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가 오는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 5일에는 정부가 세종시에 기업과 대학, 연구소 등을 유치하기 위한 '인센티브'가 공개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예정지역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말]
밀마루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종시 건설 예정지.
 밀마루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종시 건설 예정지.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조상님 묘 자리까지 파 가면서 내 준 땅인데 기업에게 헐값으로 퍼주기를 한다니 분통이 터지네요"
"행정기관이 오지 않는데 어느 기업이 오겠어요? 결국은 기업들이 싼 값에 땅만 사놓고, 나중에 되팔아서 시세차익만 챙길 겁니다. 국민의 혈세로 기업들의 개발이익을 보장해 주는 꼴이죠"

영하 10도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6일 세종시 예정지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맹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첫 마을 사업부지를 오가는 덤프트럭만이 하얀 눈길을 분주히 달릴 뿐, 거리에 나선 주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밀마루 전망대에서 바라 본 세종시 예정지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고, 군데군데 잘려나간 산등성이가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거리에는 '행정도시 사수', '원안관철'이라는 붉은색 깃발이 나부끼고, 물에 젖은 현수막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늘어져 있었다.

천막을 들추면서 들어선 연기군청 앞 농성장에는 10여 명의 여성 주민들이 앉아있었다. 이들은 행정도시 원안사수를 위한 연기군민 릴레이 단식농성에 참여한 '조치원YWCA' 회원들.

오늘로써 단식농성 75일째를 맞는 연기군민 단식농성은 그동안 수많은 주민들이 참여했으며, 행정도시 원안사수 투쟁의 중심에 서 있다. 오늘 새롭게 시작한 YWCA 회원들은 오늘부터 내리 2박 3일을 단식하며 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연기군민 75일째 릴레이 단식농성... "국민혈세로 기업에게 퍼주기 하나"

6일 부터 2박 3일동안 '세종시 원안사수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조치원YWCA 신미식 회장.
 6일 부터 2박 3일동안 '세종시 원안사수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조치원YWCA 신미식 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연기군청 앞 단식농성장에 모여 있는 '조치원 YWCA 회원들'
 연기군청 앞 단식농성장에 모여 있는 '조치원 YWCA 회원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신미식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에게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서 물었다. 신 회장은 "우리로서는 원안대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과밀 해소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수정안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 회원이 목소리를 높여 끼어들었다. 그녀는 "오늘 언론보도를 보니까 정부가 기업에게 30~40만 원대에 토지를 공급한다고 하더라,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원주민을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은 죽이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녀는 이어 "토지 보상한 돈이 다 어디서 나왔습니까, 다 국민의 혈세 아닙니까? 그렇게 국민 혈세로 사들인 땅을 기업들의 개발이익을 위해 헐값으로 퍼준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특히 우리 지역주민들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이희경 사무총장이 말을 거들었다. 이 총장은 "'행정도시건설특별법'이 있는데 있는 법은 무시하고, 기업도시로 유턴을 해도 되는 지 정말 묻고 싶다"며 "이렇게 법도 절차도 안 지키는 게 무슨 정부고 나라냐"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이명박 대통령은 다른 대안도 없는 것 같다, 겨우 만든다는 수정안이 기업에게 세금 깎아 주고 땅 헐값으로 넘기는 것 아니냐"면서 "그냥 감언이설로 횡설수설하면서 일단 행정기관만 이전 안하고 보자는 식 같다"고 말했다.

이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오는 농성장 한 켠에는 '이명박 대통령 죽으면 떡 돌린다'는 문구가 써 있었다.

연기군수 "수정안 내용, 이미 원안에 다 있는 것... 정부가 여론 호도"

유한식 충남 연기군수(자료사진)
 유한식 충남 연기군수(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농성장에서 나와 유한식 연기군수를 만났다. 유 군수는 행정도시 원안사수를 위해 지난 10월 10여 일간의 단식 농성을 벌이다 실신까지 한 바 있다. 다소 몸을 회복한 듯 보이는 유 군수는 "정부가 내놓을 수정안이라는 게 사실은 원안에 다 들어가 있는 내용"이라며 "마치 정부가 기업을 데려온다, 대학을 데려온다, 연구소를 데려온다 하면서 새로운 것을 주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군수는 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도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해서 행정도시를 비롯한 충청권에 건설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한나라당도 총선 때 자신들의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라면서 "그런데 무슨 행정도시 대신 건설해 주는 것처럼 얘기하고, 이를 거부하면 다른 지역에 건설하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하고, 왜 그러는 지 모르겠다"고 분개했다.

유 군수는 이어 "행정도시는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정철학이 담긴 사업이다, 이를 수정하려면 그 당초 취지를 살리는 수정안을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대로 행정기관이 오지 않으면, 당초 취지는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진정 국가를 위한 사업이라면 이렇게 급하게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지 말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서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유 군수는 '여론수렴'이라는 목적으로 정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이 충청권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여론수렴이 아니라 일방적인 홍보"라면서 "심지어 연기군수인 저에게도 세종시 수정안을 어떻게 만들었으면 좋겠느냐고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중동을 포함한 언론사들도 정말 중립적으로 또 군민들의 입장에서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나라님이 백성 쇡여 먹는 게 나라여? 나라도 아녀"

세종시 건설 예정지인 연기군 남면 나성리 '첫마을 사업지구' 건설 현장.
 세종시 건설 예정지인 연기군 남면 나성리 '첫마을 사업지구' 건설 현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연기군청 앞 군민 농성장에는 행정도시 원안건설을 기원하는 수 많은 리본이 달려 있다.
 연기군청 앞 군민 농성장에는 행정도시 원안건설을 기원하는 수 많은 리본이 달려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관련사진보기


장소를 옮겨 남면 양화리에 들어섰다. 추운 날씨로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겨우 만난 한 노인은 "말도 붙이지 말라"면서 손사래부터 쳤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그 노인은 "나라님이 백성들 속여 먹는 게 나라여? 이건 나라도 아녀"라면서 역정을 냈다. 그러면서 그는 "인제 이 동네에 땅투기꾼만 가득허게 생겼어"라며 혀를 찼다.

눌왕리에 산다는 한 주민도 "수정안 발표는 보나마나다, 행정기관 이전 백지화하고 기업에게는 특혜 준다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당초 원주민들에게는 조성원가의 70~80%수준인 평당 150만 원 정도에 싸게 분양하겠다고 했었다"며 "그런데 기업에게는 30~40만 원대에 토지를 공급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홍석하  행정도시 무산저지 충청권비상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세종시 수정안은 행정도시 백지화안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수도권 키우기에만 집중하는 이명박 정부가 과연 세종시를 놓고 무슨 고민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최근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서도 "많이 달라졌다, 몇 달 전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심지어 지방언론까지도 세종시 얘기가 쏙 들어갔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하고 나면, 아마도 전방위적으로 홍보작업과 주민설득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한 움직임에 주민들이 흔들리지 않고, 국회에서 법통과를 막아낼 수 있도록 단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한편, 연기주민들은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전후해 더욱 거센 투쟁을 계획하고 있다. 그동안 공주와 연기로 나뉘어 있던 대책위와 시민단체 중심의 대책위, 그리고 전국의 분권운동단체로 수성된 연대 등이 하나로 뭉쳐, 한 목소리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우선 이번 주말, 각 대책위 임원들이 모여 하나로 된 조직구성을 논의하고, 투쟁수위와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13일에는 충남이통장연합회의 상경집회를 추진하고, 14일에는 전국의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토론회 및 지식인 1000여 명이 참여하는 '지식인 선언'을 계획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정안 발표 후 새로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될 경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야당과 힘을 합쳐 대응해 나가고, 필요할 경우 수만 명의 충청주민이 상경투쟁을 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태그:#세종시, #세종시 수정안, #연기군, #행정도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