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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8일 충북 단양에서 비닐하우스를 찢고 쓰레기를 뒤지던 고양이를 공기총으로 죽인 사람이 총포화약도검류단속법(총단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한 밀렵감시단원이 야생동물을 죽인 것으로 오인해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야생동식물보호법에서 규정한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적용불가능하다고 판단, 총단법 위반으로 입건했다(<단양 뉴시스> 2010년 1월 28일자 기사).

동물자유연대는 이 사람의 행위가 동물보호법 7조 3항 위반이라고 판단, 재수사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은 농촌 지역의 특성상 고양이들을 일일이 처리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 이 요청이 어렵다는 반응이었고 직접 고발하라고 말했다.

내가 고발장 들고 경찰서를 찾은 까닭

임신한 채 구조되어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길고양이 출신 올리. 소유주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고양이는 동물보호법상 보호대상이다.
 임신한 채 구조되어 병원에서 아이를 낳은 길고양이 출신 올리. 소유주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고양이는 동물보호법상 보호대상이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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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고발장을 들고 단양경찰서를 찾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 왔나?'라는 담당 경찰관의 놀라는 반응. 이 직업을 가지게 된 이후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다. 강릉, 포항, 부산, 창원, 진도, 목포, 대전, 대구…. 도시뿐인가 농촌 구석구석 차가 없으면 택시를 타고 트럭도 얻어 타고 주소가 없으면 파출소를 찾거나, 이장님께 물어물어 다녔다. 개똥밭에서 구르다 신발이며 옷을 다 버리기도 했고, 농장의 담을 넘다 30미터 낭떠러지 아래로 구르기도 했다. 경찰서 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피고발인은 동물보호법 제7조(동물학대 등의 금지)1항 제3호 "수의학적 처치의 필요, 동물로 인한 사람의 생명· 신체 ·재산의 피해 등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와 동법 시행규칙 제9조(학대행위 금지) 1항 제2호에서 규정한 '농림수산식품부령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이는 행위' 즉 "사람의 생명· 신체에 직접적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는 법 규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경찰관의 말처럼 기소되지 못할 수도, 무혐의 처리될 수도 있다. 그간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에 안 가본 게 아니다. 법의 한계로, 그리고 경찰력 부족 등 여러 이유로 대부분의 사건이 흐지부지되었다.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이지 그런 고양이 하나 때문에…'라는 의식이 팽배한 곳에서 많은 벽에 부딪혔다.

아직 농촌의 현실에서 마련된 법과 제도가 정착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말도 이해한다. 그러나 법이 있다면 지켜야 하며 누군가 그것을 모른다면 알려주어야 하고 지켜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해당동물이 싫다 한들 죽이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상식적으로 다른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꺼려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죽인 동물 시체만 봐도 기겁하지 않는가.

길고양이 애써 잡지 마세요, 지자체에 맡기세요

창살 너머 무료한 동물들을 보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창살 너머 무료한 동물들을 보는 것이 과연 교육적일까?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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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쓰레기통 뒤지고 피해 주는 고양이들 보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요."

농촌지역 형사님의 너무나 솔직한 발언.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형사님은 그 고양이 안 죽이셨잖아요. "
"물론 그렇죠. "
"그건 큰 차이예요."

동물보호법은 동물을 사랑하라는 종교적 계시가 아니다. 피해를 주는 동물이 있다면 다른 방법을 강구하고 만약 사회적 합의에 의해 조율해야 한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합법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며 그 또한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라면 항시적으로 시민들의 합의가 열려있어야 한다.

이미 법에 규정된 사회적 합의를 어겼다면 그에 따른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보다 나은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 내가 고발장을 들고 경찰서를 찾는 이유는 그것이다. 그 사람이 죽도록 미워서도 아니고(물론 정말 악랄한 학대범도 있지만) 죽은 동물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뜻도 아니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처벌되고 판례들이 쌓여야 보다 합리적인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

8마리의 개를 잔인하게 학대한 사람이 벌금 20만 원을 받을지 모르는 사회가 불합리하다는 데 많은 시민들이 동의해 주었다. 그리고 학대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서명에 이미 5만 명 이상이 서명해 주었다. 좀 더 합리적인 처벌이 이루어지려면 처벌에 대한 판례들이 있어야 한다. 입법 과정은 길고 집행은 엄격하다. 법의 성격이 그렇다. 법 문구 하나 바꾸기 위해 몇 년간 길고 지루한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나 법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이다.

고양이들이 귀찮다고 쥐약을 놓아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는다는 제보를 종종 접한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주거지 근처에 사는 고양이는 길고양이로 간주, 해당지자체에서 포획, 중성화수술 후 방사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예산부족,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집행되지 못하는 지자체가 많지만 제도가 있다면 이는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개선해야 한다. 예산, 인력 부족으로 하지 못하니 개인이 공기총으로 쏴 죽여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은 그 지역 사람들이 홧김에 할 수 있는 말이다. 그것이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것을 아는 나는 이를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아는 만큼 실천한다고 하지 않나.

동물을 통해 찾은 나만의 언어, 사회적 실천

마당에 살고 있는 개들에게 사무실 방안은 항상 호기심천국이다. 대부분의 동물보호운동가들은 개를 통해 다른 동물에 대한 인식이 싹튼다.
 마당에 살고 있는 개들에게 사무실 방안은 항상 호기심천국이다. 대부분의 동물보호운동가들은 개를 통해 다른 동물에 대한 인식이 싹튼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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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모든 일을 정부가 나설 수 없다. 그래서 나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조서를 꾸밀 때 통상적으로 묻는 질문.

"직업이 뭐예요?"
"동물보호운동가요."
"예?"

낯선 직업. 잠깐 망설이던 경찰관은, "그냥 동물보호단체 직원이라고 합시다" 한다. 사람들은 내가 동물을 위해 항상 학대자와 정의롭게 싸우는 그런 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말 누가 봐도 강력한 처벌을 받아야 하는 학대범보다 아주 평범한 일반인들을 대할 때가 더 많다. 그리고 팽팽한 협상 과정에 들어간다.

동물체험관을 관장하는 영농법인대표, 동물원의 수의사, 소싸움협회 담당자, 동물전시담당 공무원 등 모두 생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니 처음에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언성을 높이고 협박에 가까운 말도 한다. 어떤 말을 해도 어떤 욕을 먹어도 상관이 없다.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방향에서 협상할 수도 있다. 누군가의 생업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신중해야한다. 하지만 "당신의 생각을 조금만 바꿔 보세요"라는 부탁에는 단호하게 말을 할 수밖에 없다.

"제게 어떤 말을 해도 상관없는데 제 생각을 바꾸라고는 하지 마세요. 그건 제 정체성이고 그것을 놓는다면 저는 직업을 바꿔야 합니다."

학교 다닐 때 시위 한 번 못 해본 나는 사상 전향을 하라고 감옥에 수십 년을 가두고 협박을 가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가를 그때 깨달았다. 내 생각과 사상은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본질적인 무엇이다. 어떠한 폭력도 협박도 권력도 그것을 바꿀 권리가 없다. 이 쯤 되면 동물보호운동은 동물을 구하는 것 이상의 행위이다. 동물을 통해 인간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것. 동물을 통해 사람들을 보니 아직 이 사회는 비합리성이 판을 치고 잔인하고 무심한 인간의 본성이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무언가 간절하게 바꾸고 싶었다.

일기조차 안 쓰는 내가 4년간 82개의 기사를 썼다. 대학교 때 지도교수님이 내게 했던 말, '인문학은 자기만의 언어를 찾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밥 벌어 먹는 것과 거리가 먼 철학이나 역사학에 심취했던 내가, 사회적으로 하나 쓸모없는 인간인가 비관했던 내가 동물을 통해 내 언어를 찾고 글을 쓰게 되었다. 월 평균 150만원의 월급으로 재테크는 꿈도 못꾸는 미래 없고 불안한 직업에 내 심장이 꽂힌 이유는 그것이다.

보람 있는 일을 한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정작 성취감보다 자괴감에 더 시달려야 한다. 강호가 노원구청을 벗어나던 날, 많은 사람들이 기뻐했지만 정작 나는 방에 앉아 '펑펑' 울어야 했다. 한 달 동안 주차장에서 잠을 잤을 강호와 범호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았다. 유독 추웠던 올 겨울. 환기도 안 되는 답답한 차 안에서 난로 하나에 의지하며 지냈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노원구청에 있던 강호. 키워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하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사랑의 방식이 다를뿐. 소유욕과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닌가?
 노원구청에 있던 강호. 키워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사랑하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사랑의 방식이 다를뿐. 소유욕과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닌가?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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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현장을 보면 단련된다고? 물론 직업상 제보를 들으면 카메라부터 들고 차비하는 습관은 몸에 배었다. 그러나 아직도 현장에 접근할 때 대 심장은 두근두근하며. 열악한 현장을 직접 본 이후에는 가슴에 깊은 생채기가 남는다. 모란시장, 농장, 도살장, 동물원…. 이렇게 끊임없이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서 왜 나는 여기에 서 있는 것일까. 동물을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을 실천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서 있는 현실은 나 혼자의 의지로 나 혼자의 능력으로 있게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많은 공무원들을 만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고압적이던 태도가 이제 많이 달라졌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세금 내는 국민의 권리로 얻을 수 있다. 모두 수십 년간 민주적 법과 제도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피를 흘려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 덕을 보고 있으니 나도 나의 후손을 위해 무언가 남겨야 한다. 그게 권리를 가진 시민의 의무이며 지성인의 합리적 태도가 아닌가.

각종 학원에 하루종일 아이를 보내고 경쟁만을 부추기면서 휴일에 동물원에 데려가 철창 너머 무료하게 앉아있는 원숭이를 향해 "어디 굴러봐! 하하하" 웃으며 원숭이를 조롱하는 부모에게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울지 아찔하다. 무엇보다 동물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강호의 슬픈 눈이, 우탄이의 따뜻한 손이, 아사 직전 구조된 줄리엣의 남아 있는 한쪽 눈이 그리고 내 가슴에 깊은 상처를 주고 사라진 많은 생명들.

늘어난 회원과 후원자, 내가 가진 희망

주주동물원의 우탄이 손. 이제 쇼를 하지 않는 우탄이는 자신의 방에 갇혀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가을. 우탄이의 손을 잡으며.
 주주동물원의 우탄이 손. 이제 쇼를 하지 않는 우탄이는 자신의 방에 갇혀 사람들의 눈요기거리가 되어 살고 있다. 지난 가을. 우탄이의 손을 잡으며.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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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밤낮으로 전 국토를 들고파는 일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건설. 귀에 못이 박히도록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좀 더 이기적이고 좀 더 치열하게. 점점 무시무시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어려운 경제현실에도 지난 일 년간 회원도 후원금도 늘었다. 이게 내가 가진 희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주머니를 털어 약자에게도 무언가 나누어주는 윤리적 행위를 하는 데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것.

각종 자료검색, 외국단체와 메일링, 현장조사, 자료조사, 인터뷰, 학대제보 등 상담, 보고서 성명서 등 각종 글쓰기, 캠페인 기획, 실행 이 모든 일이 평범한 나에게는 너무도 벅차다.

나는 오늘도 꿈꾼다. 이 지독하게 서럽고 어렵지만 내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일에 누군가 함께 동참해주기를. 어디선가 돈과 즐거움보다 보람 있고 가슴 벅찬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더 나타나지 않을까.


태그:#동물보호운동, #동물학대, #동물보호, #동물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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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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