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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을 생포하여 귀부산 노예로 부리기 위해 시랑헌으로 끌고 가니, 눈요기나 하라고 가는 길의 코스를 달리하여 진안 마이산을 경유하였다
▲ 마이산 집사람을 생포하여 귀부산 노예로 부리기 위해 시랑헌으로 끌고 가니, 눈요기나 하라고 가는 길의 코스를 달리하여 진안 마이산을 경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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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초 '호야'(우리 진돗개 이름)가 시집을 갔다. 신랑은 정읍에 살고 있는데 한때 전국진돗개 챔피언이었다. 종자 값도 우리 같은 서민들에겐 부담스러웠고 시집길이 험하고 힘들었지만 좋은 새끼를 얻겠다는 생각에 고진감래만을 생각하고 꿈에 부풀었다.

"임신하지 않았는데요?"

X레이 사진 판독을 마친 수의사의 말이다. 예정일이 지나도 출산의 기척이 없고 배가 부르지 않아도 한두 마리 새끼를 임신한 것으로 애써 생각해왔건만.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다. 편백을 이식하러 시랑헌으로 출발하면서 간 동물병원에서 들은 우울한 소식이다.

이식 시기를 잘못 선택하여 편백을 고사시킨 것 같아 올해는 서둘러 4월이 되기 전에 다시 심기 위해 시랑헌으로 출발했다. 나와 집사람은 전주-장수 간 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말 한마디 없이 무거운 상념에 젖어있었다.

편백묘목 심기 지연사연

시랑헌으로 들어서자 편백나무의 붉은 고사목들이 눈에 거슬린다. 곧바로 죽은 나무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낙하산 줄로 만든 밧줄을 나무 밑둥에 걸면 나는 굴착기로 나무를 뽑아 도로로 옮긴다. 집사람은 밧줄을 풀어 다음 나무의 밑 둥에 걸고 나는 뽑는 작업을 반복했다. 경사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집사람이 기진맥진하여 녹초가 됐다. 임무교대를 하려고 해도 집사람은 굴착기 작동법을 모른다.

늦은 점심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니 오후도 한나절이 지났다. 잡초를 제거하면서 서툰 굴착기 솜씨 때문에 끊어놓은 급수관을 연결해야만 저녁을 지을 것 같아 연결 작업을 시작했다. 급수관이 끊긴 곳이 블루베리와 포도밭 예정지와 가까워 가뭄 때 물주기 위한 저수조를 설치하기로 했다.

불루베리 밭을 만든다고 서툰 포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시랑헌 암반수 배수관을  터트려버렸다. 다시 배관하면서 

불루베리와 포도밭에 필요할 때 물을 주기 위해서 저수조를 새로 붙였지만 끝내 성공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 급수관수리 불루베리 밭을 만든다고 서툰 포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시랑헌 암반수 배수관을 터트려버렸다. 다시 배관하면서 불루베리와 포도밭에 필요할 때 물을 주기 위해서 저수조를 새로 붙였지만 끝내 성공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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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기온 때문에 25mm 플라스틱 급수관은 너무도 단단하여 곧게 펴지질 않는다. 자리를 만들어 급수통을 설치하고 수도 호스로 물을 채워 임시로 사용했다. 날씨가 따뜻해져 급수관을 다루기 쉬울 때 연결하기로 했다. 40mm 주 배수관을 연결하고 시랑헌에 내려오니 이번에는 가압펌프 상단의 주물 덮개가 깨져 물이 새고 있다. 

산골의 겨울은 경험없은 도회지 사람들의 혹독한 시련이다. 가압펌프, 보일러, 씽크대, 욕조, 화장실변기 물이 들어있는 곳은 모두 얼어터져버렸다. 이번에 수리를 마치고 정산해 보니 교체수리비만 80만원 가량 들었다. 

아직도 변기 아랫부분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는 것 같다. 유규무언이다.
▲ 동파 피해복구 산골의 겨울은 경험없은 도회지 사람들의 혹독한 시련이다. 가압펌프, 보일러, 씽크대, 욕조, 화장실변기 물이 들어있는 곳은 모두 얼어터져버렸다. 이번에 수리를 마치고 정산해 보니 교체수리비만 80만원 가량 들었다. 아직도 변기 아랫부분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는 것 같다. 유규무언이다.
ⓒ 정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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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압펌프 덮개를 교체했지만 펌프가 작동하지 않는다. 상단에서 흘러나온 물은 모터내부로 흘러 들어가 모터가 합선되어 내부코일이 타 버렸다. 남원을 두 번씩 다녀오며 가압펌프 전체를 교체하고 목욕탕의 부동정을 열어놓으니 이번에는 세면기와 욕조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줄줄 샌다. 화장실 변기의 물이 담긴 윗부분이 깨지고 주방 수도꼭지도 얼어터졌다.

이번 겨울의 최대 피해는 가스보일러 동파였다. 외부 벽에 부착식인 가스보일러는 작년에도 얼어터졌지만 물통만 교체하는 것으로 해결되어 큰돈이 들지 않았다. 그 후 완벽하게 대처해야 했지만 시공이 어렵다는 이유로 50mm 스티로폼으로 둘러 싸고 넓은 스카치테이프를 붙여놓고 방심한 결과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었다. 시랑헌을 다녀와서 사용한 돈을 셈해 보니 동파 복구비만 80만 원 정도이며 다른 경비까지 합치면 150만 원이 넘는다. 아직도 해결이 안 된 문제들이 남아있다. 뾰족한 해결방법도 모르겠다. 발생한 문제들의 원인은 대부분 인재이다. 내가 좀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

블루베리밭과 포도밭 만들기

불루베리 밭을 만들었다. 시랑헌에 시집온지 3년이 지났건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성장이 멈췄거나  고사직전이다. 

올해부터라도 제대로 관리해 볼 생각이나 성공할 지 모르겠다. 한 그루에 3만원씩 주고 산 것이라 본전 생각이 간절하다.
▲ 블루베리 밭 불루베리 밭을 만들었다. 시랑헌에 시집온지 3년이 지났건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성장이 멈췄거나 고사직전이다. 올해부터라도 제대로 관리해 볼 생각이나 성공할 지 모르겠다. 한 그루에 3만원씩 주고 산 것이라 본전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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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된 포도나무를 이식하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대전에서 옮겨온 포도나무를 가식해 뒀다. 

이번에 포도밭을 만들어 옮겨줬다.올해는 싹이트기 만을 바라고, 

내년부터 4~5년 동안 만이라도 나와 집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 포도밭 10년 된 포도나무를 이식하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대전에서 옮겨온 포도나무를 가식해 뒀다. 이번에 포도밭을 만들어 옮겨줬다.올해는 싹이트기 만을 바라고, 내년부터 4~5년 동안 만이라도 나와 집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풍성한 열매를 맺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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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파 피해를 복구하고 보일러 보온 상자를 설치하다 보니 어느덧 4일이 지나고 대전으로 돌아가야 할 날짜는 이틀 남았다. 집사람은 이틀 동안에 편백나무 이식을 서둘렀다간 작년 같이 모두 고사한다고 하면서 차라리 지금 돌보지 않으면 안 될 블루베리와 작년 초 겨울에 가식해둔 포도나무를 제대로 심고 이번 시랑헌 일을 끝내자고 한다.

블루베리는 시력개선, 항산화 효과가 좋은 건강식품인데다 병충해에 강해 친환경 농사에 적합한 과일이다. 과일을 말리면 보관성이 높고, 포도 다음으로 와인생산이 높다는 통계에 매료되어 3년 전부터 묘목을 구입하여 심었다.

사올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크기의 나무를 사왔지만 정성을 쏟지 못한 탓에 성장을 멈췄거나 고사 상태에 있는 것도 상당량이다. 1주당 3만원씩 했던 비싼 묘목들이다. 포기해 버리기는 아쉬움이 남는다. 

포도는 한 알씩 따서 껍질을 벗겨 먹기가 상당히 번거로운 과일이다. 나는 곧잘 포도 알을 낱개로 따서 물에 잘 씻고 한 주먹씩 입안에 넣고 껍질째 씹어먹곤 했다. 이런 식으로 포도를 즐기다가 한 번은 입안이 헐어 버린 사고를 당했다. 그 뒤로 포도를 먹지 않았고, 농약의 무서움도 알게 됐다. 그 후에는 포도를 먹지 않았다.

우리나라 포도주 값은 상용하기엔 너무 비싸다. 몇 년 전 해외 여행 중 손수 가꾼 넓지 않은 포도밭의 수확으로 500~700병의 포도주를 담아 집안의 대소사 행사에 사용한다는 캐나다 노교수님의 얘기를 듣고 나도 언젠가 포도주를 담겠다고 생각해온 터이다.

이틀 안에 밭을 만들고, 블루베리 50여 주를 이식하고, 가식해둔 10년생 포도나무 60그루를 자리 잡아 옮겨 심고, 뿌리 활착을 위해 몇 차례 물까지 줘야 하는 일을 나와 집사람 체력으로 해낼지 모르겠다. 외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일은 집사람이 원하지 않는다. 

우선 3곳에 나눠 심어진 블루베리를 분을 떠 밭 곁으로 옮기고 퇴비를 흙과 고루 섞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블루베리 밭의 윤곽은 전에 잡아둔 지라 배수로를 만들고 나자, 이식하고 물 주고 다시 흙을 덮어주는 일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특히 묘목이 작고 가벼워 작업이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포도밭이다. 굴착기로 퇴비를 섞어 밭을 만들고 가식한 나무를 분리해서 파 놓은 구덩이 곁으로 옮겨 주었지만, 집사람에겐 무겁고 큰 포도나무를 다루는 일이 버겁기만 하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굴착기에서 오르내릴 수도 없다.

연일 내리는 보슬비는 작업에 많은 지장을 주면서 정작 뿌리 활착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두 번에 걸쳐 뿌리가 완전히 잠기도록 물을 흠뻑 줬다. 내일은 대전으로 올라가야 할 날이지만 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포도밭을 만들기 위해 언덕길을 오르다가 밤나무 가지에 굴착기 문이 걸려 유리가 깨지고 문틀도 망가졌다. 서둘러 남원 정비공장에 수리를 맡겼다. 정비공장 작업시간이 끝나기 전에 문짝도 찾아와 달아야 문을 닫고 열쇠를 채울 수 있다.

문짝을 찾아오기 위해 서둘러 남원 정비공장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도 집사람은 남원의 오토바이 상점 간판 위에 걸린 레브라도 리트리버 개 분양 현수막 광고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내일 대전 집에 오기로 한 외손자와 같이 놀아줄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모양이다. 호야에게 많은 기대를 했지만 야성이 강한 진돗개는 놀이 친구로는 부적합하다.

이번 일요일에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생들과 자식들이 모두 온다고 해서 일요일 아침에 대전으로 올라왔다. 

그 와중에 집사람은 외손자 친구를 해줄 래브라도 리트리버 강아지를 장만했다. 

단 하루만에 오디오를 뒤집어 제 몸값보다 많은 손해를 잎힌 것으로 미뤄 앞으로 할 애기가 조금 생길 것 같다.
▲ 해리 이번 일요일에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동생들과 자식들이 모두 온다고 해서 일요일 아침에 대전으로 올라왔다. 그 와중에 집사람은 외손자 친구를 해줄 래브라도 리트리버 강아지를 장만했다. 단 하루만에 오디오를 뒤집어 제 몸값보다 많은 손해를 잎힌 것으로 미뤄 앞으로 할 애기가 조금 생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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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큰길에서 8km 들어가야 한단다. 분양집에 들어서면서 주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성견보다 큰 5마리 강아지들이 우리에서 쏟아진다. 천방지축이다. 얼마 전에 읽은 사고뭉치 레브라도 리트리버와 사랑으로 개를 감싸는 주인의 이야기인 <말리와 나> 책 내용이 현실로 되살아 난 듯하다. 

이 책에서 새끼를 고를 때 꼭 '어미를 확인하라'는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너무도 훌륭하고 멋진 어미를 확인하고 나서 망설임 없이 새끼를 고를 수 있었다. 집에 온 해리(리트리버 개 이름)는 크기와 달리 어린 강아지인지라 추위에 떠는 모습이 안쓰럽다. 잠깐 굴착기 문짝을 달러나가면서 거실 난로 곁에 뒀다가 돌아와 보니 거실이 아수라장이 되어있다.

집에 온 지 30분 만에 제 몸값보다 비싼 오디오 시스템을 망가트려놨다. '말리'의 악령이 되살아 난 느낌이다. 앞으로 우리집에는 '해리'에 얽힌 얘기가 심심치않게 생길 것 같다. 엄마와 떨어진 해리는 저녁 내내 심한 몸살을 앓았다. 전주에 있는 24시간 동물병원으로 가려고 전화했더니 물과 음식을 먹는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꼭 껴안아 주란다. 우리부부는 교대로 해리를 껴안아 주면서 밤을 지샜다.

다음 날 아침에는 4시부터 일어나 어제 저녁에 못 붙인 굴착기 문짝을 트럭 전조등 빛으로 비춰가며 붙이고 포도밭으로 올라가 물이 스며든 포도밭 구덩이를 흙으로 덮고 땅을 고르고 나니 아침 해가 중천에 올라와 있다. 자식들, 동생들과의 점심약속 때문에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 

서둘러 시랑헌으로 내려오는 길에 '호야'와 '해리'가 앞장 선다. 집사람 넋두리가 귓가에 맴돈다.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개들을 앞 세우고 한들한들 산길을 가는 우리 모습을 부러워 할거여!"

시랑헌 터를 오르내리다 보면 복수초와 수선화가 반갑게 인사를 건 낸다. 대꾸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현실에 쫓기며 지금을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싶다. 잠깐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그들과 인사를 나눴어야 했었는데…….


태그:#편백나무, #블루베리,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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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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