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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나 대학으로 갈 딸의 기숙사 짐이 거실에 잔뜩 쌓여있다.
 집을 떠나 대학으로 갈 딸의 기숙사 짐이 거실에 잔뜩 쌓여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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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인터넷을 보니 이번에 대학 가는 딸을 둔 엄마가 자기 딸이랑 커플반지 같은 걸 하려고 하는데 어떤 브랜드가 좋냐고 물었더라."
"…."
"그거 괜찮은 생각 아니니? 모녀간에 같은 반지라. 대학 간다고 집 떠나면 이제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라는데 우리도 이참에 네 '독립선언'을 기념해서 반지라도. 특히 우리집 세 여자가 강한 자매연대를 과시하기 위해 시스터후드(sisterhood) 반지를 함께 끼면 어떨까?"
"됐거든. 그 돈 있으면 등록금이나 보태시지요."

이번에 대학 가는 딸에게 '자매연대'용 반지를 제안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했다. 물론 딸이 OK를 하리라고는 나도 생각을 안 했다. 왜냐하면 평소 고분고분 제 엄마 말을 듣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기숙사에 들어가는 대학 신입생들을 태운 차량들로 대학 인근 도로가 꽉 막혔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대학 신입생들을 태운 차량들로 대학 인근 도로가 꽉 막혔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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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미국 대학들이 지난 주에 새학년 첫 주를 보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부모들은 대학으로 자녀를 떠나보내는 순간 자녀를 독립시킨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자녀 역시 부모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당당한 성인으로서의 독립을 선언하는 분위기이고.

특히 대학 등록금을 부모가 내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론(loan, 융자)을 얻고 자신의 이름으로 크레딧 카드를 만들고 크레딧(credit)을 쌓기 시작하는 경우 이런 독립선언의 개념은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어떤 미국 부모는 다른 주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 아들의 방을 '빼고' 그 방 용도를 변경했다. 앞으로 추수감사절도 있고 크리스마스도, 방학도 있어 아들이 집에 올 텐데 그렇게 매몰차게(?) 방을 없애 버리면 어떡하냐고 물으니 냉정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봐야 몇 번이나 오겠는가. 어쩌다 한 번 집에 올 테고 집에 와도 아르바이트 하랴, 여행 다니랴, 밖으로 나돌 일이 많을 텐데 안 쓰는 방을 굳이 비워둘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가 하면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학 기숙사로 떠나는 자녀를 두고 눈물바람을 하는 한국 엄마들도 있다. 어느 여성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다.

"이번에 자녀를 대학에 보내신 분들 잘 견디고 있나요? 아이가 대학 가면 홀가분하고 좋을 줄 알았는데 자꾸 눈물이 나고 힘드네요. 어제도 얼마나 울고 잤는지 눈이 부어서 눈뜨기가 힘들 정도예요. 학교 기숙사도 워낙 좋아서 아이가 걱정이 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가슴 한쪽이 싸하게 아파와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눈물이 나네요."

"올해 딸을 대학에 보냈습니다. 집에서 겨우 2시간 거리의 학교이지만 기숙사에 데려다주고 온 뒤 딸이 쓰던 방 침대를 어루만지며 엉엉 울었습니다. 지금도 하염없이 울고 있네요.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목이 메이고요. 집에 있을 땐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는데 막상 떨어져 있다보니 하루에도 몇번씩 눈시울이 붉어지고 맘이 짠해지네요."

"얼마 전 대학 기숙사로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입니다. 가서 짐을 정리해 주고 왔는데 처음 겪는 아들과의 긴 헤어짐이라 눈물이 많이 나네요. 오는 동안도 한참 눈물을 흘리며 왔어요."

자녀를 대학에 보낸 엄마의 눈물은 품 안의 자식을 떠나 보내고 마음이 헛헛해진 엄마의 '빈둥지 증후군' 때문일까. 여린 엄마 뒤에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는 착한 아들도 등장한다.

"돌아오는데 아들이 전화를 해서 엄마가 우는 걸 보니 자기도 마음이 안 좋다고 하네요. 잘 하고 있을 테니 걱정 말라고요. 그 뒤로도 틈나는 대로 하루에 한 두 번 전화를 해서 어떻게 지내고, 누굴 만나고, 뭘 먹었다는 등의 사소한 것까지 전화로 말해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 고민은 이런 얘기를 들은 친구들이 제 아들이 마마보이 기질이 있다고 놀리네요. 비정상적이라고도 하고요."

이렇게 자상한 아들을 둔 엄마의 고민에 대해 다른 엄마들은 일단 "부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나 역시 그 엄마가 부럽다. 왜냐하면 가뭄에 콩나듯 연락을 하는 무정한 자식보다는 살갑게 다가와 꼬치꼬치 이야기를 해주는 다정한 자식이 좋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도 늙었나보다.

기숙사 입사하던 날, 이삿짐 트럭 유홀(U-haul)까지 등장했다.
 기숙사 입사하던 날, 이삿짐 트럭 유홀(U-haul)까지 등장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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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하면 전화도 이메일도 하지 말고

큰딸이 집을 떠났다. 2주일 전에. 개강은 원래 지난 주였지만 딸이 속한 마칭밴드의 캠프가 있어서 1주일 먼저 집을 떠났다. 딸이 다니게 될 대학은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넓은 땅 미국에서 그깟 한 시간은 집을 떠난다고도 할 수 없는 바로 코 앞의 거리다.

그래서 딸이나 나나 떠난다는 느낌의 절절한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딸은 일단 심리적으로 확실하게 독립을 선언한 것 같다. 그래서 부모 곁을 떠나 혼자 생활하게 되는 '자유로운 독립인'이 된다는 사실에 기대도 많고 무척 신이 나 있는 눈치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 같아도 그럴 것이다. 하긴 나도 큰딸이 집을 떠나는 게 반갑고 고맙다. 장성하면 떠나는 게 이치 아닌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이 떠났다고 눈물바람 하는 엄마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고 마냥 자유롭게 살게 할 수만은 없는 노릇. 책임이 따라야 하는 자유 독립 선언에 엄마로서 귀에 쓴 소리, 충고 몇 마디를 안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엄마의 잔소리 같은 당부를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도발적인 한 마디를 불쑥 뱉어내 속을 뒤집어 놓는 예쁜(?) 딸이다.

"엄마도 웬만하면 기숙사에 올 생각 말고 전화도 하지 말고 이메일도 하지 마."
"(으윽,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기껏 한다는 말이….) 엄마도 그렇게 한가하지 않으니 그런 염려 따윈 붙들어 매라."

에어컨이 안 들어와 선풍기를 써야 하는 기숙사도 많다던데 딸은 에어컨이 잘 나오는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아직 정돈이 안 된 책상에서 바라보는 바깥 신록이 아름답다.
 에어컨이 안 들어와 선풍기를 써야 하는 기숙사도 많다던데 딸은 에어컨이 잘 나오는 기숙사를 배정받았다. 아직 정돈이 안 된 책상에서 바라보는 바깥 신록이 아름답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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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짐을 옮기면서도 딸은 우리가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다. 그래서 대충 짐을 정리해 준 뒤 점심만 먹고 딸과 작별을 고했다.

"잘 지내. 밥 잘 먹고. 운동도 하고."

집으로 오니 겨우 사람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도 집은 휑해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바로 이런 경우인가 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예상했던 일인지라 우리는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딸을 떼어놓고 온 뒤 딸로부터는 전화도, 이메일도 없었다. 어쩌다 제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는 게 고작일 뿐. 아, 딱 한 번 있었다. 개학 첫날이라는 화요일. 선심 쓰듯 '첫날'을 보고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부모님께 개학 첫날 보고하려고요."

그나마 잊지 않고 소식이라도 전해줘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디 욕심이 그런가. 지금보다 더 다정하고 친절하면 좋겠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다시 전화를 걸어오는 법도 없었다.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런 괘씸한 생각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지난 주말, 반가운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제목: weekly review (주간 보고서)
수신: 우리 세 가족

"하이 여러분!"으로 시작된 딸의 이메일은 첫 주를 보낸 대학 생활을 비교적 소상하게 적고 있었다.

술 마시는 신입생 환영회 대신 건전한 기독교 모임에 참석했고 룸메이트 없이 주말을 보냈다는 얘기. 오케스트라 오디션은 합격했지만 마칭밴드와 시간이 안 맞아 내년 봄학기로 미뤘고 윈드 앙상블에서 퍼커션을 맡게 될 거라는 얘기.

또, 수학 외에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려 생각하고 있고 고등학교 때 들은 AP 학점을 그대로 인정 받아 계절학기를 들으면 일찍 졸업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

그동안 내가 궁금해 하던 딸의 대학 생활을 속시원하게 밝혀준 '100점'짜리 이메일이었다. 평소 툴툴거리고 쌀쌀맞게 굴던 딸의 친절한 이메일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얘야, 내가 바라는 게 바로 그거야. 네가 살아가는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를 듣고 싶은 거라고. 너 외할머니께서 늘 하시던  말씀 기억하지. 돈으로 효도를 하는 게 아니고 이런 '신경 효도'가 진짜 효도라고.

엄마는 너랑 같은 반지 안 껴도 이런 친절한 이메일만 받아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고맙다. 그런데 이메일 제목처럼 네 '주간' 보고서는 앞으로도 계속될 거지? 사랑한다."

대학 마칭밴드에 들어간 딸의 밴드캠프 첫날. 딸의 한국인 이름 성별을 구별하지 못한 주최측이 딸아이를 남자방에 배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대학 마칭밴드에 들어간 딸의 밴드캠프 첫날. 딸의 한국인 이름 성별을 구별하지 못한 주최측이 딸아이를 남자방에 배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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