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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제 24개월이 며칠 지난 딸 소린이가 아직 이불 속에서 아침 잠에 빠져있는 아빠를 부른다. 슬며시 실눈을 뜨는데 벌써 배 위에 엎드려서는 아빠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며 한 손으로 까칠까칠한 턱밑수염을 부드럽게 만지고 있다.

 

이불에서 일어나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린 딸의 기분 좋은 살 냄새에 취해 도무지 일어설 수가 없다. 이런 날은 기분이 안 좋을 도리가 없다. 내게 너무나도 분에 넘치는 행복을 주는 녀석이다. 소린이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 중 하나의 결과였다.

 

딸을 키우고 싶어 입양하다

 

소린이는 엄마가 둘이다. 지금 함께 사는 엄마 말고 낳아준 엄마가 따로 있다. 딸을 키우고 싶어 입양을 신청한 지 3개월 만에 우리 가족이 되어 준 소린이는 그때 나이가 생후 27일이었다.

 

일찍부터 미혼모를 돌보는 시설에 들어가 소린이를 낳을 때까지 친엄마가 겪었을 마음 속 고통과 혼란을 나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소린이에게 생명을 주었기에 나는 그분께 존경과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소린이는 세상에 태어나 27일 만에 새 가족을 만났고, 우리 부부는 생후 27일인 새 생명의 입양을 결심하고 3개월 만에 가슴으로 낳았다. 생물학적으로는 이치에 맞지 않은 가족관계가 틀림없다.

 

이 때문에 그리고 여기서 빚어지는 문제 때문에 입양을 결심하는 일도 어려웠지만 주위 어른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음은 물론이다. 들어보면 입양은 누구나 한 번씩은 꿈꾸었다. 그러나 꿈으로 그칠 뿐 결심하기는 어려운 게 입양이다. 단지, 딸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에 우리는 결심을 할 수 있었고 소린이를 만난 것이다.

 

자식은 그저 똑같은 자식일 뿐

 

어린 소린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소린이가 특별해서 쉽지 않은 게 아니라 그만한 때 겪는 부모들의 육체적인 고통들 말이다. 딱 그만큼만 힘들었지만 보통의 자식들처럼 소린이는 그런 육체적인 고통들을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지니고 있었다. 보면 천사처럼 예쁜 천진한 얼굴, 맑은 웃음이 주는 마법 말이다.

 

그렇게 여느 아이처럼 건강하고 밝게 소린이는 잘 자라주었다. 그런데 여느 아이와는 다른 느낌을 우리 부부는 소린이로부터 전해 받을 수 있었다. 애초에 원했던 딸 키우는 재미와 더불어 숨길 수 없는 입양이라는 이름의 특별함 때문에 느끼게 되는 놀라움이 그것이다. 그것은 친아들과 입양된 딸에게 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깊이였다. 전혀 다름이 없었다. 전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이 우리 부부를 놀라게 했다.

 

입양을 결심하기 전에 느꼈던 가장 큰 두려움이 사랑의 '차이'였는데 그 차이를 전혀 알아낼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 부부에게는 커다란 성찰이었고 깨달음이었다. 어디로부터 왔든 내 자식이 되고 한 시절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자식은 그저 똑같은 자식일 뿐이었다. 그 마음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아침이면 일어나 장난감처럼 생긴 변기통에 걸터앉아 홀로 똥을 눌 만큼 소린이는 자랐다. 몸 약한 엄마를 만난 탓에 일찍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소린이가 조금씩 눈과 코와 입이 분명해 보이면서 우리는 생김의 다름에서 오는 또 다른 고민거리를 안아야 했지만 우리의 대처 방법은 분명하다. 밝히는 것이다.

 

망설임 없이 우리는 공개입양을 했기에 소린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좀 특별하게 소린이를 바라보고 대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런 시선조차도 굳이 피할 이유가 없이 자연스럽게 우리는 인정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입양 사실 당당히 말하고, 당당한 딸로 키울 터

 

배로 낳은 자식과 가슴으로 낳은 자식 사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차이들 때문에 미리 고민하지 않았다. 소린이는 우리 딸이 맞지만 배 아파 낳지 않았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 딸이고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었다. 생각뿐만 아니라 경험해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들게 되어 있다.

 

우리는 소린이가 어디로부터 세상에 나왔는지를 꼭꼭 숨기고 평생을 살 자신도 없었고, 뒤에 자신의 근본을 알고 당황해 하고 고민하고 번민해야 할 거리들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가끔 나는 훌쩍 자라 아가씨가 다 된 소린이 손을 잡고 함께 생모를 찾아나서는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그 미래는 소린이가 두 엄마를 다 이해하기까지 슬기롭게 세월을 이겨내고 난 후이기에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상상이다.

 

소린이는 이미 여기까지 자라면서 자식을 바라보며 부모가 느끼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고 입양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사랑을 보태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소린이가 입양된 딸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가족들의 얼굴을 비교하며 말은 못하고 갸우뚱하거나 일상적인 대화 중에 출생을 이야기해야 할 때도 우리는 이렇게 대답한다.

 

"소린이는 입양한 내 딸입니다."


태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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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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