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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8일 오전 9시15분경 정연주 KBS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모습. 여의도 KBS본관 1층에 사복형사 수십명이 진입해서 앉아 있다.
▲ KBS 본관에 사복형사 투입 2008년 8월 8일 오전 9시15분경 정연주 KBS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모습. 여의도 KBS본관 1층에 사복형사 수십명이 진입해서 앉아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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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놀라운 자료를 하나 입수했다. 바로 8월 5일 개최된 감사위원회의 회의 내용 가운데 일부가 공개되었다. 민주당 박영선 의원실의 한 보좌관이 감사원에 직접 가서 손으로 회의록 일부를 베껴온 것이다. 회의록 공개와 자료제출을 거부한 감사원은 국회의원실에서 직접 감사원에 와서 회의록을 열람·참조하는 것은 허락했고, 박영선 의원의 한 보좌관이 이중 일부를 필사로 옮겨온 것이었다.

감사 결과조차 제대로 이해 못한 감사위원들

그 내용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감사원 감사위원들은 감사 결과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으며, 감사원 담당국장은 매우 주관적이고 관념적인 이유에서 나의 해임을 주장하고 있었다. '해임 요구'에 필요한 '현저한 비리'에 대해서도 주관적인 답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이날 감사위원회 회의에는 김종신 감사원장 직무대행과 이석형, 박종구, 하복동, 김용민, 박성득 감사위원이 참석했다고 당시 언론이 전했다. 이 자리에는 감사원 제2 사무차장, KBS 감사를 지휘한 사회복지감사국장, KBS 감사를 실무적으로 담당한 과장 등도 참석했다. (사회복지감사국장 김용우씨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저녁 때 가진 기자회견에서 감사위원회가 내린 결정 내용과 감사 결과 개요가 담긴 보도자료를 브리핑했다).

그럼 최근 입수한 그 날의 회의록 일부를 한번 보자. '한국방송공사 부실경영, 인사전횡, 사업 위법·부당 추진' 항목과 관련된 것이다.

박성득 위원: (정연주 사장이) 화합을 이루지 못했고, 적자 운영과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음. 경영상 책임에 대해서는 이사회에서 물으면 되지, 감사원에서 물을 문제가 아님. 전례에 따른다면 이의 없음.

하복동 위원: 경영성과에 책임을 져야 함. 매년 손실이 발생, 수지 개선할 여력이 없고, 사업비, 인건비, 복리후생비, 구조개선을 방치했음.

김용민 위원: (박성득 위원과 비슷한 의견)

박종구 위원; 전임부터 경영적자 문제가 있어 왔는데, 정연주 사장이 적정한 조치 안했음. 현저히 비위가 있음. 정연주 사장 위주로 정리해야 함.

이석형 위원: 해임 요구를 하려면 현저한 비위가 있어야 함. 법령, 규정을 명백히 위배되어야 함. 경영상 과오도 중대한 법령 위배나 권한 남용, 일탈을 수반해야 함. 1. 현저한 비위의 성격과 내용. 2. 동종유사선례 3개 안건이 KBS 사장 해임 요구사안과 성격과 내용, 규모에서 비슷한가. 3. 부실 방만 외에 경영 전반의 종합적 고려 필요. 4. KBS의 자유와 독립적 지위를 고려할 때 신중하고 엄격한 판단이 필요.

국장 : KBS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배제됨. 공공기관보다 높은 책무가 필요(도덕성, 모범). 경영상 책임에서 사회정의를 실행할 정도의 자세와 능력 보여줘야 하는데, 정연주 사장은 보여주지 못했음. 조직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분열과 알력...여러가지 경영을 책임진다는 입장에서 볼 때 이전 여러 가지가 모여서 사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고, 앞으로도 이 사장이 계속 있음으로 인해서 KBS가 더 국민한테 사랑을 못 받게 되고, 또 주어진 설립 목적을 실현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보고, 그래서 저희 사무처에서는 바로 저희가 해임하는 입장이 아니고, 여기에 대해서 다시 심의 의결하는 KBS 이사회가 있으니까, 이사회에서 이 내용을 가지고 다시한번 판단할 기회가 있으니까, 이사회에 해임 제청 의결을 요구하는 것이 합당.

이석형 위원: 질문을 다 합해서 현저한 비위인가? 특정 부분 하나로 현저한 비위인가?

제2사무차장: 혼재되어 있음. 현저하다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임. 사장의 무능과 태만, 이런 것으로 인해서 결과적으로 KBS 경영에 결정적 하자를 가져왔다.

이석형 위원: 현저하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객관화되어야 함.

의장: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고 책임의 경중에 대한 판단을 하자.

감사원 간부인지, 정치인인지...

끔찍하다. 특히 "사장으로서 제 역할을 못했고, 앞으로도 이 사장이 계속 있음으로 인해서 KBS가 더 국민한테 사랑을 못 받게 되고, 또 주어진 설립목적을 실현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감사원 국장의 발언은 이게 감사 전문가의 발언인지,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의 발언인지, 나에게 그렇게도 적대적이던 KBS '노조'의 성명서 한 부분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 

'해임 요구'를 위해 필요한 '현저한 비리'에 대해서도 감사원은 참으로 주관적이었다. 제2사무차장이란 사람이 "현저하다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혼자 고군분투한 이석형 위원은 '현저한 비리'와 관련하여 "그것은 법률적으로 객관화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로서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미 감사위원회는 이명박 정권의 손아귀에 넘어갔으며, 특히 감사원의 일부 간부급 인사들은 이미 감사전문가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처럼 되어버렸다. 극히 일부만 공개된 회의록에서 이렇게 '용감한' 발언을 할 정도이니, 전체 회의록이 다 공개가 되면 또 어떤 '영혼을 팔아먹은 발언들'이 나올지 참 궁금하다. 역사의 청문회에서 꼭 밝혀져야 할 내용들이다.

당시 검찰이 나를 배임죄로 몰아가던, 법원 조정을 통한 법인세 등의 해결과 관련해서도 감사위원회에서 이런 저런 논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오간 회의록 일부를 보면 감사위원들은 감사 결과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음이 더욱 분명해 보인다. 공영방송 KBS의 독립성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사장 해임 요구'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감사위원들은 사안 자체에 대해, 특히 감사 결과에 대해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세청과 세금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법원 조정을 통해 해결한 문제와 관련한 감사위원회  회의 장면을 한번 보자.

기본 사실도 제대로 몰랐던 그들의 손에 내가...

이석형 위원 : 장기간에 걸친 세무 소송, 대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새로운 처분이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일부 포기하고 조정에 응했다 이런 내용인데...일반적으로 승소가능성이나 소송 중간에 명확하고 객관적인 이유도 없이...소송을 취하하면 안 됨. 그런 것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조정에 응했다는 것인데 이것이 잘못했다, 기회를 일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고...다른 한편으로 절차상으로 내부에서 총무팀이나 경영위원회나 이사회나 실무자가 다 반대했는데 사장 혼자 독단으로 결정해서 조정에 응한 것인가.

사무처 : 국세청이 매년 계속 부과하니까 KBS 자체적으로 위기의식이 있었음. 소송으로 전부 이기고 진다는 논거는 문제가 있어 그래서 조정을 검토한 것으로 보여짐. 사장이 독단적으로 지시했다는 그런 명확한 서류는 없는데, 그런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조정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음. 경영수지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왜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는지 물어보니 조정에 가면 진행과정에서 깨질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사전에 보고는 안했다. 감사자로서 이 사항이 손익에 상당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봐서 그리고 경영진이 당기 경영성과에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가 있음. 당기 경영성과를 의식해서 약간 편향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냐 그런 의미에서 외부인사가 포함된 이사회 사장 심의의결을 거쳤으면 좋았지 않았냐 그런 전반적인 흐름에서 지적.

이석형 위원 : 마지막 조정신청 할 때 자체 세무 소송팀에서 어떤 의견을 내지 않았는가.

사무처 : 세무 소송팀에서 연구 검토한 것임.

이석형 위원 : (사장이) 세무 소송팀과 의논했는가.

사무처 : 세무 소송팀에서 검토해서 보고를 올렸고, 그 상황은 계속 보고를 받아서 알고 있었음. 그런 관계임.

의장 : 세무 소송팀이 조정 의견 제시했는가.

사무처 : 예.

의장 : 정연주가 단독으로 조정으로 가자고 얘기한 것은 아니라는 것인가.

사무처 : 암묵적 지시가 있지 않았느냐 그렇게 판단.

이석형 위원 : 사장이 이것을 잘못했다라고 과연 결론 내릴 수 있느냐. 검찰에서 기소하려면 굉장히 고민할 것. 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을 경우의 부담. 유죄판결을 받을 수 있는 확신이 있는지 이것에 대해서 엄청난 고민 중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사안이 어차피 결론을 내려야겠지만 검찰기소 여부를 기다려서 한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지금 해야 된다면 과연 이렇게 '주의'를 할 정도가 될 것인지 매우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정연주 독자결정인지도 불투명.

제2사무차장 : 국세청 서류를 검토해보니 국세청이 승소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었음. 이사회 보고 안했고, 사후보고 했음. 경영적자에 대한 책임을 지기로 노조와 합의서를 작성한 점이 편향적 의사결정으로 이루어 진 것으로 보고 있음.

이석형 위원 : 세무소송팀장, 조정을 통해 해결한다고 방침 보고...조정내용을 누가 결정했나?

과장 : 조사하지 않았음. 절세효과가 70% 발생한다는 보고가 있었고 사장도 인식하고 있었음.

이석형 위원 : 조정권고안이 나와서 이사회에 보고했음.

의장 : 사후보고 아닌가.

이석형 위원 : 사후보고 아니다.

제2차장 : 조정신청 주체, 조정신청 내용이 중요.

이석형 위원 : 이사회 보고 전까지 조정이 미확정 되었다고 봐야 함.

김용민 위원 : 승소가능성은 반론이 있을 수 있음. 절차 문제를 봐야 함. 정연주가 독립적으로 했냐? 이사회 심의의결 사항이냐? 이사회 보고했냐?

과장 : 조정 내용 중 청구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사장이 알았으니 실무팀의 조정의견을 받아들여서는 안 됨.

김용민 위원 : 첫 번째 문제는 사장이 어떻게 지시했는지 명확하지 않고...이사회 심의의결 사항으로 되어 있는가.

국장 : 기타 중요사항으로 판단하지 않은 것이 문제.

이런 어이없는 논의를 거친 끝에 투표를 통해 찬성 5, 반대 1로 사장에게 '주의' 조치를 하기로 의결했다. 사장이 독단적으로 법원 조정을 결정했는지, KBS내의 실무팀과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 지혜를 통해 세금분쟁을 해결하려 했는지, 그들은 아무 것도 몰랐다. '암묵적 지시'가 있었다고 감사원 실무자는 말했는데, '암묵적 지시'라니, 이런 허무맹랑한 추상적 개념으로 '해임 요구'의 구실을 만들었으니, 할 말을 잊는다.

이사회 보고 여부와 관련해서는 감사위원회 의장이라는 사람은 법원 조정내용을 "사후 보고했느냐"고 물었다. KBS 경영진은 당시 법원 조정 전에 이사회에 몇 차례 보고를 했고, 이사회는 법원 조정 내용과 과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아마 틀림없이 '해임 요구' 찬성에 한 표 던졌을 것이다.

올림픽 전에 나를 해임시켜야 한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얼마나 서둘렀으면, 감사위원들은 이렇듯 기본 사실도, 감사 결과의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사장 해임 요구'를 의결했다. 그날 회의록 전문이 공개된다면 아마 더 어마어마한 이야기들이 있었을 것이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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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연주, #감사원, #KBS, #김용우 감사원 국장, #정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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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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