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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인연이라고 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인연이라고 했고, 부부로 만나는 것도 인연이며 누군가를 죽이는 것도 인연이라고 했다.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민중의 비원도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며 눈 내리는 날에 그리운 이를 기다리는 것도 인연일 터이다.

 

 

여기 그 어떤 인연이 있어, 한반도 남단의 깊숙한 땅에 천불 천탑이 세워졌을까. 천 년 전, 도선국사라는 이가 있어 반도의 배꼽이라는 곳을 찾았다지. 그 배꼽에 천불천탑을 세워야 한반도가 안정된다며 하룻밤 새에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불탑을 세웠다는 신비의 운주사. 구름이 머무는 곳이었다가 배를 움직이는 곳으로 그 이름마저 바뀐 운주사. 설경의 운주사는 말이 없었다. 백성의 비원이 굽이굽이 펼쳐진 인연의 땅이었다.

 

 

새로 지은 듯한 일주문을 지나니 굽이쳐 돌아가는 눈의 도로가 나타났다. 그 도로 가장자리에 흰 눈을 발밑에 거느리며 나타난 투박한 부처님들. 부처님 곁을 흐르던 물줄기는 어느새 고드름으로 변해 자수정처럼 빛나고 있었고, 키높이가 들쭉날쭉인 돌부처들이 천년의 미소를 간직한 채 오가는 이방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원형다층석탑이며 석조불감, 발형다층석탑 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이리도 파격적일 수 있을까. 어쩌면 이리도 신비로울 수 있을까. 저 탑들에 새겨진 각종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도대체 그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는 걸까. 혹자는 이 문양이 몽고와 관계있다고 추정한단다. 몽골 고원에 새겨진 탑파 양식을 닮았고, 그 문양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다. 9세기에 살았던 도선국사가 세웠다고는 하나 실은 이 탑들의 건립연대는 12세기에서 ·13세기라는 것이 정설이란다. 그 시기에 이 땅이 몽골의 침략을 받았으니 어쩌면 몽골 기원설이 맞을런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운주사가 우리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사찰 경내 곳곳에 스민 민중들의 비원일 것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편안한 얼굴들이 운주사 곳곳에서 보인다. 부처님들은 바위 아래에 둔탁하게 서 있을 뿐이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자연과 합일되는 백성의 부처님인 것이다. 화려한 가사장삼은 그 어디로 가고 무명천으로 만든 장삼을 걸치신 것인지. 아마도 이게 본래 불교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이게 바로 차안을 건너 피안으로 차마 가지 못하는 보디사트바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탑들과 부처님을 지나 도선국사가 운주사를 쳐다보며 총지휘했다는 공사바위에 오르니 골짜기 사이로 아늑하게 펼쳐진 운주사가 구름처럼 펼쳐진다. 참으로 포근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절로 느껴지는 광경. 골짜기 사이로 국화꽃을 닮은 누님처럼 곱게 숨어 있는 운주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운주사를 가보라고 하는 거구나. 왜 운주사에 가면 그 어떤 기를 느낀다고 하는지 이제야 알 것만 같다.

 

 

일어서는 날, 세상이 개벽천지한다는 전설을 가진 와불은 또 어떠한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길고 긴 잠에 빠진 듯한 두 분의 부처님.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가올 용화세계를 어떻게 다스릴까를 고민하고 계신 걸까. 아니면 자신을 빨리 일으켜 달라고 외치고 계신 걸까. 백성들은 염원했다. 지긋지긋한 소작과 착취의 세상을 끝낼 부처님이 빨리 일어나주기를 바랬다. 그 염원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그러나 실상 이 와불은 진짜 와불이 아니라 미완성 석조여래라고 불리는 것이 맞단다. 부처님은 옆으로 곱게 누워 열반에 드셨으니 말이다.

 

 

  와불을 지나 목재덱을 따라 내려가니 하늘의 영험한 신, 북두칠성이 내려앉은 모습을 보인다. 얼핏 보면 둥그런 바위들이 무심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칠성바위. 크고 작은 원형의 바위들이 정확히 북두칠성의 별 밝기에 따라 모습을 이루었다니 그저 놀랄 수 밖에. 어찌 이리도 신기할까. 천 년 전, 옛 사람들은 수십, 수백광년 떨어진 북두칠성의 크기를 어떻게 가늠했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다시 돌아서 나오는 날, 운주사를 살짝 뒤돌아보았다. 오랜 세월을 견뎌준 불상과 탑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하나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한 몸처럼 인연의 늪을 건넌 불상과 석탑들. 앞으로 또 천년의 시간동안 이 땅 한반도를 지켜줄 신비의 사찰로 남아있기를 빌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송고함


태그:#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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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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