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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맑은 봄날 나는 태어났습니다.

젖을 떼기도 전에 어느 집에 분양이 되었는데 그 집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습니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년은 나와 들판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소년이 학교에 들어간 이후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은 좀 줄어들었지만 동네어귀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나는 소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반가움에 꼬리를 치며 동네어귀로 달려갑니다. 소년도 저 멀리서 나를 보면 손을 흔들며 뛰어옵니다.

 

"백구!"

"멍멍!"

 

소년의 품은 언제나 따스했습니다. 아주 작은 강아지였을 때 소년은 추운 겨울날이면 나를 껴안고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나는 족보조차도 없는 똥개였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봄에는 나비를 잡으러 뛰어다니기도 했고, 여름에는 냇가에 물고기를 잡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가을에는 도토리며 밤을 따라 다니기도 했고, 겨울에는 얼음판 위에서 썰매도 타고, 산으로 칡을 캐러가기도 했습니다. 나는 학교 가는 시간 말고는 늘 소년과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소년을 만나게 된지 3년여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세 살 무렵입니다. 소년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습니다. 학교를 가다말고 소년은 어머니에게 슬픈 눈빛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 정말 우리 백구를 팔아야 해? 안 팔면 안 돼?"

"미안하다. 당장 먹을 게 다 떨어졌단다. 보릿고개를 넘기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밀가루라도 사야 할 것 같아. 그렇다고 우리가 키우던 것을 잡아먹을 수도 없잖니?"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나는 소년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늘 동네어귀까지 바래다주었거든요.

 

"백구야, 미안해. 널 팔아야 한데……."

"싫어, 난 너와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어."

"나도 그래, 하지만……."

 

소년은 눈물을 훔치며 뛰어갔습니다. 나는 꼬리가 축 늘어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도망을 쳐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이 소년과 소년의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면, 그동안 사랑으로 키워준 것에 보답하는 길이라면 팔려가더라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이전보다 맛난 밥을 가져왔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합니다.

 

"미안하다. 백구야. 민수가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사랑하는데 너희들을 떼어놓아야 하는구나."

 

 

잠시 후 개장수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개장수를 보는 순간 저승사자를 보는 것 같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 꼬리는 무서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도망을 칠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개장수는 트럭에 있는 철망에 나를 집어넣고는 동네를 돌아다녔습니다.

 

"개 삽니다!"

 

그렇게 한 동네에서 살던 개 몇 마리도 함께 개장수에게 팔렸습니다. 소년과 함께 뛰어놀던 동산과 냇가도 이젠 마지막인가 봅니다. 소년이 학교를 오가는 신작로를 따라 나는 어디론가 실려 갔습니다.

 

"너도 별 수 없구나, 그렇게 주인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더니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이유는 무슨? 그냥 우린 똥개야. 팔리지 않으면 그냥 잡아먹히는 신세지 뭐."

"차라리, 팔리지 말고 주인에게 먹히는 것이 좋겠다."

 

트럭이 돌부리에 걸려 '덜컹!' 흔들리면서 우리를 가둔 철망이 열렸습니다.

 

"뛰어! 무조건 뛰어, 이제 우린 자유야!"

 

이를 악물고 산을 향해 뛰었습니다.

다음날 오후 산 아래에서 나를 부르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백구! 백구!"

 

나도 모르게 소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아니, 너무도 그리웠습니다. 한번만이라도 죽기 전에 소년의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바보야, 안 돼. 가면 넌 잡혀가서 죽는단 말야!"

 

친구들이 소리쳤지만 나는 소년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소년의 곁에 있는 나무 뒤에는 개장수가 서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소년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소년의 맑은 눈이 보입니다.

 

"수고했다. 사탕이라도 사 먹어라."

 

개장수는 소년에게 돈을 쥐어줍니다. 소년은 돈을 조막손에 쥐고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 <똥개와 소년> 후속편은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태그:#동화, #똥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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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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