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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매산 등산 가는 길에 들르게 된 산골마을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깊은 산골이어서 논이래야 층층이 작은 다랑이논들, 그러나 그 작은 논다랑이에 가득한 벼들이 황금빛으로 누렇게 영글어 가는 풍경이 풍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벼이삭뿐만이 아니었다. 큰 키에 발그레한 빛깔로 고개 숙인 탐스러운 수수도 여간 고운 모습이 아니었다. 논 위에 있는 밭에는 포기가 굵어진 배추와 무가 파랗게 자라고, 논두렁에 여기저기 피어있는 들국화 무더기가 향기로웠다.

 

문득 옛날 가난하고 어렵던 시절이 떠올랐다. 1960~70년대, 가난에 찌든 농촌 살림에 배움의 길은 막막하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은 산업화가 막 시작된 직후여서 살인적인 중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공장 일이었지만 농촌의 처녀 총각들은 너도나도 일터를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처참하리만큼 힘들고 어려웠다. 그러나 우리의 누나들은 박봉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그렇게 일한 누나들의 희생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남동생들이 많았었다. 누나들의 그런 눈물겨운 희생으로 공부한 세대가 지금의 40~50대들이다.

 

언제였던가?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가난으로 찌든 소작농

굶주림에 서럽고 못 배워서 슬픈

대 이을 남동생의 학비 걱정에

한숨으로 땅 꺼지는 부모님이 안쓰러워

가녀린 몸매에 옷 보퉁이 손에 들고

돈 벌러 서울 가던 작은 누나가

주근깨 핼쑥한 얼굴로

눈물지으며 떠나던 논둑길

배고프던 기억 속의 가을은

올해도 어김없이 누렇게 익어가고

힘든 공장일 월급 모아

화사한 웃음 지으며

돌아오던 그 길가에

향기롭게 피어나던

누나의 소박한 미소

 

-이승철의 시 '들국화' 모두

 

그렇게 농촌을 떠난 젊은이들은 거의 대부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도시에 눌러앉아 도시인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인들 고향이 그립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농촌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어봤자 생산비도 건지기 어려운 것이 농촌현실이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숙명처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노인들이다. 그래서 지금도 농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노인들이다. 젊은 주민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경남 산청의 산골마을인 신촌마을에서 만난 주민들도 모두 노인들뿐이었다. 그래도 추석을 며칠 앞둔 마을 노인들은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아올 자식들과 손자손녀들을 만날 기대감으로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노인들의 마음인 양 코스모스와 들국화도 곱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황금빛, #벼논, #이승철, #산골마을, #가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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