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비좁은 보도에 교통안내표지판이 설치되어 휠체어 장애인 이용이 어려운 천안시 청수지구가 이번에는 함량미달의 볼라드 설치로 눈총을 받고 있다. 장애인단체는 시설 개선을 요구하고 있지만 천안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당장은 정비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볼라드 9백여개 산재한 청수지구

천안시 청수지구에 설치된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모습.
 천안시 청수지구에 설치된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모습.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2009년 12월 말 천안시는 '청수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준공했다. 총 사업비 4625억원을 투입해 청수.청당.삼룡.구성.다가동 일원 121만6389㎡를 수용방식으로 개발한 청수지구 택지개발사업. 천안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공동으로 2006년 착공했다.

현재 동남경찰서와 국민연금공단 등 몇몇 공공기관이 개청했고 일부 공동주택도 입주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대부분 토지가 구획정리된 형태로 남아 썰렁함도 감도는 청수지구에 유독 눈에 띄는 것들이 있다. 청수지구 곳곳에 산재한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일명 볼라드이다.

볼라드는 횡단보도 부근의 턱 낮추기 구간에 자동차의 진입 및 우회전 자동차가 보도로 진입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설치된 단주(bollard)를 뜻한다.

지난 16일 청수지구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천안지사 인근 사거리. 사거리의 횡단보도마다 설치된 볼라드의 숫자가 40여개를 웃돈다. 사거리 한 곳당 10개에서 11개에 이르는 볼라드가 줄 지어 설치돼 있다.

원형 화강석 재질로 만들어진 볼라드는 대략 지름 30㎝, 높이 40㎝ 정도의 크기. 좁게는 130㎝에서 140㎝ 간격으로 세워져 있다. 높이와 간격은 조금씩 달라도 청수지구에는 원형 화강석 재질로 동일한 볼라드가 9백여개 정도 설치됐다. 9백여개의 볼라드 설치에는 총 2억원이 소요됐다. 볼라드 1개당 평균 22만원이 약간 넘는 셈.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는 고무 볼라드 보다 가격도 몇 배 이상 비싸다.

화강석 재질 볼라드, 교통약자 이동에 위협

볼라드는 두 얼굴을 지닌다. 자동차 진입을 억제하는 순기능도 갖지만 보행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장애물이다.

그래서 현행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편의증진법) 시행규칙은 부칙으로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의 세부 설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은 보행자의 안전하고 편리한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설치해야 한다.

볼라드는 설치시 밝은 색의 반사도료 등을 사용해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높이와 간격도 규정되어 있다. 볼라드의 높이는 보행자 안전을 고려해 80~100㎝ 내외로 하고 지름은 10~20㎝ 내외로 해야 한다. 간격은 1.5m 내외로 하고 보행자 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되 속도가 낮은 자동차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구조로 해야 한다.

또한 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즉 볼라드의 0.3m 전면에는 시각장애인이 충돌의 우려가 있는 구조물이 있음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점형블록을 설치해야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청수지구내 설치된 9백여개의 볼라드는 모두 함량미달이 된다. 식별이 용이하도록 밝은 색의 반사도료가 사용된 것도 아니고 높이와 지름도 기준에 못 미친다. 재질도 화강석 재질로 단단해 시각장애인 등 보행자가 충격시 자칫하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청수지구내 볼라드는 시각장애인 충돌 방지를 위해 전면에 점형블록이 설치된 곳도 있지만 점형블록이 없는 곳도 여러 곳에 달한다.

장애인단체, 청수지구 볼라드 개선 요구

천안시 청수지구에 설치된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모습.
 천안시 청수지구에 설치된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자동차 진입 억제용 말뚝) 모습.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수천억원이 투입되어 조성된 택지개발지구에 설치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 볼라드가 무분별하게 설치돼 교통약자의 이동 불편이 우려되자 장애인단체를 중심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특히 국토해양부와 보건복지가족부가 공동으로 시행하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의 인증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한 청수지구에서 볼라드가 장애인 통행을 위협하는 상황이 초래된 것에 장애인 단체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충청남도지부 장원철 사무국장은 "볼라드의 높이가 60㎝ 이하이면 시각장애인들이 흰지팡이를 사용해 이동시 볼라드를 인식하기가 어려워 부딪히기 쉽다"며 "청수지구의 볼라드는 꼭 필요한 곳만 아니라 아니라 막무가내로 설치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볼라드에 부딪히는 사고를 종종 목격했다"는 장 국장은 "불필요한 볼라드를 없애고 재질도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소재로 기준에 맞춰  재설치하도록 천안시에 지부 차원에서 정식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천안시는 청수지구 볼라드를 당장 정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천안시 건설사업소 한상철 공영개발팀장은 "청수지구는 편의증진법 제정 이전에 실시계획인가가 나왔고 그에 따라 자재구입 계약이 이미 완료된 상태라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가 설치됐다"며 "현재의 잣대로 법적인 하자를 지적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팀장은 다만 청수지구 개발 추세에 따른 개.보수시 현행 법 규정에 맞게 볼라드를 점차 정비하고 점자블록이 없는 곳은 조만간 설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있는 볼라드도 없애는 판에…"
천안시, 화강석 재질 볼라드 자진 철거나선 대전시와 대조돼
대전광역시는 2008년부터 교차로 내 횡단보도 앞에 설치된 화강석 재질의 볼라드를 자진 철거하고 있다.

대전시 관내 주.간선도로 교차로 내 횡단보도 앞에 차량진입을 방지하고자 설치된 화강석 볼라드가 시각 장애인이나 휠체어, 유모차 사용자 등 교통약자인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행하는 시책. 2008년과 2009년 5억9000만원을 투입해 2천개의 볼라드를 제거한 후 수목 2백50여주를 식재했다.

대전시는 볼라드 대신 식재된 수목이 볼라드 역할 뿐만 아니라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인 보행자에게 여름철 그늘 목을 제공하고 도시미관에도 기여한다고 밝혔다. 제거된 볼라드는 버려지지 않고 재활용계획을 수립해 공원벤치, 화단둘레석 등의 용도로 사용한다고 전했다. 대전시는 올해도 볼라드 제거와 수목식재로 3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편의증진법 시행 이전 개발계획과 실시계획이 수립된 청수지구의 볼라드에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천안시의 설명은 타당하다. 2004년 12월 당시 건설교통부가 발간한 '보도 설치 및 관리지침'에서도 편의증진법의 설치기준과 유사한 내용의 볼라드 설치 기준이 제시됐지만 강제성은 없었다.

하지만 법적인 적합도를 떠나 현실적 불편이 충분히 예상되는 만큼 개선과 정비는 빠를 수록 좋다. 청수지구에 건물 신축이 늘어나고 보행자 통행이 많아져 불편과 불만이 누적된 뒤에야 뒷북치듯 정비에 나선다면 패스트(fast) 행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본지(561호) 보도를 통해 청수지구 보도상의 교통안전표지판 병존과 법정 기준에 못 미치는 보도 폭 문제가 알려지자 천안시는 실태조사 뒤 한국토지주택공사측에 하자보수 이행 요구 등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볼라드 문제 역시 미뤄둘 사안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62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천안시, #청수지구, #볼라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