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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 14일 이틀간 전국에서 일제고사가 치러졌습니다. 올해 초 "임실의 기적"이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망신을 당한 교과부가 일제고사를 폐지할 생각은 하지 않고 관리방법만 수능처럼 개선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제고사 점수를 올리기 위해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는지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외에도 앞으로 폭로될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럼 과연 이틀간 일제고사는 어떻게 치러졌을까요?

 

 

수능보다 더하네

 

학교에 일제고사 구체적인 시행 계획이 내려온 것은 9월입니다. 수능시험감독을 해본 적이 없는 초등교사가 보기에는 참 요란하다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전국 초등학교에 갖가지 일이 다 일어났나 봅니다.

 

첫째, 학교에 숙직자가 생겼습니다. 시험 전날 교감선생님과 평가담당 교사가 직접 교육청에 가서 시험지를 받아왔습니다. 전에는 주로 학교 기사님들이 가져오곤 했습니다. 이 시험지를 지키기 위해 교감 선생님이나 담당자가 숙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숙직이 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는데 참 별 일도 다 있다고 헛웃음을 치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둘째, 시험보안구역이 따로 생겼습니다. 보통 때에도 학교에 문서를 보관하는 곳은 문이 잠겨 있지만, 이중잠금장치가 된 장소에 하라는 규정까지 내려오니 학교마다 밖에 출입금지 표시도 붙이고 단장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금고를 샀다는 학교도 있습니다. 방송할 시나리오까지 내려온 것도 내내 회자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용 시험 진행 시나리오(방송용)

 ※ 시나리오에서 정해진 방송 시각을 준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준 비>

 

◦담임 선생님 입실 시간입니다.

 

8시 30분 - 8시 50분

◦결시자를 확인하고 학교번호 및 응시 현황(재적, 응시자 수, 결시자 수, 결시자 번호)을 칠판에 기재해 주십시오.

◦책걸상이 시험 대형으로 유지되어 있는지 확인하여 주십시오.

◦학생 유의사항을 안내하여 주십시오.

◦담임 선생님께서는 소지 금지 물품을 소지할 시에 부정행위로 간주됨을 알려 주십시오.

◦담임 선생님께서는 휴대용 전화기, 디지털 카메라, MP3, 전자사전, 카메라펜, 전자계산기 등 소지 금지 물품은 수거하고, 보관용 봉투에 넣어 별도로 관리해 주십시오.

 

8시 50분

◦감독관께서는 평가본부로 오셔서 시험에 필요한 물품을 인수한 후 교실에 입실하실 준비를 하십시오.

                                                          -- 출처 : 2009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 시행 계획

 

셋째, 시험감독관이 2명으로 늘었습니다. 감독과 부감독 2명인데, 전담교사들이 부감독으로 많이 들어가고 학부모를 부른 곳도 있습니다. 수업시간마다 감독을 바꾼 학교도 있고, 학생이 7명인데도 규정을 지키느라 굳이 2명이 감독한 학교도 있습니다. 교과전담이나 특수학급 교사가 감독을 하느라 다른 학년의 수업은 당연히 결손이 생겼습니다. 평상시 수업할 때 다인수 학급에서 학생들이 방치된다고 교사 좀 늘려달라 해도 꿈쩍도 안하더니 일제고사는 불가능도 가능하게 해 줍니다.

 

넷째, 방송과 시험 때문에 다른 학년 학생들이 수업 방해를 받았습니다. 국어와 영어 듣기 평가를 학교 방송으로 하니까 다른 학년이 소음이 생기는 수업이나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당부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층을 쓰는 5학년이 교실을 나가 다른 곳에서 수업을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작년에 부산에서는 시험 준비하는 내내 학교 전체가 이런 분위기였다고 하는데, 남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방송담당 교사도 수업을 망쳐야 했고, 평가담당 교사는 올 내내 무서운 공문들 처리하느라 부담이 많았다고 합니다.

 

선생님들이 며칠간 이런 분위기에서 참 많이 착잡해 했습니다. 심지어 아픈 아이도 집에 못 가게 하는 관리자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선생님 앞에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대학수능도 보기 싫으면 중간에 나가는데 이건 수능보다 더한 시험인가요? 수능때는 시험 보는 학생들만 나가고 나머지는 쉬던데, 시험날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는 건 또 뭘까요? 빈수레가 요란하다더니 올 한해 우리 국민들과 학생들에게 씁쓸함만 안겨준 일제고사가 관리 하나는 대단해 보입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는 파행 조장

 

겉으로는 이렇게 요란한데 속사정을 보면 또 고개가 갸우뚱할 일이 많습니다.

 

 

일부 지역 장학사들은 학교에 와서 시험볼 때 책상을 떼지 말고 그냥 보라고 합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 친히 그렇게 말하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부분 둘이 앉아 있지만 시험 때는 시험지 펼치기가 불편하고 아이들이 팔 부딪치는 것도 짜증을 내서 자리를 벌려 혼자 앉을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이번 시험은 한 과목마다 5-7장까지 많아 시험지 관리가 안됩니다. 시험지 떨어뜨려서 찾고 쪽수 찾고 우와좌왕합니다. 그런데 일부러 학교에 와서 자리를 떼지 말라고 하는 건 왜일까요? 많은 선생님들이 고개를 갸우뚱 했습니다.

 

시험분위기를 풀어주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너무 긴장하면 제 실력 발휘가 안되니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시험지 풀라고 내려보내고 방학도 못쉬게 하고 추석 명절 때 휴업일도 되돌리라고 학교에 압력을 넣은 장학사들이 지렇게 말하니 속이 궁금해집니다.

 

급기야 OMR답안지에 서술형 답이 빠져 있으면 채우게 하라는 장학사도 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OMR에 익숙하지 않고 문제를 풀어도 답을 미처 못쓰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작년에 시험지를 보고 정답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이제는 장학사들이 이렇게 하니 뭔가 주객전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학교에서는 미리 가채점을 하고 학생 시험지 가져다 일일이 OMR과 비교하는 관리자도 있습니다. 시험지를 하루 지나서 가져오게 하니 미련이 생기는 거 아니냐는 비판도 많았습니다. 교육청마다 모여 채점하는 것도 못 믿을 일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러다 내년에는 채점도 교육청마다 바꿔서 할까요?

 

가르친 사람이 평가하지 못하고 채점까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자꾸 서로를 의심하게 합니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일제고사는 학교간에, 지역간에 불신만 키워주고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들에게 조롱의 대상

 

그럼 학생들은 어떨까요? 처음 보는 시험에 당황하고 손을 파르르 떨면서 긴장한 학생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제고사는 일제시대 유물이라고 대답하고, 학교 줄세우고 결국은 어느 지역 학원이 좋은지 알아보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시험을 거부하고 체험학습을 가거나 결석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요. 언론에서는 작년에 비해 줄어서 시험이 정착된다고 하지만, 작년보다 탄압도 심해지고 미리 불러 닦달한 것에 비하면 많은 숫자입니다. 또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지 않거나 시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내용적으로는 이미 권위가 떨어졌습니다.

 

일부 지역은 시험풀이를 너무 많이 해서 유형도 새롭지 않고 흥미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시험 끝나자마자 다시 중간고사를 치는 학교도 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수행평가를 하면 되는데 왜 굳이 중간고사를 볼까요? 학교장 재량권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아이들 피곤한 건 모르고 학사일정 조정도 못하는 학교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교사들은 당장은 무서워 어쩔 수 없이 이 상황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이건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능도 문제가 많아 개선한다면서 왜 초등학생에게 강요하는지, 그 정도 수준의 시험을 왜 보는지 모르겠다 합니다. 특히 국어는 교육과정은 엉망인데 문제만 어렵게 내서 아이들 기죽여 괜히 다음 시험 망치게 했다고 비판합니다.

 

학부모들도 일제고사 때문에 문제아들이 더 힘들어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일제고사 반대 모임에서 지역에 선전물을 돌리면 먼저 와서 받아가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보수신문에서는 학업성취도 평가를 일제고사라고 비아냥거린다고 불만을 터뜨립니다.

 

이틀간 치러진 일제고사, 앞으로 채점 결과를 발표해서 전국의 학교, 교육청을 줄세우고 교육청 평가에도 반영을 한다고 위엄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대한민국 많은 학생, 교사, 학부모들 마음 속에는 다른 생각이 싹터서 꽃피고 서로 어울려 넝쿨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일제고사를 속속 폐기하는 것도 힘이 됩니다. 교과부가 일제고사 정책을 다시 검토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책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한해는 일제고사로 생긴 문제가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도 시험 파행사례와 시험문제에 대한 비평, 일제고사가 남긴 문제점에 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일제고사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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