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은주역으로 출연한 출연자들과 함께, 가운데가 이은주(88) 명창
 은주역으로 출연한 출연자들과 함께, 가운데가 이은주(88) 명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지난 주말인 12월26일 저녁 7시, 서울 서초구에 있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은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들로 가득했다. 좌석이 모자라 입석손님들까지 받았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 없이 공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번 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57호인 경기민요 명창 이은주(88) 여사의 일대기를 그린 소리극 '은주이야기'였다. 관중들은 대부분 우리 국악에 관심이 많은 시민들과 함께 명창 이은주의 문하생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국악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연은 먼저 명창 이은주가 어린 시절 민요를 좋아하여 관심을 갖고 민요를 부르다가 엄한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고 혼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경기도 양주 땅에 사는 14세의 아직 어린 은주는 민요를 좋아하여 이웃집 축음기에서 들려오는 민요를 따라 배우며 경기민요에 푹 빠져든다.

그러나 당시 우리 민요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시각과 나쁜 편견 때문에 아버지는 딸이 민요를 부르는 것을 매우 못 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민요에 대한 강한 애착심과 집념을 버리지 못하는 딸을 이해하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보퉁이 하나를 손에 들고 밤에 서울로 떠난다.

무대 휘장 모습
 무대 휘장 모습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은주는 서울 종로에서 국밥집을 경영하는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당시 장안에서 유명한 민요선생 원경태 사범을 찾아가지만 처음엔 퇴짜를 맞는다. 그러나 선배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원경태 사범의 문하생이 되어 종아리가 터지게 매를 맞으며 민요를 배운다.

그렇게 수년간을 공부한 은주는 고생한 보람이 있어 인천 어느 극장에서 개최한 명창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여 명창으로 이름을 얻는다. 명창이 된 은주는 극장 공연과 라디오 방송 출연 등 바쁜 일정에 쫓기는 행운을 만끽하지만 곧 한국전쟁이 터진다.

대구로 피난길에 오른 은주에게는 피난살이 고달픈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생스러운 피난살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은주는 민요로 삶의 시름을 달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 민요가 바로 태평가다.

"짜증은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는 부려서 무엇하나, 속상한 일이 하도 많은데 놀기도 하면서 살아보세, 니나노~ 늴리리야 닐리리야 니나노, 얼싸 좋아, 얼시구 좋다, 벌나비는 이리저리 훨훨 꽃을 찾아서 날아든다."

공연 막바지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인사와 노래 춤추는 장면
 공연 막바지 모든 출연자들이 나와 인사와 노래 춤추는 장면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소리극이 공연되는 동안 관람석은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수많은 역경을 견디어내며 명창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대구에서의 피난생활이 보여주는 암담한 현실, 그리고 그렇게 힘들고 고달픈 생활 중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보여주는 해학과 재치 넘치는 극의 구성이 공연을 보는 재미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은주는 다시 각종 무대와 방송 출연으로 바쁘고 화려한 일정이 시작된다. 드디어 그 유명한 묵계월, 안비취와 함께 경기민요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감격한다.

"소리극 은주이야기가 뭔가 했더니 우리 국악 오페라네."

뒷자리에서 관람하던 사람들이 소곤소곤 나누는 이야기다. 이들은 소리극이라는 말이 조금 낯설었던가 보았다. 공연은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어 공연 중 잠깐 쉬는 시간도 주어진다. 그러나 3시간의 공연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중간 중간에 이은주 여사의 인터뷰 화면이 나오기도 하고, 직접 무대에 나와 노래도 한 곡씩 불러주어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또 극의 전개가 민요화 함께 관중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해학이 많아 시종일관 즐거운 공연이었다. 출연한 사람들도 한두 사람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국악인들로 이은주 명창의 제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제자의 제자들까지 3대가 함께 하는 모습은 여간 아름답고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공연 막바지 출연자들이 나와 인사하는 모습
 공연 막바지 출연자들이 나와 인사하는 모습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소리극에 출연한 국악인들 연기도 수준 이상이었다. 전문배우를 뺨칠 정도로 화려한 연기를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넘쳐나는 끼가 관중들에게까지 그대로 전달될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다.

주요 출연자는 어린 은주역에 김희영, 처녀 은주역에 박진선, 중년 은주역에 송은주, 장년 은주역에 한진자, 묵계월 역에 김장순, 안비취 역에 김금숙, 은주 아버지 역에 노학순, 은주 어머니 역에 노영숙, 원경태 사범 역에 맹봉학, 우미집 아주머니역에 김점순, 박추월 역에 안소라 등 27명이 참여한 매머드 소리극이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객은 초대받은 손님들이었는데 좌석을 배정하고 입장을 정리하는 관계자들의 미숙한 진행으로 작은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88세로 고령인 인간문화재 이은주 명창의 일대기를 그린 소리극 '은주이야기'는 우리 전통문화이며 우리 소리인 경기민요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중요성을 일깨운 즐겁고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은주 명창, #경기민요, #국립국악원, #이승철, #예악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