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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애송시를 암송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다. 이전에는 적어도 5편에서 10편 정도의 시를 암송하는 문학도들이 많았고 문학도가 아니더라도 시 몇 편은 암송하는 것을 멋으로 알았다.  국어시간에  수업을 시작하기 전 늘 시를 낭송해준다면 학생들은 국어 시간을 어린왕자를 기다리는 여우처럼 기다리지 않을까?

 

<국어시간에 시 읽기>는 전국국어교사 모임에서 엮어 낸 3번째 시집이다. 총 172편의 시를  일곱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읽기 위한 시이니 그저 시를 소개하는 것이 책을 펼쳐 낸 이들의 의도에 맞을 것이다.

 

나를 키우는 말 -이해인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읽기만 해도 맑고 밝고 아름다워지는 듯 마음이 순화되는 시이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리며 -이승하-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 드린다.

가만히 계셔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일부>

 

어릴 적 어머니가 손톱과 발톱을 깎아 주시며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피나서 '호' 해야 해" 라며 가만가만 발톱과 손톱을 깎아주던 전경이 이제 나이 들어 더 이상 발톱을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주는 전경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저 시를 읽으면 반항기가 저절로 걷히게 되지 않을런지.

 

새벽편지  -곽재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니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묽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

다시 고통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해야겠다.

이제 밝아 올 아침의 자유로운 새소리를 듣기 위하여

따스한 햇살과 바람과 라일락 꽃향기를 맡기 위하여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를 사랑한다는 한마디

새벽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희망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기억하고 애송하는 사람들이라면 그가 지닌 따스한 가슴과 눈길을 이 시에서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시가 무엇인가 그저 가슴으로 자기의 느낌만큼 느끼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 그저 입으로 애송시를 읊조리면 가슴에 환한 무지개가 피어나는 경험만으로 시를 애송하는 대가를 넘치게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서가의 시집을 한 권 펼쳐들고 문학소녀 문학 소년 시절로 돌아가 가슴 뛰는 시편들을 가슴에 새겨 담아 마르지 않는 정서의 샘을 길어 올리자.

덧붙이는 글 | <국어시간에 시 읽기>는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엮었으며 나랏말에서 펴냈습니다.


국어시간에 시 읽기 3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나라말(2009)


태그:#국어시간에 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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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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