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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면 어디서나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성산 일출봉이다. 성처럼 생긴 성산 위로 해가 떠오르면 그 해는 이내 오조리 마을을 뜨겁게 비춘다. 마을은 잔잔한 물을 앞에 두고 있는데 햇살은 어김없이 여기에 담긴다.

 

오조리에서 일출봉까지 걸어서는 시간이 꽤 걸린다. 마을에 난 길을 따라 구불구불 걷다가 일주도로가 있는 데까지 닿으면 이내 '동남'으로 향한다. 동남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걷고 또 걷다보면 일출봉을 끼고 있는 광치기 해안까지 갈 수 있다. 근래에 큰 도로가 완공되어 낯설고 헷갈리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을 맞이하려면 어쩔 수 없는 변화라고 받아들여 할 듯도 하다.

 

오조리 마을의 서북쪽, 1995년 즈음에 완공된 성산 갑문에 다리가 놓인 뒤로 일출봉으로 가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 일출봉과 달리 가까운 곳에 자리한 식산봉은 아담한 오름이다. 키 큰 나무가 키높이구두 역할을 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더 낮다. 기록으로는 40미터 높이. '바우오름', '바오름' 따위로 불렀다는데 올라보면 커다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조리 서쪽 밭들 가운데는 '기왓장 아진 밭'이 있다. 깨어진 기왓장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식산봉 서쪽 자락에도 '절터'란 이름이 있는데 이 두 곳 모두 예전에 절이 있어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유교를 강권하던 시기인 조선 시대에 허물어 버린 것일까? 지금도 '기왓장 아진 밭' 주변에는 그 흔적이라 여길 만한 것들이 살아 남아 '유허미'를 보인다.

 

 

'기왓장 아진 밭' 어귀에는 넓고 웅장하게 조성한 묘역이 있는데, '부씨도선묘'라 부른다. '고씨, 양씨, 부씨' 이 세 성을 쓰는 이들이 탐라국의 시조라는 '삼성'이요, 제주시의 '삼성혈'은 그 조상이 나온 구멍이라 하여 모시고 있다. 어쨌든 이 '부씨선도묘'일대를 정비하다가 나왔던 것인지 담장 위에도 기왓장들이 몇 조각 놓여 있다.

 

 

이 묘는 식산봉에 있다는 '장군석'과 함께 이야기되는데, 이 바위가 부씨도선묘에 바로 보이는 곳이라 '부씨' 후손에서 큰 장수가 나올까 두려워 한 관에서는 그 머리를 부수어버렸다고 한다. 그러자 바위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니 나무를 심어 가렸다고 전한다. 장군석의 유무는 확인하지 못 했지만, '바우오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전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와 유사한 결말을 보이는 이야기가 또 있는데 이번엔 '부씨'가 대장장이로 나온다. 그와 사랑을 나누는 사이인 '옥녀'는 양반이라 신분상 제약이 있다. '조방장'이 등장하여 옥녀에게 사랑을 속삭이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새암바리'인 조방장은 부씨를 잡아들여 누명 씌워 죽인다. 조방장에게서 풀려나온 옥녀가 여기저기 찾아헤매다 죽은 조방장을 발견한다. 이 자리가 '장시머들'이란 이름으로 남아있다. '장시'는 '장수'를 뜻하는데 이 두 이야기를 함께 받아들여 지어진 이름일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식산봉'이라는 이름을 쓰는데는 '조방장'이 또 등장하는데, 왜구 침입을 이 사람의 지략으로 물리친 이야기에서 기인한다. 오름 전체를 노람지(띠로 엮은 덮개)로 덮어 군량미인 양 속였던 것이다. 그 '조방장'이 '이 '조방장'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올레2코스가 이 마을을 따라 나와 섭지코지, 또는 일출봉으로 가는 모양이다.

 

그와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는 일이겠지만 이 마을 주변도 적지 않은 변화가 눈에 보인다. 특히 식산봉 주변이 크게 드러나는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동쪽 자락에 높게 솟아 있던 대나무숲이 사라져 버렸고, 그 옆쪽엔 '안내광장'이라는 큰 휴게소가 생겨났다. 그 앞으로 난 양어장 제방 위로도 목책을 둘렀으며 건너편 언덕에도 정자를 하나 세워 놓았다.

 

 

이러한 시설들은 이 곳 사람들보다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곳 주변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살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도 나누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모두 고요히 만끽하고, 고요히 머물고, 고요히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을 거니는 사람이 많아지면 새들은 더욱 힘들겠다. 서쪽 하도리에서부터 종달리를 거쳐 성산포 일대까지의 해안에는 많은 철새들이 겨울나기를 하는 곳으로 이름나 있다. 오조리를 품고 있는 양어장과 그 주변에도 역시 많은 새들을 볼 수 있다.

 

생각보다 예민한 새들을 생각하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나쳐야 하는데 길의 일부구간은 이들의 영역과 너무 가까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원래 길의 대부분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길인 것으로 밭으로 걷고, 바다로 걷고, 물가로 걷는 삶의 길이다.

 

따라서 이는 방문객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길을 유도하는 계획단계에서 나온 문제라 보아야 할 것이다. 코스의 일부를 사람만이 아닌 이 자연계에 몸담은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으로 수정하여야 하리라 본다.

 

밭으로 짜인 마을길을 따라 안으로 계속 들어오면 갈래길 아래로 자연스레 경사진 곳이 있는데 '족지', '촉지', '족제'라고 한다. 앞에서는 청둥오리 무리가 여유로이 멱감는 풍경을 자랑하고 한켠에 놓인 샘물이 그 아름다운 풍경에 일조하고 있다. 이름은 '족짓물'이며 두 군데를 잔돌로 마감해 놓았다.

 

 

한쪽 벽엔 하늘타리 열매가 시대를 마감하고 있고, 다른 쪽에 있는 겨울 참멋을 자랑하는 동백나무는 시붉은 꽃을 떨어뜨려 놓았다.

 

 

물 속엔 어린 물고기들이 떼지어 헤엄치고 있으니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족짓물' 곁에 낸 작은길을 따라 왼쪽 언덕에 '할망당'이 있었는데 몇 해 전에 보다 북쪽 지금의 자리로 옮겨갔다.

 

 

할망당을 등지고 서면 드문드문 어렵사리 자라는 나무들과 우거진 갈대숲을 앞에 두고 식산봉과 그를 품은 물을 볼 수 있다. 간간히 날아올라 식산봉 동쪽 자락 나무에 착륙하는 큰 백로류도 보이는데 이놈의 서슬퍼런 바람만 없다면 몇 시간이고 앉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의 하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2010년 2월 14-15일 여행한 기록입니다.


태그:#제주도, #오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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