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콜로세오를 구경하고 나온 눈 밝은 여행자들은, 이 일대가 바로 로마가 일어난 곳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 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에 개선문이 보이고, 그 뒤로 팔라티노 언덕이 안정감 있게 솟아 있으며 그 너머에는 포로 로마노가 자리하고 있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 프랑스 파리나 마르세유 개선문의 시조가 되었다.
▲ 콘스탄티노 개선문Arco di Constantino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막센티우스를 격파한 것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운 것. 프랑스 파리나 마르세유 개선문의 시조가 되었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파리 개선문의 시조가 된 콘스탄티노 개선문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내 귀에는 '위풍당당 행진곡'이 들리는 듯하다. 개선문 주변에는 환영의 플래카드가 휘날린다. 전차를 탄 율리우스 카이사르(Julius Caesar 영어명 줄리어스 시저)가 나타나고 전리품이 가득한 수레가 뒤따르고, 포로들이 속절없이 끌려들어오고 있다. 군중들은 패션 감각이 뛰어난 바람둥이 카이사르를 좀 더 가까이 보려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야단법석이다.

우쭐해진 카이사르는, 벌써부터 벗겨진 앞이마를 가리기 위해 뒤에서부터 빗어 올린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다독인다. 만인 앞에서 영웅임을 선포하는 이 화려한 개선식에서 더 이상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는 카이사르에게 뒤따르던 포로 하나가 귓속말을 건넨다.

"그래봤자 너도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

개선 장군이 자만심에 빠질 것을 우려해 개선식때마다 으레 설정한 관례라고는 하지만, 찬물을 확 끼얹는 이 말에, 카이사르의 입술 근육이 살짝 실룩이는 듯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누군가.

해적들한테 납치되었을 때에도 스스로 몸값을 올렸고, 병사들이 파업을 할 때에도 말 한마디로 역전시켰던 배짱 킹왕짱 아니던가.

뿐이랴. 손목까지 흘러내리는 술 달린 소매에 허리띠를 느슨하게 맨 토가 차림으로 한눈에 튀는 날라리 패션 원조였다. 하여 정적 술라는 이렇게 일렀다.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니는 저 아이를 조심해라.' 바람둥이로 소문날지언정, 누구 하나라도 원한을 품는 여자가 없었다고 하니 그 뒷돈 또한 어마어마했겠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카이사르 하면, 무엇보다도 시의적절하게 한방씩 날려주는 그 멋진 말이 트레이드 마크 아니던가. 그 한마디에 총 맞은 듯 뒤집어진 마니아층, 오늘날까지 아주 두텁다.

로마 원로원의 충고를 거역하고,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널 때 한 말,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을 틈타 반기를 든 지중해 동부지역을 단번에 평정하고 외친 세마디.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로마제국의 기틀까지 마련한 영웅인데다가, 얼짱 몸짱 배짱 삼박자를 두루 갖춘 카이사르쯤 되고 보면 입에서 뱉는 거라면 뭐든지 화제가 되고 어록에 오를 만하다. 그리하여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마지막 말까지 잊히지 않고 회자된다.

절친한 친구이자 부하인 부루투스의 칼을 맞으며 토해낸 말, '부루투스 너마저!'

다르게 보자면 카이사르는 학살자이고 전범자일 뿐 아니라, 후세들에게 독재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손을 비스듬히 들어 올리는 히틀러의 인사법은 원래 로마식 경례였다. 카이사르를 숭배한 무솔리니가 부활시켜 히틀러에게 전수한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그런 걸출한 인물을 배출해 낸 로마를 시초부터 느껴보고 싶다면 개선문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는 팔라티노 언덕을 거쳐 포로 로마노를 둘러보자

7개의 언덕 중 평지가 많고 테베레 강과 가까운 이곳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는 시작된다.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운다. 레무스가 이겼다면 로마는 레마가 되었겠다. 어찌됐든 로마인은 늑대의 후손?
▲ 팔라티노 언덕 Monte Palatino 7개의 언덕 중 평지가 많고 테베레 강과 가까운 이곳 팔라티노 언덕에서 로마는 시작된다.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다 로물루스가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운다. 레무스가 이겼다면 로마는 레마가 되었겠다. 어찌됐든 로마인은 늑대의 후손?
ⓒ 박경

관련사진보기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로마 공회장.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로, 정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 개선문, 신전, 바실리카 등 공공 생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서로마제국 멸망 뒤부터 방치되어 토사 아래에 묻혀 있던 곳. 19C부터 발굴하였다.
▲ 포로 로마노 Foro Romano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로마 공회장. 고대 로마의 생활 중심지로, 정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 개선문, 신전, 바실리카 등 공공 생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서로마제국 멸망 뒤부터 방치되어 토사 아래에 묻혀 있던 곳. 19C부터 발굴하였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아치 내부의 부조가 정교하고 아름답다.
▲ 티투스의 개선문 아치 내부의 부조가 정교하고 아름답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공회장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공회장 유적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농업의 신 새턴을 위한 신전. 기원전 5C에 지어졌고 그 아래에는 국가의 보물이 매장되어 있었다.
▲ 새턴 신전 농업의 신 새턴을 위한 신전. 기원전 5C에 지어졌고 그 아래에는 국가의 보물이 매장되어 있었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발굴 전부터 반만 지상 위로 보이던 포룸. 발굴 최초의 유적이자 잘 보존 된 몇 안되는 유적 중 하나. 203년 파르티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 발굴 전부터 반만 지상 위로 보이던 포룸. 발굴 최초의 유적이자 잘 보존 된 몇 안되는 유적 중 하나. 203년 파르티아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카이사르가 화장된 곳에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세웠다.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안토니우스는 열변을 토했다. ‘나는 카이사르의 장례식에 왔지 그를 찬양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악행은 죽은 후에도 남고, 선행은 종종 뼈와 묻혀 버리는데, 카이사르의 경우가 그렇다’ 안토니우스는 피로 물든 카이사르의 옷을 군중들에게 내보임으로써 감정에 호소하게 된다. 결국, 로마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루투스는 단숨에 로마의 적이  되어 버린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전(검은 테두리 안) 카이사르가 화장된 곳에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가 세웠다.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안토니우스는 열변을 토했다. ‘나는 카이사르의 장례식에 왔지 그를 찬양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인간의 악행은 죽은 후에도 남고, 선행은 종종 뼈와 묻혀 버리는데, 카이사르의 경우가 그렇다’ 안토니우스는 피로 물든 카이사르의 옷을 군중들에게 내보임으로써 감정에 호소하게 된다. 결국, 로마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루투스는 단숨에 로마의 적이 되어 버린다.
ⓒ 박경

관련사진보기


로마 공회장의 건물들을 연결하던 거리. 사람들이 걷고 있는 곳이 비아 사크라.
▲ 비아 사크라 Via Sacra (신성한 길) 로마 공회장의 건물들을 연결하던 거리. 사람들이 걷고 있는 곳이 비아 사크라.
ⓒ 박경

관련사진보기


한때 찬란했지만 이제 그 흔적만을 보게 되니 시간의 무상함과 인간살이의 덧없음이 느껴진다. 로마 제국의 황제 셉티미우스조차 죽을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다 이루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나 역시, 세월 앞에 스러져 간 모든 영화, 부귀, 권력의 흔적들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진리만이 시간 속에서 녹슬지 않고 살아있을 뿐.

포로 로마노를 돌아 나오니, 범상치 않아 보이는 맞은 편 건물이 수굿해진 태양빛에 반사되어 황토색으로 눈부시다. 콜로세오로 이어지는 임페리얼 가도에는 차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 로마를 막 빠져 나온 나의 타임 머신이 현대 로마에 불시착이라도 한 듯, 나는 어리둥절해져서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글은, 주니어 김영사 <카랑카랑 카이사르>를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태그:#율리우스 카이사르, #줄리어스 시저, #로마, #포로 로마노, #팔라티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