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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즐기던 검투사 시합은, 공화정 말기에 세계 정복자로서의 로마군들의 전투정신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생긴 경기였다.
▲ 콜로세움의 내부 로마인들이 즐기던 검투사 시합은, 공화정 말기에 세계 정복자로서의 로마군들의 전투정신을 고양시킬 목적으로 생긴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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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하면 생각나는 건? 콜로세오, 트레비 분수, 로마의 휴일, 카이사르?

아니다. 안타깝게도 로마, 하면 떠오르는 건 그렇게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었다, 내 경우에는. 적어도 로마를 여행하기 전에는.

로마에서의 소매치기 극복 방법

로마 하면 나는 소매치기가 먼저 떠오르곤 했다. 이탈리아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종종 소매치기 당한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았고, 가이드북에서조차 로마에서의 주의점을 강조하고 있으니 어찌 긴장하지 않을쏘냐.

로마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건 사진기를 줘 버리는 거나 다름없다는 둥, 신분증을 요구하는 위장 경찰이 활개를 친다는 둥, 심지어는 아기를 안고 있던 집시가 아기를 던지고는 그 틈을 타 소매치기를 한다는 둥….

이 대목에서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집시 여인이 나를 향해 아기를 던진다면 나는 아기가 땅에 떨어지든 말든 상관 말고 내 돈가방을 지켜야 한단 말인가. 아무래도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자신이 없다. 그럼 위장 가방을 하나 더 들고 갈까, 진짜 가방은 딸의 어깨에 걸어줄까, 아니 그러다 어수룩한 딸애가 위험에 노출된다면?

게다가 우리는 피렌체 민박집에서도 로마를 거쳐 올라온 여행자로부터 소매치기 경험을 들어야 했다. 본인 경험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 이야기까지. 아무튼 로마에 간 여행자라면 통과의례로, 액땜으로라도 한번쯤은 소매치기를 당해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우리 가족은 악명 높은, 로마의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혹시 소매치기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게 아닐까 하고 두리번거렸다. 어수룩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눈에 힘 빡 주고 말이다. 이쯤에서 나의 '로마에서의 소매치기 극복 방법'을 공개해야겠다.

먼저, 35도를 훌쩍 넘는 무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배에다 복대를 채운다. (내가 차면 임산부로 오해할 테니까.) 수시로 꺼내야 할 돈은 크로스백에 넣고 폼이 좀 덜 나더라도 내 배 쪽으로 바짝 붙인다.(이것까지 남편이 차면 난 악처가 된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딸의 호위를 받으며 가운데 선다. 아니 내가 아니라 돈 가방이 호위를 받는 셈이다.

하지만 다리 길이 다른 우리 가족, 보폭도 다 다르고, 눈 달린 우리 세 사람, 보는 것 관심가는 것 다 다른데 셋이 딱 붙어 다닌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게다가 돈가방에 금괴가 든 것도 아닌 이상, 주루룩 일렬횡대로 뒷사람 길 막으며 가는 것도 민망스러운 일일뿐 아니라, 여행하는 며칠 동안 돈가방에만 모든 감각을 집중시킨다는 건 벼룩잡자고 밤새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냥 운명(?)으로 여기는 거다. 소매치기여 나에게로 오라, 까지는 안 되더라도, 올 테면 오라지, 정도로 편하게 생각해 버리는 거다. 소매치기 안 당하려고 애면글면하다 보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정말이다. 실제로, 소매치기 때문에 로마에 가지 않겠다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있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나는, 소매치기를 흔쾌히 당하십시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대신 소매치기를 당해도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잔머리를 좀 굴려야 한다. 돈을 나누어 보관하는 것은 물론이고, 로마를 여행 마지막 날에 가깝게 잡아야 한다. 여행지가 여러 곳일 경우 로마를 앞에 잡았다가 초장부터 소매치기를 당하게 되면 다음 여행일정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폼페이와 바티칸은 투어를 신청해 놓았는데, 그걸 마지막 날에 맞추어 예약을 했다. 물론 경비는 이미 다 지불했으니 가방 하나 소매치기 당한다 해도 대세에 지장은 없다. 이쯤 되면, 소매치기여 올 테면 오라, 배짱부릴 만하지 않은가.

물론, 로마의 어느 지하철역에서 소매치기가 잡혀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같은 숙소의 한국인이 씩씩거리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사연도 들었다. 이미 전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는데, 또 한 번 가방을 보는데서 뒤지기에 너무 성질이 나서 임산부의 배를 퍽 때렸는데, 그러면 그렇지, 가짜 임산부더라는.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가족은, 하루 이틀 돌아다니다 보니 로마가 소매치기 소굴이 아닌 사람 사는 곳이란 걸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면서부터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게 되었고 더 이상 긴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로마의 소매치기 때문에 여행을 미룬다면, 한국이 분단국가라서 여행 위험국가로 낙인찍히는 것만큼이나 억울한 일이다.

그렇다고 로마에서의 방심은 금물이다. 우리 가족 역시 눈 뜨고 돈 떼일 뻔한 일이 있기는 있었다. 로마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소매치기만은 아니었다.

몸짱 콜로세오의 알몸을 보다

콜로세움은 햇빛이 강할 때나 비가 올 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쳐서 하늘을 가렸는데, 이 작업은 고도의 공학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콜로세움은 햇빛이 강할 때나 비가 올 때, '벨라리움'이라는 천막을 쳐서 하늘을 가렸는데, 이 작업은 고도의 공학기술을 요하는 일이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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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콜로세오Colosseo(콜로세움)를 먼저 찾았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바글거리는 사람들을 보니 콜로세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콜로세오에 들어가기 위해 입구 저 먼 곳에서부터 줄이 늘어졌는데, 가만히 서 있으면 저절로 밀려 매표소까지 가게 되어 있다. 로마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콜로세오에 모인 것처럼 북적댔다.

그 틈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놓치게 될까봐 함께 줄을 섰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와, 내가 유로화를 건네고 남편은 표를 사고, 거스름돈을 받아 나에게 전해 준다. 빈틈없는 그 줄을 벗어나 거스름돈을 계산해 본 나는 당황스럽다. 14€를 거슬러 받아야 하는데 4€다. 벗어난 줄이 지척이건만 다시 비집고 들어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그러나 10€를 포기할 수는 없다.(우리돈 18000원 이상)

가까스로 다시 다가가 매표원에게 이야기하니 매표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일 흔히 겪은 것처럼, 돈 통의 돈을 열심히 세어본다. 그러더니 10€를 선선히 내어준다. 그때 나는 느낌이 왔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을지도 모른다는. 우리나라처럼 아크릴판을 사이에 둔 것도 아니고 얼굴 빤히 보면서 속이려 했다는 걸 생각하니 조금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예방주사 맞은 셈 치기로 했다.

미로같은 지하까지 드러난 모습. 콜로세움은 타원형으로, 장축지름은 187m, 단축지름은 155m, 둘레 55m이다. 외벽은 80개의 아치가 둘러싸고 있다.
▲ 콜로세움 미로같은 지하까지 드러난 모습. 콜로세움은 타원형으로, 장축지름은 187m, 단축지름은 155m, 둘레 55m이다. 외벽은 80개의 아치가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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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한 눈에 들어온 콜로세오는 그런 사소한 불쾌함을 한방에 날려버렸다. 5만명이나 되는 관중을 수용했다는 원형 경기장, 준공 기념행사는 100일간이나 계속되었고 그때 희생된 맹수만 9천만리가 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이 건축물을 처음 본 순간, 첫 느낌은 뭐랄까…너무나 적나라하다고 할까.

로마의 뜨거운 태양빛이 샅샅이 스밀 정도로 콜로세오는 지하의 모습까지 드러내고 있었다. 후에 지진으로 파괴되고, 다른 건축물들을 짓기 위한 건축재료로도 공급이 되었으며, 양과 소들의 방목장으로까지 전락을 했던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오랜 세월과 고난을 온 몸으로 겪어온 듯 그렇게 당당하게 서 있었다.

어찌 보면, 몸짱의 드러난 근육처럼 묵직하고 강건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풋풋하고 힘찬 젊은 몸짱이 아니라, 시간을 통과해 온 둥글어진 노장의 모습이었다. 날카롭고 탄탄한 근육이 아니라 상처와 흉터로 얼룩진 근육이었다.

콜로세오 한 켠에 서 있자니, 죽어간 검투사들의 한숨과 눈물과 두려움, 잔인한 구경꾼들의 광기어린 함성, 하늘을 찌르는 로마군들의 기상이 지척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포로 로마노에서 콜로세움으로 이어진 길. 콜로세움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햇살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함을 더해 준다.
 포로 로마노에서 콜로세움으로 이어진 길. 콜로세움에 내려앉은 늦은 오후의 햇살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비함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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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폭군 칼리굴라는 콜로세오에서 대량학살 축제를 즐겼다. 검투사들끼리의 싸움도 있었지만 검투사와 맹수의 싸움도 종종 있었는데, 칼리굴라는 그 맹수들에게 들어가는 고깃값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죄수들을 먹이로 주는 일이었다니, 그 피비린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한 집단 광기에 반기를 든 한 수도사가 있었다. 동방에서 온 텔레마코는 검투사 시합 도중에 경기장으로 뛰어 들어가 이 잔인한 경기를 중단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러자 관중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돌로 쳐 죽이고 만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후로 그 피비린내 나는 경기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 잔인한 역사를 목격한 산 증인으로서 콜로세오는, 발가벗고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여름 햇빛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즈음 이런 것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참 대견하다. 참 신통방통하다.

비바람을 맞으며 온 몸으로 세월을 견뎌 그 자리에 그대로 잘 버티고 있어줬구나, 하는 생각. 아프고 모진 역사를 간직한 채 살아 남았구나, 하는 생각.

4층으로 된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콜로세움은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 콜로세움(Colosseo 현지발음 콜로세오) 4층으로 된 로마의 대표적인 건축물 콜로세움은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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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여, 이리도 멋진 콜로세오가 로마 한 가운데 떠억 버티고 있는데, 소매치기 때문에 로마가 두렵다고? 콜로세오를 그저 TV로만, 영화로만 보겠다고? 아서라, 콜로세오는 내부 보존을 위해 실제 촬영지로는 쓰이지 않는단다. 영화에 나오는 콜로세오는 촬영이 끝나면 찬밥 신세가 될 세트에 불과할 뿐.

그래도 혹 소매치기가 두려워 로마 여행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이렇게 라도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몸짱 콜로세오의 알몸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데, 그까짓 소매치기 한번 그냥 당해 주시죠.

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콜로세오, #콜로세움, #로마의 소매치기,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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