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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성교육 비디오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애니메이션인데, 중학생을 대상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했다. 2명의 주인공이 있고 각각의 시선들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펼쳐졌다.

좋아하는 이성친구와 키스를 하고 싶은데 언제,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하는 여학생. 여자친구에게 멋있는 키스를 선사하고 싶어서 온갖 간접경험을 떠올리고 있는 남학생. 먼저 남학생이 키스를 시도했지만 달콤하기보다는 거칠기 마련인 첫 키스가 분위기를 머쓱하게 만들어 버린다.

키스가 '아프다'라는 것에 당황한 두 연인은 황급히 자리를 뜬다. 남성과 여성의 몸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 역시 애니메이션으로 진행되고 잘못을 깨달은 두 연인이 다시 만나 부드럽게 키스하며 서로 어루만진다는 해피엔딩으로 비디오는 끝을 장식한다.

이 애니메이션을 본 내 느낌은 부러움이었다. 성기 중심적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성교육과 달리 '관계'에 대한 교육이었고 무엇보다 10대의 성욕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성기 중심? 관계 중심?

우리나라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EBS 성교육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우리나라의 성교육이라고 하면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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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10대의 성적 욕구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할 사람은 이제 없다. 초등학교에서도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이 제법 있을 뿐더러 그 이성친구가 중학생, 고등학생인 경우도 있다.

물론 이성친구가 없다고 해서 성적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성친구가 없는 경우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욕구를 더 솔직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잘 보여야 할 대상이 없으니까.

6학년 교실에서 수업 중에 책상 아래서 자위하는 남학생을 보는 것은 나를 비롯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기겁할 이야기가 아니다. 수학여행이나 청소년단체 행사에 숙박을 하는 경우에도 교사들은 학생들의 혼숙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야동'을 보는 아이는 일일이 야단치기에 너무 많을 정도라 "적당히 보라"고, "거기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 조언하는 정도가 일반적이다. 인터넷에는 초딩 키스 동영상이 떠돈다(19금 검색어도 아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초등학생들이 성적 행동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경험해보고 싶어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TV나 영화를 보라. 연애라는 건 소위 진도를 나가는 행위에 불과하다. 요즘은 '아이들 문화'라는 게 따로 없다.

프랑스에서 유행하는 옷이 서울에서 같은 시간대에 유행하듯, 인터넷과 대중매체는 성인문화와 아이들 문화의 간격을 좁혀놓았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놀고 싶어 한다. 몸은 이미 다 컸고 '성'은 자극적이고 비밀스러우며 때론 쉬워보인다.

연애는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야동을 보는 아이들은 따라해보고 싶어하는데 레이싱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왜 운전에 그만큼 열광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실제 차운전과 레이싱 게임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야동을 보는 것이 훨씬 허락되지 않은, 은밀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다고 연애할 수 없고 어리다고 무조건 안 된다고 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너무 비현실적이다. 일단 인정하자. 행위보다 관계가 핵심이고 서로 배려해야 하며 책임질 부분이 많다는 설명은 응당 이루어져야 하지만, 먼저 인정해야하는 것은 '연애는 어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제 이성친구(혹은 좋아하는 동성친구)가 생겼다고 아이들이 말할 때,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서로 도와줄 수 있도록 해"라는 말보다는 "너는 너와 그 친구가 행복하기 위해 뭘 하고 싶니?"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러브장(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용도로 제작하는 다이어리- 편집자 주)을 만들고 있으면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 계획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 참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은 어떨까.

자신이 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충고는 아이들이 인정받고 있다고 느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만약 연애를 뭔가 나쁘고 숨겨야만 하는 일로 인식하고 어른들이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철저히 담을 쌓는다. 그 담 안에서 어른들에게 들키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야동 정도의 정보에만 의존하여 아이들은 가짜 사랑, 비틀린 성의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야동과 진짜 연애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하려면 아이들의 사랑, 아이들의 성을 야동과 같이 대하지 않아야 한다. 성이 부정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긍정적이고 지지받을 대상이라는 것, 말초적인 느낌과 자극만이 아니라 서로 위하는 마음과 커가는 관계가 함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부터 성기 중심적인 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회의 부조리 속에서 비틀려버린 성이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관계 중심적인 성을, 사랑을, 연애를 아이들이 할 수 있다고 믿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굳이 춘향과 몽룡, 줄리엣과 로미오가 10대 연인들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리다는 이유는 연인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받는 것은 가장 큰 행복이지 않은가. 초등학생도 연애할 수 있고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지금도 그들은 하고 있지만.


태그:#초딩, #성,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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