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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앞서 5.11. 기초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양천서 상황실에 위치한 강력 5팀 내부가 촬영되는 CCTV화면. 화면의 절반이 천장과 벽을 비추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직권조사에 앞서 5.11. 기초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양천서 상황실에 위치한 강력 5팀 내부가 촬영되는 CCTV화면. 화면의 절반이 천장과 벽을 비추고 있다.
ⓒ 국가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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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축구 소식으로 도배된 지난 24일 MBC TV 아침 뉴스에서 양천 경찰서 고문 관련을 보도했다. 내용은 관련 경찰관 4명이 구속되고 나머지 1명은 가담 정도가 경미하여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경찰관들의 행위에 대해 '고문'이 아닌 '가혹행위'로 표현됐다.

고문 대신 '가혹행위' 주장한 한나라당 의원들

23일 열린 국회 행안위에서는 참석 의원 대부분이 경찰을 질타했다. 그러한 가운데 한나라당 안효대 의원은 고문이라는 용어는 일제시대, 권위주의 시대에 쓰던 말이기에 가혹행위로 쓰는 게 낫겠다고 주장했다. 유정현 한나라당 의원도 "특정 몇몇으로 인해 경찰 조직 전체 사기가 저해되어서는 안 된다"며 '가혹행위 사건'으로 명칭을 바꾸어 질의했다.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고문행위 경찰관 검찰 고발 및 수사의뢰'라는 보도 자료에서 경찰의 '고문행위'를 정식 명칭으로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설명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가혹행위'로 명칭을 바꾸자는 것은 명분도 없을 뿐더러 그 의도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기자가 보기에는 두 의원이 고문 행위에 의한 인권 침해를 우려하기 보다는, '고문'이라는 정식명칭이 되었을 때 정권이 져야할 부담을 더 걱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5·3인천 항쟁, 대규모 투쟁에 당황한 군사독재정권은 무차별 연행 폭력,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 1986년 민중·통일민중연합(발행인 문익환) 정기 유인물 ‘민중의 소리’ 17호 일부 5·3인천 항쟁, 대규모 투쟁에 당황한 군사독재정권은 무차별 연행 폭력, 고문을 서슴지 않았다.
ⓒ 민중·통일민중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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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려난 이들에 의하면 이곳 지하실과 1층에서 서노련, 청계노조, 노동자들, 학생, 민주인사들이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채 남녀 가릴 것 없이 갖은 욕설과 협박, 몽둥이 찜질과 물고문, 전기고문 등 상상을 초월한 살인적 고문을 당하면서 허위자백을 강요받았다 한다. …<중략>… 가장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는 김문수씨는 "초전에 박살났어!", "그놈들은 인간백정들이었어!" 라는 말로 입을 열고는 연행되는 차속에서부터 짓밟히기 시작해 송파보안사에 도착해서는 야구방망이로 온몸을 구타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전기고문 2차례, 거꾸로 매달고 고추가루 코에 붓기 5차례, 일주일 동안의 전기몽둥이 구타 등을 당하면서 5·3인천 투쟁과 관련된 허위 자백과 수배자 거처 자백을 강요 받았다 한다." - 1986년 민중·통일민중연합(발행인 문익환) 정기 유인물 '민중의 소리' 17호

"조사 결과, A경찰서 형사과 강력팀 팀장 외 경찰관 4명은 절도관련 피의자를 검거하여 수사하는 과정에서 공범 관계 및 여죄 자백을 목적으로, 2009년 8월경부터 2010년 3월말까지 총 22인의 피의자들을 경찰서로 연행하는 차량 안에서는 뒷 수갑을 채우고 피해자의 목을 다리에 끼워 조인 후 뒷 수갑 상태의 팔을 위로 꺾어 올려(일명 '날개꺾기'라 함) 고문하고, 강력팀 사무실에서는 의자에 앉힌 후, 혹은 바닥에 3인용 소파의 방석을 벽쪽(위원회 조사결과 CC-TV사각지대 임)에 깔고 피해자들의 입에 두루마리 휴지 또는 수건 등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일부는 스카치테이프를 얼굴에 감고) 피해자들을 엎어뜨려 등을 밟고 머리를 방석에 눌러가며 날개꺾기 고문을 가해 고문피해자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팔과 어깨의 고통에 못 이겨 자백하도록 하는 등 고문을 가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습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고문행위 경찰관들 검찰 고발 및 수사의뢰" 보도자료(2010.6.16)

위 두 사례는 24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일어난 사건에 대한 기록이다. 첫번째 기록은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인 1986년 5·3인천 항쟁의 배후로 지목된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고문에 관한 기록이다. 이 내용을 가감없이 받아 들인다면 그때 가장 큰 고문을 당한 사람은 당시 서노련 지도위원이었던 김문수(현재 경기도지사)씨다. 아래는 6월 항쟁을 거쳐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넘어 실용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10년 양천경찰서에서 일어난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내용이다.

과연 두 가지 사건을 두고 하나는 고문, 하나는 가혹행위로 분류할 수 있을까? 군사독재 시대에 고문은 고문이고, 실용을 강조하는 정부에서의 고문은 가혹행위라 불러야 하는가? 대공 분실이나 안기부에서 일어난 물리력에 의한 인권유린은 고문이고 경찰서에서 일어난 물리력에 의한 인권유린은 가혹행위인가? 그게 아니라면, 입에 휴지나 수건으로 재갈을 물리고 날개꺾기로 자백을 강요하더라도 물고문, 전기고문이 없으면 가혹행위이고 물고문, 전기고문을 가하면 고문인가?

두 사건 모두, 피해자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를 준 국가 권력의 인권 유린 행위이다. 그런데도 '고문'이 아니라 '가혹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 인권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어떻게든 정권에 날아오는 비난만은 막아보자는 얕은 수로 보인다.

20년만에 되살아난 '고문'

16일,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고문'이 일어난 사무실의 CCTV 화면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CCTV의 각도가 벽쪽을 향하고 있다.
 16일,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고문'이 일어난 사무실의 CCTV 화면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CCTV의 각도가 벽쪽을 향하고 있다.
ⓒ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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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양천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한 그들이 마약사범, 절도범과 같은 흉악범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마약사범, 절도범이라고해서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으라는 수사 내규는 없다. 마약 사범이라고 고문하고 절도범이라고 고문하는 세상 다음에는 집시법 위반이라고 고문하고, 정부 비방했다고 고문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 이는 상상하기도 싫은 군사독재 시절의 모습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몇 대 패고 날개 꺾기한 것이 물고문, 전기고문과 어떻게 같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CCTV마저 돌려 놓고 고문을 행한 경찰관을 향해 "물고문, 전기고문은 안돼"라고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은 우스운 이야기다. 한번 해봐서 효과(고문에 의한 자백)를 본다면, 수사가 힘들때마다 이런 방법을 찾게 되리라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고문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파급력을 군사 독재정권 시절을 살아 본 사람은 안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고문'하면 '전기고문, 통닭구이, 물고문 - 감금, 무차별 폭행 - 안기부, 기무사, 대공분실 - 박종철, 죽음, 6월 항쟁' 이런 단어들을 떠올린다.

20년 세월이 지났지만 역사의 상처는 아직도 깊고도 넓다. 그런데 군사독재정권의 잔재이자 이제는 없어진 줄 알았던 고문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문을 '가혹행위'로 명칭을 바꾸자니? 이름을 두고 논쟁을 하는 것보다 후진적 수사 형태인 고문이 나타난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엄정한 법집행' 뒤에 인권은 없었다.

촛불 집회를 비롯 여러 사회적 논란을 감당하고 조정해야 할 정권이, 일방적인 패러다임만을 강요한 채 국민의 권리나 인권은 내팽겨치고 있다는 비난은 어제 오늘일은 아니다.

TV에 몇 차례 보도되어 큰 이슈가 되었던 촛불 여대생 군홧발 폭행 사건, 최소한의 인내심도 없는 강경진압으로 숯덩이가 된 채 주검이 되어 망루를 내려와야 했던 용산 참사, 그 주검마저도 일년 가까이 냉동고에 둘 수 밖에 없었던 아픔들, 국민의 머릿속마저 통제하겠다는 '국방부 불온 서적 리스트' 논란,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없이 토끼몰이식으로 무조건 잡아들이고 보자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 단속 문제 등등.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정부가 인권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정부는 오히려 그때마저 '엄정한 법집행'을 주문하며 경찰 등 공권력에 보도(寶刀)를 쥐어주었다. 엄정한 법집행 앞에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동영상을 개인블로그에 올린 사업가를 내사하고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했다고 신건· 이성남 민주당 의원이 21일 국회 정무위에서 폭로한 바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이름 그대로라면 공직자 윤리문제를 점검하고 지도해야 할 부서인데 민간인을 사찰하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군사독재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이 생겨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인권 보호를 최우선 목적에 두고 국가정보원의 국내 사찰 업무를 제한하고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을 금지하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왔다. 그런데 이번 총리실 민간인 내사 사건은 이런 역사의 흐름을 전면 부정하는 심각한 사건이다.

정권의 '엄정한 법집행'을 내세운 인권 무시 현상은 그대로 사회에 전이된다. 호전적 애국주의(jingoism)와 맹목적 애국주의(chauvinsst)가 점점 더 거칠게 곳곳에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극우단체들의 참여연대 앞 집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가 하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부치는 무시무시한 사회로 변화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Again 5공화국'으로 가나    
       
양심적인 민주인사들은 국가에서도 사회에서도 인권을 보장 받지 못했다.
▲ 1985년 민중·통일민중연합 속보 유인물 양심적인 민주인사들은 국가에서도 사회에서도 인권을 보장 받지 못했다.
ⓒ 민중·통일민중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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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를 당해서 병원에 누워 있는 계훈제 선생. '빨갱이'라는 낙인은 인권은 고사하고 목숨마저 위험하던 시절이였다.
▲ 1985년 민중·통일민중연합 속보 유인물 테러를 당해서 병원에 누워 있는 계훈제 선생. '빨갱이'라는 낙인은 인권은 고사하고 목숨마저 위험하던 시절이였다.
ⓒ 민중·통일민중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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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시절 이런 현상은 극에 달했다. 안기부 대공분실에서 정권 유지를 위해 사람들을 잡아가고 고문하는 동안 사회 곳곳에서도 '빨갱이 색출'이라는 마녀사냥이 진행됐다. 노조의 파업 현장을 지지 방문한 계훈제 선생을 폭도들은 "너 빨갱이지? 너 같은 놈은 죽여 없어야 돼"라고 집단 구타하고 문익환 선생의 집에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너는 공산주의자"라고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현재의 사회 현상 흑백 버전이랄까? 87년 6월 항쟁 이전의 모습은 이러했다. 인권이 국가 기관과 맹목적 애국주의를 주창하는 집단에게는 애초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 때였다.

고문과 인권은 양립할 수 없다. 87년 6월 항쟁은 고문과 인권 탄압은 결코 정권의 유지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역사적으로 증명했다. 오히려 고문과 인권 탄압은 국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고 종국에 가서는 정권마저 종말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이번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은 단지 하나의 경찰서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실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이는 2010년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Again 5공화국'의 신호탄일 수도 있다. 양천서 고문 사건은 국민에게나 정권에게나 커다란 위기임이 너무 자명하다.

그래서일까? 이 소식을 접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이유로든 수사 과정에서 고문은 용납될 수 없다"며 "드러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법 집행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인권을 지키는 일이다. 인권이 무시되는 상태에서는 선진일류국가가 될 수 없다"고까지 언급했다고 한다.

너무나 지당하고 적절한 지적이다. 고문이니, 가혹행위이니 소모적인 면피용 발언보다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나 좀더 지켜 볼 일이다. 해당 경찰관 몇 명만 사법처리한다고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고문이 다시는 발 붙일 수 없도록 정치적 토양을 바꾸어 내는 것도 국정 책임자인 대통령의 몫이다. 국민들의 주문도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 날 '정부가 국민들을 지성으로 섬기는 나라'가 대통령이 그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 했다. 국민들을 지성으로 섬기는 것, 그것은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권 3년, 인권과 양립할 수 없는 고문이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되었다. 국정책임자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칼을 꺼내 해법을 모색할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태그:#양천경찰서 고문, #고문, #양천서 고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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