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봄날 햇살이 부서지는 백련사 동백숲으로 들어간다.
 봄날 햇살이 부서지는 백련사 동백숲으로 들어간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백련사 동백숲 속으로

남해안을 가로지르는 국도 2호선을 따라 강진으로 향한다. 넉넉한 남도 땅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강진은 '남도답사 1번지'라고 한다. 그곳에는 만덕산 아래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200년 전 강진으로 유배와서 다산초당에 머물던 정약용 선생이 학문을 논하기 위해 백련사 혜장 스님을 찾아갔던 길이다.

시원시원한 2번 국도에서 벗어나 강진만을 끼고서 백련사로 향한다. 주차장에 서면 백련사로 오르는 도로가 있지만, 그 옆으로 동백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백련사 동백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오래되고 아름다운 숲이다. 푸른 동백나무 아래 여기저기 흩어져 떨어진 동백꽃이 나무에 달린 동백보다 더욱 붉고 예쁘다. 떨어진 꽃마저도 아름다운 꽃.

천년고찰 백련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집이다.
 천년고찰 백련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집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동백숲이 끝나는 곳에는 넓은 터에 절집이 있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국사가 창건하고 만덕사라고 불렸는데, 고려시대 원묘국사가 대중과 함께 불교의 사회적 모순을 개혁하고자 백련결사 운동을 일으키면서 백련사로 바꿔 불렸다. 당시에는 커다란 사찰이었는데, 수차례 불타고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은 아담한 절집이 되었다.

대웅보전 현판 글자가 힘차게 꿈틀거린다

백련사 백일홍나무는 아직 옷을 입지 않았다. 반질거리는 나무는 햇살을 잔뜩 받고 있다. 만경루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서니 파란빛이 밝게 배어나도록 단청된 대웅전이 올려다 보인다. 대웅보전 현판이 두 줄로 써 있다. 조선시대 4대 명필인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글씨다.

동국진체를 완성한 이광사가 신지도에서 15년간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지역에 많은 글씨를 남겼는데, 백련사 대웅보전(大雄寶殿) 글씨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다. 글자마다 생동감이 넘치며, '大'자는 마치 젊은 청년이 힘차게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교 이광사가 쓴 백련사 '대웅보전' 글씨. 신라 명필 김생 글씨 '만덕산 백련사'. 응진전 현판 아래 코끼리 조각.
 원교 이광사가 쓴 백련사 '대웅보전' 글씨. 신라 명필 김생 글씨 '만덕산 백련사'. 응진전 현판 아래 코끼리 조각.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대웅전 안쪽 벽에 걸려있는 '萬德山 白蓮社'라는 글씨는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는데, 원래 글씨는 남아 있지 않고 지금 보는 것은 집자한 글씨란다. 김생과 만덕사와의 인연은 설명할 길이 없다.

대웅전 벽면에는 벽화가 가득하다. 돌아가면서 본다. 응진전 현판 아래는 하얀 동물 문양이 새겨졌다. 자세히 보니 코끼리다. 웃음이 나온다. 저 조각을 한 장인은 코끼리를 보기는 했을까? 부분 부분만 보면 코끼리의 일부다. 귀는 크고, 이빨은 튀어나오고, 다리는 굵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걸었던 길을 따라

백련사를 나와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동백숲 속에 부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통 부도를 한곳에 모아 놓는데…. 동백숲 속에 정렬되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홀로 서있는 부도는 동백나무로 울을 삼고 마치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도와 동백숲은 일체형이다. 상륜부를 잃어 버린 부도 위로 동백꽃이 저절로 떨어져 장식을 한다.

동백숲 속에 자리한 백련사 부도.
 동백숲 속에 자리한 백련사 부도.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200년전 정약용 선생이 걸었던 길이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길. 200년전 정약용 선생이 걸었던 길이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오솔길이 800m 이어진다. 이 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초당에 기거할 당시 백련사 혜장 스님과 교우를 위해 이용했던 길이다. 차밭을 지나고 대숲도 지나고 큰 나무숲을 가로 지른다.

숲길은 햇살이 도란도란 스며든다. 산길은 그날의 숨결이 배어나오듯 부드럽게 오르내린다. 정약용 선생이 이 길을 걸으면서 보았을 차나무 새순, 봄날의 노란 양지꽃, 수줍은 듯 피어난 구슬봉이 꽃을 본다. 산벚꽃은 꽃잎을 날리고, 철쭉은 군데군데 피었다.

정약용 선생은 안경을 끼었을까?

대나무 울타리가 나오고 기와지붕이 보인다. 다산초당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이 유배생활 18년 중 10여 년 동안(1808~1818년)을 기거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정약용 선생이 바다를 보면서 흑산도로 유배 간 형을 그리워하던 곳에 세웠다는 천일각에 올라선다. 벚꽃과 어울려 경치가 좋다. 바다가 매립되어 그 옛날의 안타까움은 느낄 수 없다.

숲속에 자리한 다산초당. 바로 옆에 연지석가산 연못이 있다.
 숲속에 자리한 다산초당. 바로 옆에 연지석가산 연못이 있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초당 안에 걸린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 안경 낀 모습이 이채롭다.
 초당 안에 걸린 다산 정약용 선생 초상. 안경 낀 모습이 이채롭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다산초당 안에는 정약용 초상이 있다. '어! 안경을 끼고 있네.' 안경을 낀 모습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동그란 안경을 낀 모습에서 실학정신과 선각자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초당에서 만난 지역풍수가라는 분은 초당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한때 초당이 초가집이 아니라서 논란이 있었는데, 초당은 초가집이 아니라 처사가 기거하는 곳을 보편적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초가집이 아니라고 잘못된 것은 아니란다. 그 옛날 다산이 기거하기 전부터 있었던 산정(山亭)이 기와집이었는지 초가집이었는지 알 길은 없다. 초당 옆 연지석가산 연못에 떨어진 동백이 붉다.

연지석가산에 떨어진 동백꽃이 더욱 붉다.
 연지석가산에 떨어진 동백꽃이 더욱 붉다.
ⓒ 전용호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백련사 만경루에서는 4월 25일까지 ‘천년의 숨결전’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다산초당에서는 차 시음(1000원)을 할 수 있으니, 가볍게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오면 좋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산길은 아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태그:#다산초당, #백련사, #정약용, #유배길, #동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