조화시킨 호남 남화의 밑바탕을 튼실하게 다져놓았다. 저서로 <소치실록>이 있다.

 

이외에도 김구의 '나는 38선을 배고', 서재필의 '조선의 청연들이여', 안중근의 '국가안위노심초사', 안창호의 '나는 밥을 먹어도', 윤봉길의 '우리청년시대에는', 이순신의 '약무호남시무국가' 등 주옥같은 어록들도 나라사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한다.

 

 

특히 가문과 후학의 정표로 삼았던 서능의 '가거십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가거십훈은  척박한 시대에 참된 인간의 모습을 점차 잃어가며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사람의 도리와 바른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만하고 생각하게 하는 일종의 가훈적인 도덕률이다.

 

부식삼강(扶植三綱) : 삼강을 지킬 것

돈서오륜(惇敍五倫) : 오륜을 돈독히 하여 질서를 세울 것

관이어하(寬以御下) : 너그러운 맘으로 아랫사람을 대할 것

예이사상(禮以事上) : 예로써 윗사람을 섬길 것

임상치애(臨喪致哀) : 상을 당하여는 슬픔을 다할 것

당제치경(當祭致敬) : 제사 때는 공경을 다할 것

대심이공(待心以公) : 마음가짐을 공정하게 할 것

처사이의(處事以義) : 일을 처리할 때는 올바르게 할 것

교자이정(敎子以正) : 자식을 바르게 교육시킬 것

대인이서(待人以恕) : 남을 대할 때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것

(서능의 '가거십훈')

 

서능은 고여 고종(1213 ~ 1219)때 현재의 북일면 작동마을에서 흥위위 보승별장 희팔(希八)과 합천이씨의 4남중 2남으로 태어났다. 서능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고 약관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시중(侍中)에 이르렀으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되신 어머니께서 고종33년(1245) 12월에 목에 종기가 나서 위급한 상태가 되자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의원을 청하여 보였다니 "산 청개구리를 구하지 못하면 고치기 어렵다"고 하였다.

 

마침 때가 한 겨울인지라 청개구리를 구할 수가 없어 애통하게 흐느끼니 이를 딱하게 본 의원이 "비록 산청개구리는 없더라도 약이나 만들어 시험해보자" 고 말하여 집 앞의 나무아래에서 약을 달이고 있는데 갑자기 나무 위에서 청개구리가 약탄관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하늘이 서능의 효성에 감동하여 산청개구리를 내려주었다고 입을 모았으며, 그 약을 붙인 모친은 병이 나으니, 그의 효성이 온 나라에 알려져 조정에서 정려를 내려 표창하였고 그의 시호를 절실한 효자라는 절효라 하렸다. 고려사 열전 효우편 서문에 "고려500년간 효우로서 사서에 기록되어 정표된 경우는 10여인에 불과하다" 라고 기록하였고, 서능과 함께 11인을 소개했는데 전라도인으로는 유일하다.

 

우리들은 참으로 각박한 문화척박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과 청소년들은 문학을 통한 마음의 양식을 찾기에 인색하다. 그러니 마음의 정서 또한 메말라있다. 잠시 호젓함을 벗 삼아 이곳에 와보라.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자연 풍광도 좋거니와 연인들과, 가족들과 기분 좋은 문학의 산책길로도 그만이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태그:#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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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서, 또 문학을 사랑하는 시인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또 다른 삶의 즐거움으로 알고 사는 청소년선도위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이웃을 위한 사랑나눔과 아름다운 일들을 찾아 알리고 싶어 기자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우리 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아기자기한 일, 시정소식, 미담사례, 자원봉사 활동, 체험사례 등 밝고 가치있는 기사들을 취재하여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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