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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스물여섯에 '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오월, 반년 만에 서울 나들이 온 동생
 지난 오월, 반년 만에 서울 나들이 온 동생
ⓒ 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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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에서는 얼마나 많은 냄새가 날까.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맡게 되는 앞 사람의 진한 머리 냄새, 신발을 벗는 식당에 갔을 때 맡게 되는 누군가의 은근한 발냄새, 더운 여름이면 더 심해지는 겨드랑이 냄새, 구린 방귀 냄새, 그리고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는 입냄새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잠깐만 방심해도 우리 몸은 끊임없이 냄새를 분출할 태세다. 그런데, 이런 고약한 냄새 중에 사람 목숨을 구하려 애쓰는 냄새도 있으니, 냄새라고 다 같은 냄새는 아닌가 보다.

2주마다 돌아오는 금요일은 동생이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다. 며칠 동안 바빠서 입원해있는 동생한테 전화 한 통 하지 못하다 겨우 오늘에야 수화기를 들었다. 신호가 한참 이어지는데도 받지 않아 '그냥 끊을까' 하는 순간 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받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다. 겨우 짜내는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짠했다. 동생은 어제 퇴원을 했고, 지금은 그냥 누워있다고 했다. 이번 항암치료는 힘들었다고 했다.

동생이 투병 생활을 시작한 지 4년하고도 2개월이 지났다. 1년만 지나면 흔히 말하는 완치 5년이지만, 동생은 아쉽게도 작년 초에 재발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후 급속도로 몸이 안 좋아졌고, 지금은 30kg도 안 되는 몸으로 항암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에는 일주일마다 한 번 병원에 가서 항암제를 한나절 투약받았고, 이후에는 항암 알약으로 치료를 했다. 그리고 현재는 2주마다 한 번씩 입원을 해서 3일씩 항암제을 맞는다. 언제 끝날지, 끝나기는 하는 건지 아무도 알 수 없는 투병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

동생의 병명은 위암. 더구나 이미 전이가 된 상태에서 동생은 수술대에 올랐다. 아랫배가 너무나 아파 응급실로 입원하기까지 동생은 살도 빠지지 않았고, 별다른 통증도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될 때까지 사람이 모를 수가 있느냐고 했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게 이 암이라는 병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천천히 다시 생각해 보면, 동생의 몸은 상태가 안 좋다는 신호를 동생에게 계속 보내고 있었다. 다만 그 신호를 동생이 눈치 채지 못했고 알고 나서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고약한 입냄새가...

위에 암 덩어리가 생겼다는 긴급 신호를, 그러니 빨리 위 검사를 해보라는 다급한 신호를 동생의 몸은 입냄새라는 방식으로 알려왔다. 어느 날부터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부터 나는 동생의 입냄새를 맡게 되었다. 꽤나 고약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입냄새를 맡을 때마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고선 "밥 먹고 양치질 했어?"하고 묻곤 했다.

그러나 정작 동생은 자기 입에서 나는 냄새를 못 맡으니,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게 문제인지도 모른다. 자기 입에서 나는 냄새를 정작 본인은 맡지 못한다는 것. 그런데 이 입냄새는 말을 하고 있을 때는 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과 얘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는 냄새를 맡을 수 없었는데, 문제는 10여 분 정도 입을 다물고 있다 입을 열었을 때, 그때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다는 것이다. 

위에서 올라온 안 좋은 냄새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 입속에 고여 있다가 한마디를 뱉자마자 밖으로 쏟아져 나왔던 것 같다. 동생은 잇몸에 문제가 있나, 가볍게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나는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 냄새를 맡을 테니, 입을 한참 동안 다물고 있다 말을 하게 될 때는 사람들한테서 약간 거리를 두고 말해"하고 내가 동생한테 충고했을 때는 동생도 은근 신경이 쓰이나 보았다.

그즈음부터 동생은 항상 껌이나 사탕을 가방에 준비하고 다녔다. 물론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동생 마음이 놓였을 것 같다. 한창 예쁘게 하고 다니고 싶었을 나이에, 입냄새는 아가씨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 수 없으니.

동생도 그랬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로, 속이 안 좋아서 더구나 위에 생긴 암덩어리 때문에 그런 입냄새가 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위에 아픈 사람도 없을 뿐더러, 가족이나 친척 중 암으로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더구나 고작 스물여섯이었던 동생에게 '암'이라는 병명을 가져다 붙일 수도 있다는 걸, 꿈에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동생은 초기에 병을 발견하지 못하고 병을 키울대로 키워서 수술대에 눕게 되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때 그 입냄새를 무시하지 않고 주의를 기울였다면, 왜 갑자기 입냄새가 나는 건지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더라면, 적어도 치과에 가서 그게 잇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더라면 지금쯤 상황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입냄새, 불편하더라도 꼭 말해주자

입냄새, 낱말 자체에서도 어떤 큼큼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만 같은 이 냄새를 우리는 쉽게 무시한다. 또한 상대방이 입냄새를 풍겨도 그 순간을 잠깐 피하거나 잠깐 뒤로 물러서서 대화를 이어나갈 뿐 그 입냄새를 아주 가벼이 여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도 안 한 거야?'라든지, '담배를 얼마나 피웠기에 입에서 저런 냄새가 나는 거야' 하는 식으로 조금 깨끗하지 못한 사람으로 여길 뿐.

그러나, 이 입냄새, 동생의 경우도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알기가 어렵다. 그러니 어느 날 당신 주위의 어떤 사람에게서 밥을 먹고 양치질을 했는데도, 혹은 같이 영화를 보고 두 시간여가 지나 입을 열었을 때 피하고 싶을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난다면, 꼭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상대방이 난처해할까봐 말하기 미안하고 불편하지만 꼭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입냄새가 많이 나서 병원에 갔는데, 위암 판정을 받았대. 너한테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런 이야기해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말이야' 라는 말을 덧붙인다면, 당사자도 덜 부끄럽게 받아들일까. 

몸에서 나는 냄새가 다 그럴 일도 없고, 모든 입냄새가 병의 신호는 아니겠지만, 어떤 입냄새는 내 몸에서 보내는 '살고 싶으니 빨리 조치를 취하라'는 외침일 수 있다.

며칠 몸이 좋지 않아 누워 있었다. 해보고 싶은 게 많다. 해보고 싶은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많은 거겠지. 알고 싶은 것도 많고. 그러나, 몸이 마음처럼 따라와주지 않으니 자포자기가 된다.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마음을 알기나 할까.
- 2009년 6월 19일 동생의 블로그에서

덧붙이는 글 | '냄새나는 글' 응모글입니다.



태그:#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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