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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현명한 선택에 고무된 독일은 노르웨이 역시 알아서 항복할 거란 어리석은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웨이는 독일군 밥상에 치즈 퐁듀가 되기를 자처했던, 동화의 나라 덴마크처럼 간단한 먹잇감이 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들의 결의는 당장에야 독일의 공군기를 떨어뜨리고, 무쇠 탱크를 녹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현실은 너무나 매정했다.

 

 

노르웨이군은 애당초 전차나 대전차 무기같은 중화기는 전혀 없었으며, 전시 소집된 민병대가 주축이 된 4개 사단의 육군은 개전 일주만에 3개 사단이 괴멸되어 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민간인들도 엽총이나 사냥용 총기 따위를 들고 달려와 가세한 노르웨이군의 저항은 필사적이었다.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은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으로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했다.

 

우선 영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한 장비조차 제대로 정비하지 않은 채 급조된 영국원정군은 누가 봐도 노르웨이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실제로 어렵사리 노르웨이에 당도한 영국원정군은 군인이라기 보다는 얼빠진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대영제국의 긍지를 방패삼아 독일군과의 일전을 치르기 위해 전진을 개시한 영국원정군은 독일군의 상승세를 꺾기는 커녕, 정신없이 패주하는 자신들의 비참한 모습에 좌절해야 했다. 트론헤임으로 투입되었던 영국군 146여단과 148여단은 처참하게 박살나 버렸고, 팔레스타인에서 산악전 경험을 쌓은 제15여단이 급하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지만, 이들 역시 한 몸처럼 유기적인 작전을 펼치는 독일육군과 공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패배를 인정하기 싫었지만 영국정부는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3개 여단이 파병되어 160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원정군은 결국 철수를 선택했다.

 

트론헤임의 작전 실패 이후에도 나르빅 상륙을 시도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은 여기서도 독일군의 일방적인 스파링 파트너 신세로 전락해 버렸다. 개전 이후 한 달이 지났음에도 노르웨이의 마지막 희망의 불꽃이었던 영불 연합군은 애초의 기대와는 달리 계속 꺼져만 가고 있었다. 결국에는 5월 10일 새벽을 기해 독일군이 네델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국경을 넘어 프랑스를 향해 치고 들어가자 영불원정군은 더 이상 노르웨이의 희망이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제 전쟁의 포화는 강 건너 불 보듯 구경하던 영국과 프랑스로 번지기 시작해 버렸다.

덧붙이는 글 | 월간공군


태그:#노르웨이군, #독일군, #영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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